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얻어걸린 불교

22/11/05 새벽법회 금강경 1분 2분 김원수 법사님

금강 반야 바라밀 2022. 11. 6. 17:56

오늘은 지난시간에 이어서 금강경제2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금강경제1분을 말씀드릴 때 

금강경제1분은 금강경32분 중의 일부가 아니다. 

즉 서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금강경1분 중에는 금강경전체의 모든 내용을 압축 요약해 다 포함되어 있다. 밝은이는 그것을 본다.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탐.진.치를 닦아서 또는 정확히 얘기하면 탐.진.치가 본래 없음을 깨달아서 밝아지는 내용이 금강경 내용이라고 한 다면 금강경 제1분에는 경제생활을 튼튼히 해서 탐심을 닦고 그리고 법률생활을 튼튼히 해서 진심을 닦고, 정신생활을 튼튼히 해서 치심을 닦는다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이 말을 들으신 분들은 금강경 제1분의 어디에 경제생활이라는 말이 나오고, 법률생활이라는 말이 나오고, 정신생활이라 는 말이 나오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著衣持鉢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리고 乞食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걸 식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생활을 의미합니다. 차제걸이는 건강한 경제생활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경 제생활은 탐심을 닦는데 매우 필요하다. 그런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 다음에 次第乞已라는 것은 요새 식으로 하면 법질서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차례차례로 해야 되고 부자한테만 가지 않고 가 난한 사람한테만 편중해서 가지 않는다. 법질서를 지키면서 한다.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고 즉 그것은 건강한 법률생활을 하는 것은 진심 닦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요렇게 해석을 했었던 거 같습니다. 
그 다음에 敷座而坐하시다가 이런 표현이 제1분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데 이것은 법문을 하시기 위해서 부좌이좌 하시는 겁 니다. 법문은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건강한 정신생활의 한 방법이다. 즉 치심을 닦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고 금강 경 제1분에 탐.진.치를 다 소멸하는 금강경전체의 뜻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 오늘 말씀드리는 제2분은 역시 짧고 이것은 금강경 전체의 내용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거 같아요. 그런데 역시 2 분도 금강경전체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의 내용을 다 포함되어 있다. 2분속에 금강경 전체가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서 전체가 다 들어 있느냐? 요 뜻을 설명하는 것이 제가 오늘 금강경제2분 강의의 목적이다. 요렇게 말씀드립니다.
우선 제일 처음에 
長老須菩提가 부처님께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왜 나오느냐 하면 2500년전 인도에 서 성자를 뵈올 때, 또는 어른을 뵈올 때 하는 예절의 한 표현입니다. 
卽從座起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앉아서 예절을 표시하는 것은 아마 적합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偏袒右肩 오른쪽 어깨에 가사를 억매는 인도의 예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右膝著地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는 것도 역시 예절이고 예절을 일단 갖춘다 는 것 이것은 제1분에서도 얘기했지만 건강한 법률생활을 한다. 확대해석하면 법질서를 잘 지킨다. 
우리가 법이라고 하는 것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라고 하는데 누구한테 욕을 한다. 이건 법질서를 깨뜨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법으로 처단을 받습니다. 살생을 한다. 이건 법질서를 깨뜨리는 겁니다. 특히 嗔心, 남한테 해를 끼치는 정신적인 표현이죠? 요 런 것들을 삼가야 된다는 것을 이 경 속에서는 간접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서 卽從座起하고 偏袒右肩하고 右膝著地하고 合掌恭敬은 우리가 그냥 다라니 외우듯이 주문 외우듯이 금강경 읽기만 하 면 뜻도 몰라도 좋다는 듯이 쭉 읽으면서 여기서 얻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예절을 갖춰서 진심을 닦고 진심의 반대인 공경심을 내라는 겁니다. 
