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얻어걸린 불교

새벽법회 2022/11/19 금강경 3분

금강 반야 바라밀 2022. 11. 20. 13:38

 

오늘은 수행하는데 가장 제가 많이 받는 질문 “부처님께 바쳐라 이 뜻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 얘기를 잘 들으신다면 앞으로 다시는 ‘바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아마 이렇게 여기에 대한 의문이 다 풀려서 바치는

데에 대한 분명한 뜻을 알게 되면서 실감나게 모든 분별을 다 바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무슨 생각이든지 바쳐라.’는 것은 생각대신 난제라고 대입해서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보통 생각들은 다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속합니다.

이 난제를 가지고 있는 한 도리어 역경이 되고, 숨 막히는 일이 되고, 죽음 이 되고 그래서 굉장히 괴롭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것을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 해결하는 방법이고 바치게 되면 난제가 쉬운 문제처럼 변하고,

쉬운 문제처럼 변하면서 그 해법도 알아진다. 요렇게 확대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이든지 바쳐라’의 뿌리는 어디서 근거가 있느냐? 무슨 생각이든지 바쳐라 하지만 이 근거가 무엇이냐?

묻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백박사님이 새로 창작해낸 말이냐? 새로운 수도법으로서 만들어 낸 말이냐? 이렇게 질문할 수가 있습 니다.

새로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2,500년 전에 석가여래께서 금강경에 이미 해 놓으신 말씀이다.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백박사님이 새로 만들어 낸 말이 결코 아니다. 라고 이해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근거가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과연 진리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 다.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어떤 도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낭설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 근거는 분명히

석가여래 의 말씀에 근거하고 수많은 석가여래의 말씀 중에서 금강경에 있고 금강경 제3분에 바로 근거가 있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수 행해야 된다. 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금강경 3분에 보면

모든 중생의 종류에는 제가 그것을 간단하게 줄여서 所有一切衆生之類에는 제일먼저 若_卵生이 나오고 그 다음에 胎生이 나 옵니다.

이것을 우리는 눈앞에 나타나는 어떤 생물처럼 생각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일단 그렇게 생물이라고 생각을 한번 해 봅 니다.

대부분의 금강경 해설자들은 그것을 바로 직역을 해요. 직역을 하면 어떻게 해석이 되느냐 하면 一切衆生 모든 중생 중 에는 알로 까는 것卵生, 태로나는 것胎生, 若_濕生 습한 곳에서 태어나는 중생, 이런 중생을 我皆令入 내가 다 無餘涅槃에 令入 집어넣어서 而滅度之 제도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실천불가능한 해석이 돼요. 여기 모든 눈에 띄는

내 친구,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 형제, 처자, 친구, 스승 이 모든 중생들을 다 제도해서 부처를 만들겠다고 해라. 이게 직역이 됩니다.

無餘涅槃은 부처님 자리를 얘기합니다. 이것을 번역을 해서 寂滅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이 적멸은 바로 부처님 세계를 얘기 합니다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해서 부처님 만들겠다고 해라 이것이 보통 금강경 해설서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해석이 이렇게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을 하게 되면 실천은 거의 불가능하다. 라고 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자식 중에서도 사랑스 럽고 말 한마디 안 해도 잘 따라 하는 자식도 있지만 수많은 속 썩이는 자식이 더 많은 거 같습니다.

그리고 부부끼리도 화목한 가정이 있지만 부부끼리도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가정이 상당히 많은 거 같아요. 그럼 이런 말 안 듣는 자식을 잘 교화해서 성인군자가 되게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다음에 속 썩이는 처자를 잘 다루어서 말 잘 듣고 화목한 가정으로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 다.

그래서 대부분의 금강경 해설서에는 이런 모든 중생들을 다 제도하여 부처 만들겠다.

(직역) 이렇게 직역을 함으로써 실천을 불 가능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도인의 출현이 꼭 필요합니다. 신지식의 출현은 필요합니다.

도인은 무엇이냐? 여기서 우리가 도인의 정의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도인은 제가 쭉 들어본 결과 이 세상은 조물주 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내 분별심, 내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다.

