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금강경 [해석]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란?

금강 반야 바라밀 2022. 10. 11. 10:26

1. 부처님께 바친다는 것의 의미

늘 마음으로 읽어서 귀로 듣도록 하면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는 마음 을 연습하십시오. 가지면 병이 되고 참으면 폭발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백박사님의 마음닦는법 인 것입니다.

윗글에서 생각을 부처님께 바친다 는 의미란 무엇일까요?

생각을 바친다는 것은 위글에서처럼 가지는 것도 아니고 참 는 것도 아닌, 생각을 내려 놓는것. 생각을 버리는 것. 생각을 비우는 것. 생각을 쉬는 것과 통한다 하겠습니다.

백박사님말씀은 계속 됩니다. 이렇게 백일을 일기로 10회까량 되풀이 하면 몸뚱이에 관한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됩니다.

이것은 아상이 없어진 연고입니다. 부처님께 자신의 분별심을 바치는 연습을 지속하면, 아상이 소멸되고 몸뚱이에 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몸뚱이에 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의식주 문제를 비롯한 모든 고난의 문제가 해결되어 새 사람으로 바뀐다는 뜻인 것입니다. 윗구절을 잘 살펴보면 생각을 바쳐라 는 수행은 생각을 놓아라 버려라 등의 수련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놓아라 버려라 비워라 쉬어라 하는 수행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련 의 일종일 뿐 이며 아상을 소멸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몸뚱이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비해서 부처님께 바치는 수행은 아상을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수련이라 하기보다는 중생심을 불심(佛心)으로 바꾸는 수행 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이 중생심을 불심으로 바꾸어 중생의 마음속에 부처님의 광명이 임(臨)하게 하는 행위 라 할 것입 니다.  사람들은 공양물(供養物)을 부처님께 바쳐 마음의 평화를 얻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그생각을 바침 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워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생각을 바친다 는 의미를 물질에 붙은 마음을 해탈한다라고 해석하므로 바치는 것을 쉽게 이해하고 실천합니다. 그리고 공(空)의진리를 깨칩니다.

마치 반야심경의 색즉시공(⾊卽是空)을 색이란 실은 없는 것이 다라고 해석하지 아니하고 색에 붙은 자신의 마음이 다 착각이요 없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므로 공의 진리를 깨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 공(空)의 진리를 깨치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사실은 금강경에서 잘 밝혀지고 있습니다. 부 처님께서는 금강경 제 3분에 若卵生 若胎生...... (각종 생각, 욕망)을 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부처님 만들어라) 하리 라 하라 하시었는데 이 뜻은 바로 무슨 생각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라는 뜻이며 이어서 如是滅度無量無數 無變衆生 實無衆 生 得滅度者(이와같이 한량없는 중생을 다 제도 하였다고는 하지만 실로 제도받은 중생이 없느니라) 하시었으니 < 생각을부처님께 바치는>수행은 공(空)의 가르침을 깨달아 분별심을 소멸하여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수행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부처님께 바칠 때 바람직한 마음의 자세

각종 분별망상이 올라올 때가 부처님께 공양할 때요 각종 난제로 괴로울 때가 행복해지고 유능해질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비록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즐겁게 바쳐라라고 말합니다. 즐겁게 바치려 할 때 부처님 은 잘 받아주시고 그러므로 모든 번뇌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각종 번뇌망상이 잘 아니 바쳐짐을 호소합니다. 바쳐도 또 바쳐도 분별심은 되풀이 되 어 나오니 이 무슨 까닭이냐고 푸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라야 분별심이 잘 바쳐지는 것이며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었기에 분별심이 잘 아니바쳐지는 것일까요? 부처님께 공양꺼리(번뇌망상)를 잘 바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법일까요?

다음의 두사람의 예에서 부처님게 바 치는 좋은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궁한 A는 자신의 지인(知⼈)을 훌륭한 음식점에 초대하였습니다.

그 음식점이 너무 화려하기에 A는 초대받는 지 인들도 당연히 좋아하고 고마워할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A는 자신이 무슨 큰 은혜를 베푼 사람인양 기분이 들떠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고

심지어는 초대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요구조건까지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 은 그 요구조건을 거절하였음은 물론 불쾌한 기분으로 밥만먹고 돌아갔습니다.

마음이 후한 B는 A처럼 훌륭한 음식점에서 지인들을 초대하였습니다, B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음식 대접정도로는 고마 워할 것이라고 생각지 아니하였습니다.

B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품격이 있는 사람들이고 귀한 분들이라 생각하고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 가를 미리 알아 거기에 맞는 이야기 와

음악을 준비하였고 돌아갈 때에는 가벼운 선물까지 준비하였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식사 내내 유쾌한 담소를 나 누었고 A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시하였습니다.

위글을 통해서 A와 같은 사람은 생각을 잘 바치지 않는 사람 B와 같은 사람은 생각을 잘 바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 다.

위의 예에서 식사(공양)는 분별심이며 초대받은 사람은 부처님인 것입니다.