원래 3,000배를 하는 것은 뜻이 있습니다. 3000배를 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처님의 발에다 대는 것입니다. 발은 제일 아래 천한 데가 발이고, 머리는 가장 위에 있습니다. 자기머리를 부처님의 발에 대는 것은 자기의 잘난척하는 마음을 제거하려는 즉 탐.진.치를 닦는 공경심의 한 표현이라고 절에서 스님들이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절을 하면서 참회가 된다. 요런 얘기를 합니 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예절은 탐.진.치 그중에서도 특히 진심, 올바른 법질서를 세우기 때문에 매우 필요하고요. 요새는 공경심을 앞장세워서 불교도 공부를 해야 되는데 공경심은 둘째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수련이라는 말과 종교는 상당히 틀립니다. 흔히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수련이라고 기독교인들은 폄하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수련과 뭐가 틀리느냐 하면 종교는 공경심, 그것도 절대 공경심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련은 탐.진.치 를 닦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이기심이 필요하게 되어있습니다. 수련을 하는 사람은 스승을 잘 바꿉니다. 더 좋은 스승이 있으면 좋은 스승이 있는지 없는지 자기 눈에 보이지도 못하지만 좋은 스승이 있다고 하면 서슴지 않고 바꾸는 것이 수련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딱 믿으면 부처님을 믿으면 쉽게 불교를 믿고 또 스승을 하나로 정하지 종교를 바꾸거나 스승을 잘 바꾸지 않아요. 굳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까지는 겉으로 봐서 잘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바꾸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불교를 수련으로 많이 생각을 했고 실지로 그렇게 가르칩니다. 거기 절대적인 공경심을 필요 없다고 생각을 했 습니다. 그리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게 불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 매우 필요하고 선지식을 만나고 난 이후에는 불교는 수련이 아니라 종교라고 배우게 되 었고, 자기 혼자서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에서 혼자서 할 수 없다. 반드시 스승이 필요하고 공경심이나 특히 그것도 절대 공경 심을 바칠 수 있는 스승이 반드시 필요하고 절대 공경심을 내야만 아상이 없어지고 이기심이 없어져서 밝아질 수가 있다. 이렇 게 저는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특히 금강경 2분에 卽從座起하고 偏袒右肩하고 右膝著地하고 合掌恭敬 이구절은 예절, 절대 공경심을 연습해라. 하는 뜻이 포 함되어 있고 이 구절 속에서도 어떻게 보면 금강경32분의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얘기해도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 을 합니다. 
希有世尊하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매우 드무신 어른이십니다. 그런데 이 希有라는 말은 상대적인 희유가 아니라 절대적인 희 유입니다. 저는 백선생님을 처음으로 뵈었을 때 1966년 이었다고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아주 그 말씀을 하시는데 머 뭇거리고 더듬거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질문을 해도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냥 청산유수라고 그러지요. 하 나도 주저함이 없이 씩씩하게 용감하게 얘기하는 것이 특징이었고 그리고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비관적이고 이런 얘기는 일체 없었습니다. 항상 희망과 용기를 주어서 시원하게 만드는 것이 학자 어떤 석학보다도 다 르고 어떤 스님보다도 낫다. 말하자면 希有하다. 이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희유는 수보리존자가 부처님을 희유하다고 느끼는 것은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옵고 야! 다른 분하고 틀 리다. 희유하다. 이런 희유와는 틀립니다. 왜냐하면 제가 느끼는 희유는 마음 밖에서 찾은 희유입니다. 즉 상대적인 희유입니 다. 
그런데 여기서(금강경2분) 나오는 희유는 절대적인 희유, 마음속에서 찾는 희유 즉 수보리존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석가 여래가 훌륭하다. 라는 그런 희유가 아닙니다. 수도를 해 보니까 내 마음속에 구족한 전지전능한 그 무엇을 발견했습니다. 내 마음속에 이렇게 훌륭한 보배가 있어? 이 보배를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저 분이요. 
즉 수보리 존자가 얘기하는 희유는 절대적인 희유 자기 마음속에 진리를 깨쳐서 無相의 보배가 있음을 알고 감동을 했고, 전율 을 했고, 체루비읍을 했습니다. 그런 희유가 금강경 2분에 나오는 희유입니다. 부처를 발견한 겁니다. 