즉 一切唯心造다. 요것을 깨우친 이를 도인이 라고 한다. 저는 이렇게 정의 하고 싶습니다.

그 도인은 이런 중생을 마음 밖의 어떤 사람이라든지, 동물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 이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 밖의 사람, 동물, 귀신 이것은 다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피조물로 보기 때문에 이런 중생을 분별심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 분별심을 제도해서 부처로 만들겠다. 고 하는 뜻은 모든 나쁜 놈들,

고약한 놈들 이런 것들을 다 잘 타이르고 교화시켜서 부 처와 같은 성인을 만들겠다고 해라. 이렇게 해석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중생도 내 마음 밖의 중생으로 해석하지 않 고 분별심으로 해석하듯이 부처도 내 마음 밖의 거룩한 성자로 해석하지 않고 내 마음속의 평온한 마음, 고요한 마음으로 해석 을 해요. 왜냐하면 내 마음이 모든 현실을 만든다, 라고 즉 一切唯心造를 깨친 이가 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도인은 모든 분별심을 부처님 하는 마음으로 바꾸어라.(도인의 해석) 요렇게 해석을 해도 마음 안에서 찾는 해석이 되기 때문 에 상당히 실천가능한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바꾼다는 이게 타동사인데 내가 어떻게 한다. 라는 내가 바꾼다. 이 바꾼다. 는 타동사가 들어가면 나라는 게 반드시 전제되고 아상이 도입이 되고, 이기심이 도입이 됩니다.

그래서 도인은 바꾸어라가 정답이 되기는 하지만 바꾸어. 라고 해석을 하지 않고 이기심이 사라진 해석, 이기심이 있는 한 깨 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가를 무척 생각했었을 거 같아요. 그래서 그것을 공경심이 나면서 실천할 수 있는 해석으로 바꾸었다고 그럽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좀 더 구체화 시킨 해석입니다.

‘네 생각이 그냥 바쳐라‘인데 실지로 fact로 알면 바칠 수가 없어요. 마음 밖의 어떤 현실로 보기 때문에 그 분별로 봐야하고 그 분별이 실지로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면 소멸할 수도 없고 바칠 수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착각인 줄 알고‘ 라는 단어를 도입을 해야 되요.

그런 말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도 마음 밖의 부처님 하면 형상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형상이 없다, 라는 단어를 꼭 써야 됩니다. 그것을 바 쳐라. 바꾸어라. 만들어라. 이렇게 하면 반드시 이기심이 반드시 동반하게 돼 있습니다. 놓아라. 이것도 ’나‘라는 것이 전제가 되 고, ’이기심‘이 동반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수도할 수 없다. 고 생각을 해서 ’바치라‘는 용어를 만드시는데 3년이 걸렸다 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건 백선생님의 아주 독창적인 단어인데 바치라고 하면 이기심이 상당히 소멸이 돼요. 그리고 공경심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부처님하면 마음 밖의 부처님을 생각할 수가 있는데 마음 밖의 부처님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부처님 이것은 寂滅 이다.

형상없는 마음으로 해석을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내 모든 분별심 하면 또 약간 추상적이 돼요. 내 마음밖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백박사님은 모든 분 별심이라고 우리가 하면 그걸 바로 수정을 하셨어요. 그것은 네 생각이다.

네 생각을 부처님 하는 아무 형상 없는 마음 거기에 바쳐라. 요렇게 합니다. 공경심으로 바쳐라.

이것을 좀 더 쉽게 풀이하면 그러면 평온을 얻을 것이다. 특히 소승불교에서는 평온을 얻을 것이다. 라고 해결해야 됩니다.

그 런데 우리 대승불교에서는 난제가 해결이 되리라. 사람이 바꾸어질 것이다. 그러면 극락세계가 만들어 질 것이다.

