尊重正敎分 존중정교분
復次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 四句偈等 當知此處 一切世間 天 人 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
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 사구계등 당지차처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개응공양 여불탑묘.
또한 수보리여. 때에 따라 이 경을 사구계만이라도 설한다면 이 장소는 일체 세상 사이에 있는 하늘, 인간, 아수라가
모두 응당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공양할 것이다.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하물며 어떤 사람이 정성을 다해 능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다면 어떠하겠는가?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은 최상의 제일 희유한 법을 성취한 것이다.
若是經典所在之處 卽爲有佛 若尊重弟子
약시경전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이 경전이 있는 장소에는 곧 부처님과 존중받는 제자가 함께 계신다고 할 것이다.
부차수보리야 = 다시 말하여 수보리야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당지차처 = 금강경을 설하거나 그 내용 일부라도 이야기하거나 사구 게를 이야기하는 곳은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개응공양 = 이 세상 6도 포함하여 천상 세게 도 마음속으로 받들어모신다.
여불탑묘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 어떤이가 진실하게 읽고 공부하며 닦는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 희유 지법 = 그 사람 가장 희유한 깨달음을 도달하게 된다.
약시경전소개지처 = 그러한 장소에는
즉위유불약존중제자 = 부처님이 계시거나 존중받는 제자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사 쥐 사건 이야기하심 쥐 = 궁한 마음,
장안사 호랑이 = 두려움,
딸기밭 뱀 =탐심 진심
즉 탐심 진심 두려움이 없다면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가 개응공양 한다.
수설시경(隨說是經) 내지(乃至) 사구게등(四句偈等)의 뜻
① 금강경의 수지독송 「외식제연(外息諸緣) 내심무천(內心無遷)을 동반하여야 함.」
②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고 공양하는 마음 내기 (무주상보시)
③ 도인의 지시로 나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행함. (무주상보시)
④ 마음속으로 아상을 소멸하는 행위를 통해 부처님을 실감하는 경우
일체세간천인아수라 개응공양 여불탑묘(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
세계 각국 여행 시의 체험. 즉 위의
①을 만족하였기 때문이다.
⒜ 일본, 후지산 여행 시 위의
①을 실천 일본의 상징, 제일 높다는 후지산(富士山)을 등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산에 접근할 때, 지혜로운 이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일본사람을 ‘발톱에 때’ 정도로 무시하였기 때문에 그 과보로 우리가 핍박받은 것이다. 우리가 또 증오하면 증오 당할 새 원인을 만드는 것이다. 후지산을 향하는 발걸음 걸음걸음에 조상을 대신하여 참회하며 새로운 발원을 하였습니다. 고산병(高山病)에 시달리는 사투(死鬪)의 후지산 등반을 마치며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일본과 우리는 어느덧 하나가 되었습니다.
⒝ 스리랑카 여행 시의 스리랑카에서 받은 대접 위의 ①과 ②를 실천 십수 년 전 스리랑카에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보물 「불치」에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3개월 전에 예약한 불자들조차 몇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예배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연줄도 없이 처음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불자들에게 이런 보물에의 예배는 기적이 일어나야 만 가능하고 부처님의 빽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금강경을 공부한 우리 불자들은 금강경 식으로 원을 세워보자 하였습니다. 육치를 보겠다는 욕심일랑은 부처님께 몽땅 바치고, “조건 없이 부처님 시봉 잘하기를 발원하자.” 하며 정성 껏 원을 세웠습니다. 원 세운 결과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개월 전에 예배예약을 해놓은 불자들을 모두 제치고 우리 일행은 가장 먼저 불치를 예배할 행운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스리랑카 스님은 내 귀에 대고 아주 조용히 영어로, “This is a very rare occasion. (너희들 아주 드문 행운을 얻었다)”이라 말씀하시었습니다. 욕심이 아닌 “부처님 시봉하겠다.” 라는 서원(誓願)은 정말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다 원인 지어 결과요 즉 인과응보(因果應報)이고 자업자득(自業自得)인데 금강경 독 송이 무엇이길래 박복한 사람이 금강경 독송을 통하여 인과응보의 줄을 끊고 천인아수라가 개 응공양하게 되는가?
고(苦)와 낙(樂)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삶을 해탈하고자 하는 사람은 한 번쯤은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고 부처님께 신심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깊은 신심을 내고 열심히 부처님을 향하면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 복락의 삶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와 낙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이기적인 삶, 몸뚱이 착을 즐기는 자신의 용심 때문입니다. 이기적 용심으로의 삶을 살 때, 자신이 어느덧 박복한 사 람들의 줄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박복한 삶이란 「돈이 없다」 「명 예가 없다」 「권력이 없다」가 아닙니다. 설사 돈이 많아도 권력이 많아도 그 복과 낙이 수시로 오 르락내리락한다면 이런 삶은 다 박복한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박복한 사람들의 줄에 서는 사람은 그 줄을 바꾸지 아니하는 한 계속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기적 삶, 박복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부처님을 향할 때 어느덧 운명의 줄을 바꾼 자신을 발견 하게 되며 복지은 삶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금강경 공부를 통하여 박복한 삶이 복진 삶으로 바뀔 때 사람들은 부처님께 신심을 내고 금강 경을 독송함은 모든 죄업을 소멸한 결과이고 인과의 실을 끊은 결과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 나 부처님께 신심을 내고 금강경을 실천함은 박복한 삶의 줄에서 복진 삶의 줄로 방향 전환을 할 뿐 죄업을 모두 소멸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무시겁래로 아주 여러 생을 살았습니다. 여러 생의 삶 중 박복한 삶도 많았겠지만, 복진 삶도 없지 아니하였습니다. 때로는 잘 닦았던 삶, 깨달음을 얻었던 삶도 없지 아니하였습니다. 박복하고 고달픈 삶을 사는 것은 다 자업자득이요 숙세 죄업의 결과입니다. 복락을 누리고 행 복하게 사는 사람 역시 다 자업자득이요 숙세 선업의 결과입니다. 금강경 독송을 통하여 운명의 줄을 바꿈으로써 박복한 생애가 복지었을 때의 생애로 전개될 뿐인 것입니다. 모두 인과응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금강경 독송으로 부처님께 신심이 복진 삶으로 이어질 때 대개는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생각 하고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아니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복진 삶이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박복한 삶에서 복진 삶으로 전개된 이후에도 더욱 절대 공경심 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결과 얻어지는 지혜는 매우 커지고 주위는 일체세간 천인아수 라가 개응공양여불탑묘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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