이 希有世尊의 하나에서도 금강경 전체의 뜻이 다 포함되어있다. 요렇게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 마음속의 위대 한 그 무엇의 발견, 불성을 발견한 희유다. 요렇게 이해하시는 게 좋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해설서에 많이 있으니까 참고 하시고 너무 금강경을 다라니처럼 읽지 마시라. 그렇다 고 너무 꼼꼼 하게 뜻을 하나하나 새겨서 읽는다면 금강경 한번 읽는데 몇 시간 걸릴 겁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죠. 
단지 금강경을 알려고만 하고 읽으면 됩니다. 일일이 글자를 해석하라는 게 아닙니다.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알기를 발원하면 서 읽으면 알아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기를 발원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 소원성취하기를 발원하면서 읽습니다. 요것은 욕심 이 들어가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 다음에 善護念, 善付囑인데- 善護念,이란 마음속으로 부모가 철없는 어린애들이 장난을 하다가 불에 대일수도 있고 송곳에 찔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늘 걱정하는 마음, 이게 善護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걱정을 하는데 이 애가 말을 안 듣고 불에 대 이고, 송곳에 찔리고 이래요. 그럼 얼른 가서 말려요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善付囑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말하자면 善護念은 마음이고 善付囑은 행동이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렇게 하려면 부모님이 자식에 대해서 어떻게 해요? 자비심이 있어야 그 행동이 가능하죠? 그런데 석가여래는 자비심이 있어요. 자비심이 있고 이 중생들을 밝게 해 주려는 어떤 원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백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표현을 자주 하지만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이런 표현을 잘 쓰지만 나 중에는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이런 표현을 또 좀 쓰셨습니다. 말년에 가서는 석가모니불만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하신다는 것은 제도의 원력이 있어요. 그런데 특히 참선하시는 분들은 중생을 교화하기위해서 그렇지만 부처님 은 무심이다. 아무 분별이 없다. 요걸 무심이라고 그럽니다. 무심하신 부처님은 제도한다는 자비심도 없다. 그래서 무심하고 자 비심하고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 갈등을 하는 수가 있어요. 무심이야말로 부처님의 참 마음이기도 하지만 무심 속 에 무심이라는 것은 분별이 없다. 라는 뜻의 무심이지 자비심도 없다. 라는 그 자비심은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자비심이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주기 바랍니다. 
저는 무심해서 자비심도 따뜻한 마음도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 무심은 분별이 없다. 탐.진.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탐.진.치가 없다는 뜻에서 無자를 썼습니다. 그냥 목석처럼 무심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탐.진.치가 없으면 그 속은 절대적인 자비, 절대적인 지혜, 절대적인 능력이 있는 겁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이런 자비심 그 걸 同體大悲라고 하는데 자비를 느끼기 때문에 이 고생하는 중생들을 자기 몸처럼 느끼고 이네들을 어떻게 구원해줘야 되겠 다는 따뜻한 자비심이 석가여래의 마음에서 어떻게 제도를 해줘야 되겠다. 건져줘야 되겠다. 그래서 그 앞에다가 ‘제도하시는 석가모니불’ 이렇게 붙인다고 그렇게 압니다. 
또 미륵존여래불도 무심해서 목석처럼 우리는 수도를 하면 목석처럼 무딘 인간이 된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없을 無는 탐. 진.치가 없다는 뜻으로 쓰고 상대적가치는 원래 없다는 뜻에서 無입니다. 眞空妙有라고 잘 써요. 진공은 분별이 본래 빈 것이 다. 이런 뜻으로 眞空입니다. 깨달음도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저도 많이 착각을 하다가 뒤늦게 알았는데 
善護念, 善付囑 이렇게 따뜻한 자비의 마음을 내시고 행동까지도 다 해요. 이건 절대적인 가치인데 석가여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도 그게 있어요. 우리가 상처가 나면 피가 나오지 않습니까? 피가 저절로 흘러나오게 하면 우리는 죽고말 수밖 에 없습니다. 상처가 어느 정도 나오다가 저절로 상처가 아물죠? 이건 자연치유력입니다.

 

우리 몸속에서도, 우리 마음속에서도 우리를 善護念, 善付囑 하는 요소가 있어요. 즉 우리 마음속에서도 부처님 마음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는 그걸 알았어요. 우리 마음속에서도 佛性이 있습니다. 그 불성은 우리 자신을 善護念, 善付 囑을 합니다. 