이렇게 해석 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진일보한 도인의 해석) 대승불교에서는 그렇게 말씀

여기까지 좀 더 실천하기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하면 실생활에 응용한 도인의 해석은 네 생각을 크게 2로 나누면 愛.憎 둘로 이 분화시킬 수 있습니다. 미운생각을 卵生이라고 그럽니다. 배은망덕한 놈 고약해요, 안 고약해요?

그래서 제일먼저 卵生 증오 심, 胎生 사랑하는 마음, 애증 신심명에도

단막증애但莫憎愛 사랑과 미움만 없으면, 통연명백洞然明白 하리라.

바로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리라. 즉 사랑과 미움이 우리 대표적인 중생들의 용심의 특징이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

그래서 네 생각이라고 해석을 하시다가 미운 생각, 애틋한 생각을 다 바쳐라. 착각인 줄 알고 바쳐라. 부처님께 바쳐라. 형상 없 는 부처님께 바쳐라. 그것을 다 바치면 소멸이 될 것이다. 요 뜻이 됩니다. 사랑하는 생각. 미워하는 생각이 있는 한 모든 난제 가 생기고 고통이 생기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긴다. 그런데 그 생각을 형상 없는 부처님께 바치는 것은(바친다는 말은 소 멸하면 요런 뜻입니다.)

소멸하면 부처님이 안 보이거든요. 부처님 만들면 하는 것은 소멸하면 평온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해 석을 해요.

그런데 진일보하면 즉 대승불교에 가면 알아질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십니다.

다 바쳐라. 모르니까 바칠 것이 생기는 것이다. 다 바치면 그 생각의 정체가 알아질 것이다.

알아진다는 것이 무엇이냐? 대개 전생이 알아진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생 체험의 얘기를 많이들 하시고 당신의 전생 체험 이야기를 하시다가 우리 제자 들도 전생을 깨닫고 그것을 선생님 도인한테 말씀드려서 그것을 인가를 받는 이런 단계가 우리는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전생이 어떻게 알아지느냐 하면 제일 먼저 형상으로 나와요. 형상으로 나오다가 예를 들면 저 사람이 되게 그리워요.

대개 그리운 수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태어난 감정이 미운 감정은 잘 모릅니다. 특히 어린애들은 증오심을 잘 모릅니 다.

그리운 게 많습니다. 그립고 질투까지는 됩니다. 그런데 그립고 질투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증오심으로 변하고 증오심으로 변하는데 자꾸 바치면 바치는 실 예가 있어요.

그것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죽이는 장면으로 나옵니다.

그럼 A가 난지 B가 상대인지 그리워하는 상대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 니다.

그런데 그걸 자꾸 바치게 되면 죽이는 2장면이 나오는데 A는 나고 B는 내가 그리워하는 상대라는 것이 어렴풋이 알아지 면서 전생에 내가 A였고 그리고 내가 그리워했던 대상은 B였는데 알고 봤더니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그를 죽인 살생한 업의 결과다.

살생업보다. 요렇게 해석이 되고, 그렇게 해석이 되니까 다시는 그리워지지 않습니다.

미워지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렇게 미워질까?

이유 없이 미워지는 수도 있고, 이유 있게 미워지는데 이유 있게 미워지는데 너무나도 미워지는 건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겁니 다. 그래서 거기다가 미워지는 것으로 나가다가 거기다가 이름까지도 붙여요. 뭐라고 붙이느냐 하면 원수라고 이름을 붙입니 다.

더 이름을 붙여서 불구대천지원수라고 붙입니다. 인제 이름까지 붙이면 더 안 바쳐지죠.

어제도 제가 법문시간에 이름 짓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름 짓기 전에 증오심은 바치기가 쉬워요.

그런데 이름을 짓게 되면 더 고착이 돼서 안 바쳐집니다.

미운 사람의 경우는 밉다 하다가 원수라고 이름을 짓고 그 다음에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이름을 짓 그 다음에 그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립다. 그립다가 안 돼요. 애틋한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옵니다.

애틋한 감정이 그 리운 감정으로 하고 거기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또 붙입니다. 거기다 또 이름을 지어요.

이름을 짓는 게 뭐냐 하면 엄마, 엄마가 가장 애틋하고 그립고 남성인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애틋하고 그립고 이름을 짓는 것을 엄마라고 그럽니다.