어째서 A는 생각을 잘 바치지 않는 사람이라 하였을 까요?

마음이 궁한 A는 공양을 바치는 마음이 순수할수 없었으며 따 라서 바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음이 후한 B는 공양을 바치는 마음이 순수하였습니다. 바칠 준비가 잘 된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받은 사람을 잘 접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B의 경우가

부처님께 분별심을 잘 바쳤다는 것에 비유되었던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분별심을

부처님께 바치려고 할 때는 순간이나마 후한 마음,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일시적이나마 부처님의 눈높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높이가 비슷해야 주고 물건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심이 없는 사람은 억지로라도 믿음 공경심을 연습하여 순간적이나마

부처님 마음이 되어야 바치는 것이 가 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공경심으로 부처님께 자신의 생각을 바칠 때 부처님은 기쁘게 공양을 받아주시는 것이고

바치 는 사람도 “ 바치는 것이란 참 쉽고도 참 재미있다.” 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3. 부처님께 바치는 것 가장 강력한 자기변화의 힘

유식(唯識)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것은 다 우리 마음이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만들고 산하대지(⼭河大地)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만드는 마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현재의식이 있고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잠재의식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의식(佛性(참나)의 세계도 있는 모양입니다.

현재의식 보다는 잠재의식의 힘이 더욱 강력한 모양이고 잠재의식의 힘보다는 불성의 세계의 힘이 더욱 더 큰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식은 각종 분별 심이 많이 섞여 있기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없고.

잠재의식은 현재의식보다 훨씬 분별심이 덜 섞여 있으므로 더 큰 힘을 발 휘하는 것입니다.

초의식(超意識,참나, 불성)의 경우는 아무 분별심이 섞여있지 않기에 무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현재의식만 보일 뿐 잠재의식이나 초의식은 보이지 아니합니다.

현재의식을 활용한 경우는 그 힘이나 적용범위가 지극히 미미하다 하겠습니다.

잠재의식이 곧이 듣도록 자기최면을 통하며 수많은 소원을 이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소원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잠재의식을 힘을 이용한다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만큼 잠재 의식의 힘이 큰 것입니다. 잠재의식을 활용한 경우 현재의식을 활용한 경우보다 능력 적용범위가 훨씬 더 넓다 하겠습니 다.

그러나 잠재의식의 힘보다 더 큰 힘이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고 이 힘이 부처님을 만남으로 이룩되는 것이고

부처님과 의 만남은 자신의 생각을 부처님께 바쳐 중생심을 불심으로 바꿈으로 이루어진다 하겠습니다.

실례를 들어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쌀 한 가마(80kg)를 쉽게 들고 싶은 경우 대개는 현재의식을 활용합니다.

다시말해 눈에보이는 것에 대 한 훈련 즉 체력단련의 방법을 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체력단련을 하면

근육에 힘이 붙고 근육에 힘이 붙으면 무겁다고 생각되는 물건도 가볍게 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쉽게 띠는 이 방법은 매우 어려운 방법이며 오직 젊은이만이 가능한 방법이며

젊은 시절이 지나면 물건을 들수 없게 되는 한계성을 지니게 됩니다. 둘째는 잠재의식을 활용한 방법

즉 자기 최면의 방법입니다.즉 “나는 이 쌀 80kg이 무겁지 않다.”라고 잠재의식이 곧이 들을 때까지 자기최면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습을 계속 할 때 어느날 드디어 자신의 잠재의식이“ 나는 이 쌀 80kg이 무겁지 않다.”라고 곧이 듣게 됩니다.

이 때 쌀 80kg은 어렵지 않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근육단련방법보 다 훨씬 쉬우며 적용되는 범위 역시 훨씬 넓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느때 “나는 쌀 80kg이 어렵게 느껴진다.”라고 생각 될 때가 반드시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곧 그 쌀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방법은 한계성을 나타 냅니다.

셋째는 초의식(참나,불성)의 위력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쌀 80kg이 무겁다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쳐 시봉잘하기를 발 원.

”하며 무겁다는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바치는 힘이 연습되면 쌀한가마가 무겁다는 생각이 착각이요 실로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 쌀 한가마는 전혀 무겁지 않게 느껴지면서 쌀 한가마를 쉽게 들어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방심하지 않는다면 연령에 상관없이 항상 쌀 80kg을 들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며 나아가서는

불가 능이란 착각이며 본래 없다는 수행을 지속하므로

모든 불가능이 사라져 매사에 유능한 일을 하는 일꾼으로 전환되는 것 입니다.

세 번째의 방법은 위의 두방법보다 실천하기 용이하며 적용되는 범위도 더욱 광범위 하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연령에 성별에 체력에 관계없이 두로 적용되며 이 방법으로 드디어는 모든 불가능이 본래 없는 것을 깨달아

사람이 완전히 바뀌고 드디어는 부처님세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 번째의 방법 즉 부처님께 바치는 방법을 택한 삶을 살 때 이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가장 능력있게 가장 지혜롭 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김원수법사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