우리는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났을 때 예감이 딱 떠오르는 수가 있습니다. 善護念입니다. 그리고 어떤 난제가 딱 닥쳤을 때 그 것을 보호하는 능력자체가 우리 몸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깨닫고 보니까 그것은 나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 한테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불성의 특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석가여래는 너희들은 모두 다 부처다. 그것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고 금강경은 바로 그 방법을 설명해 주시 기 위해서 하신 것을 알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먼저 자기 속에 불성이 있음을 깨닫고 석가여래도 그 불성을 개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부처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임을 알고는 인제 질문을 하는 겁니다. 
希有世尊하 如來 善_護念諸菩薩하시며 善_付囑諸菩薩하시나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먼저 자기가 깨달아야 질문을 하지 우 리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 질문할 때 자기가 아는 것을 질문해요, 모르는 것을 질문해요? 모르는 것을 질문합니다. 그런데 모르는 것을 질문을 하면 지식 밖에는 얻을 게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더라도 저도 알고 보니까 모르고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도 몰라요. 그건 확실해요. 그런데 자기가 어느 정도 터득하고 난 뒤에 질문을 하면 확실히 알죠. 
그러니까 질문을 하려면 아는 사람이 질문을 해야 대답도 제대로 하고 소득이 있습니다. 지혜를 얻습니다. 
그런데 모르고 질문을 하면 지식밖에는 얻을 게 없어요. 지식은 특히 번뇌를 소멸하는데, 생사를 해탈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지혜를 얻어야만 번뇌를 소멸하고 진정한 행복을 얻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수보리존자는 자기가 먼저 깨달음이 있은 뒤 질문을 한다. 이렇게 보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善_護念諸菩薩하시며 善_付囑諸菩薩하시나니까 이것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자기 속에서 善 護念, 善付囑을 이미 깨닫고 난 뒤에 아! 석가여래는 당연히 그럴 것이고, 그런 것을 가르쳐주신 위대하신 분이고 이런 등등해 서 질문을 하니까 그 뒤에 如汝所說하야 네가 얘기한 것처럼 如來 善_護念諸菩薩하시며 善_付囑諸菩薩하시나니라.  그럼 이미 더 이상 할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말이 없어요. 거기서 다 해도 됩니다. 인제 금강경 한 단어, 한 구절 속에서 금강경 전체의 뜻이 다 포함돼있습니다. 또 금강 경1분자체에서도 다 포함되어 있고, 2분에서도 다 포함되어 있다. 저는 금강경을 이렇게 해석을 해야 제대로 해석을 하는데 요새 해석은 서양식 논문해석이 되어 금강경1,2분은 금강경의 서론이다. 3,4분은 본론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데 서양식의 해 석이고, 그것은 적어도 불교지식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참 깨달음을 이르게 하는 데는 잘못된 해석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시간이 길게 할 수 없으니 간단히 마칩니다. 그랬더니 결론적으로 
善哉善哉라 須菩提야 칭찬을 하세요. 정말 너는 입으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어느 정도 체험을 했고 깨달은 걸 바탕으 로 해서 여러 사람들을 밝게 해 주시면서 질문을 하는구나. 이 얼마나 지혜롭고 훌륭해요. 그러니까 善哉善哉라 이 얘기를 하 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서는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인데는 - 밝아지려고 한다면 應云何住며 - 어떻게 수도를 해서 
云何降伏其心이니잇고 - 수도를 해서 깨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인데는 - 밝아지려고 한다면 
應如是住며 如是降伏其心이니라 - 이와 같이(네가 깨달은 것처럼 이런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如是라는 말은 막연한 말이 아니라.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너 알지? 나도 알고, 이렇게 수도하면 이렇게 깨닫게 되는 것이니라. 이렇게 얘기하신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참고적으로 이 예절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신적으로는 공경심이 예절입니다. 身, 口, 意라고 그러죠. 意는 정신적으로는 절대 공경심이 예절의 한 표현입니다. 그 다음 口 입으로는 ‘아니’ 소리를 하지 말아야 됩니다. ‘네’하는 마음이 또 예절입니다. 그리고 身 몸으로서는 절하고 예절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백선생님께서는 얼마나 철저하게 예절을 지키시는지 잠시 말씀드리고 요새 스님들은 또 어떤지 요것도 또한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백선생님의 스승이 있었습니다. 
손선생님이라고 여기 동상 세우신 분이 스승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여자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스승이라고 생각을 하시지 않고 ‘여자가 뭘 어떻게 스승이 돼’ 이러고 좀 무시하셨다고 그럽니다. 
그랬는데 함부로 할 수가 없어서 서로 문답을 하는 과정에서 완연히 백박사님이 그분이 보통분이 아니다. 정말 부처님의 화신 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아시게 되면서 아주 절대 스승으로 모셨다고 그럽니다. 
들리는 일화에 의하면 6.25때 본인보다도 스승의 피난을 위해서 내무부장관 당시에 국방부장관 신성모씨라고 있었는데 그이 한테 부탁을 해서 특별편으로 손선생님을 먼저 부산으로 피난 시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측근한테서 들은 얘기에요. 
겨울이 돼서 매일같이 백선생님은 손선생님을 찾아뵈러 왔는데 부산피난시절에서도 그렇고 해방전후로 해서도 그렇고 손선생 님은 회화동에 사시고 백선생님은 돈암동에 사셨는데 통행금지 싸이렌 해제가 아마 4시인가 그랬는데 저희가 어렸을 때도 통 행금지 해제 싸이렌이 있었어요. 그 전에는 못 돌아다닙니다. 


통행금지 해제 싸이렌이 딱 울리면 돈암동에서 회화동까지는 한10리(4km)는 될 겁니다. 걸어가신 뒤에 반드시 매일 아침 목욕 재계를 하고 매일 씻고 매일 찾아뵙고 부산에서도 우리가 백선생님한테 3배를 드리고 법문을 청하듯이 매일 같이 그때 백선생 님은 6.25때만 하더라도 아주 도인이 다 되셨던 그런 훌륭한 분인데도 불구하고 손선생님한테 매일 3배를 드렸답니다. 손선생님은 법문을 하시는데 때에 따라서는 꾸중도 하신대요. 백선생님같이 장관을 지내신 분이고 참 그런 훌륭한 도인한테 막 꾸중도 하시고 이랬다는데 그 꾸중을 그대로 앉아서 감수하셨다고 그럽니다. 이런 예절은 지킬 필요도 없는 분이시죠. 그런 데 바로 후학을 위해서 그러신지 예절을 철저히 지키셨고 스승을 아주 절대로 모셨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이게 필요해요.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우리가 ‘길 없는 길’이라는 최인호씨의 장편소설인데 거의 실화죠. 다큐식의 소설입니다. 그런데 그 소설을 보면 큰스님들이 나 옵니다. 그런데 무애자재한 행동을 해요. 여자 앞에서 옷을 벗고, 키스를 하고, 이게 깨친 이의 경지라고 얘기하는 수가 있어서 요새 스님들이 걸레스님 무슨스님 해 갖고 막행막식을 막 하는 것은 도인의 한 증표로 보는 수가 있는데 제가 우리 선생님께 한번 여쭈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절대로 깨친 이의 증표가 아니래요. 여자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은 원래 음탐심이 많았던 사람이 그 짓을 한대요. 본래 없었던 사람이라면 여자 앞에서 옷을 벗을 이 유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애자재한 것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여자 앞에서 여자라고 보지를 않고 부처님 으로 보고 그렇게 행동을 해야 된다는 것이 백선생님의 가르침이고 그런 도인의 법식을 나타내는 것이 卽從座起하고 偏袒右 肩하고 右膝著地하고 合掌恭敬 이런 표현이라는 것을 참고로 말씀드리면서 우리는 말투, 행동, 마음, 여기에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보고 절대 공경심을 내고 입으로는 항상 ‘네’하고 부정하는 말 하지 말고, 몸으로도 合掌恭敬합장공경 이런 등등의 깍듯한 예절을 하면서 상대를 부처님처럼 보는 이런 자세가 밝아지는 올바른 길이다. 이것을 참고로 부연해서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금강경제2분의 정신이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_()()()_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복 많이 짓기를 발원합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