또 엄마라고 이 름 짓기도 하고 또 애인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애인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다. 요렇게까지도 이름을 짓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름을 지으면 진짜처럼 보여요. fact가 아니라 진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엄마며 원수가 이렇게 사랑과 미움을 느끼다가 이름까지 짓고 그것을

실제세계인양 착각을 하고 궁리하면서 실세계를 우리가 꾸며놓습니다. 이렇게 꾸며 놓 으면 도저히 못 바쳐요.

현실인줄 아는데 어떻게 바쳐집니까?

그런데 현실인 줄 알고 정말 사랑하는 존재가 있는 줄 알고 정말 미워하는 존재가 있고 이름을

붙이고 소설을 쓰고 거기 한 주 인공이 돼서 활동을 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생각을 하면서 진짜 존재한다. 요렇게 됩니다.

그러면 난제가 생기고 여러 가지 괴 로움이 생깁니다.

이걸 자꾸 바치라고 그래요. 자꾸 바치면 엄마라고 했다가 엄마라는 이름이 점점 퇴색이 됩니다.

애인이라고 했다가 애인이라는 이름이 점점 퇴색을 하면서 애틋한 감정만 남아요.

애틋한 감정이 남았는데 애틋한 감정도 자꾸 바쳐요. 바치면 애틋한 감정이 사라집니다.

사라질 때까지 자꾸 바쳐야 됩니다. 우리가 거기다 대고 미륵존여래불 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마음이나 미운 마음이 있는 한 그 정체를 모릅니다.

자꾸 바치면 사랑 하는 마음도 애틋한 마음도 자꾸 사라지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가라앉아요.

평온한 마음으로 가라앉아도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게 완전히 無餘涅槃 而滅度之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자꾸 바치면 아! 이 평안한 마음에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진대요. 그게 전생을 아는 겁니다.

전생을 알고 봤더니 대개는 그것이 모양으로 보입니다. A라는 어떤 사람과 동물일수도 있습니다.

B라는 사람이 죽이는 장면으 로 나타납니다. 죽이는 장면도 잘 모르죠? 그것도 자꾸 바치면 A가 나요.

B는 상대라는 것도 알게 되고 바로 내가 애틋하게 그 리워했던 것이 바로 살생업보의 결과로구나. 또 미워했던 그 뿌리가 살생업보의 우리는 미워하고 할 때는 그 이유를 다 댑니 다.

이러니까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니까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건 누구나 미워하고 누구나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결론까지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요게 자꾸 바치면 누구나가 아니라 내 전생의 업보이기 때문에 미워합니다.

요렇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돼야 돼요. 그 런데 실제로 우리 소사에 있을 때 그런 체험들 많이 했던 겁니다.

우리 소사 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중의 하나가 또 선생 님한테 털어놓았던 질문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참 우리 어머니 위대하신 우리 어머니, 또는 우리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고생하 시는 우리 어머니,

이 고생하시는 어머니한테 은혜를 갚아야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이기 때문에 애인이 있을 수가 있잖아요? 우리 사랑하는 애인 그걸 그립고 참 아름답고 그리고 도와줘야 되고, 그이를 욕하면 내가 부르르 떨게 되고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너희 어머니가 이렇게 위대하냐? 거기에 대해서 잘 평을 안 하세요. 그러다가 바쳐라. 대개 이렇게 바치면 네가 알 것이다. 이렇게 합니다. 지금 우리는 바쳐라만 하지 바치면 그 정체를 알 것이다.

라는 얘기는 잘 안 해요. 왜냐하면 정체를 안다는 것은 전생을 안다는 것이고, 전생을 안다는 이야기는 용이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대개 어떻게 얘기 하냐 하면 바쳐라.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 질 것이다. 요렇게까지는 얘기를 합니다. 또 난제를 바쳐라.

난제가 해결이 될 것이다.

요렇게까지는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더 난제를 해결되려면 그 난제의 원인이 대개 전생에 있으면 전생을 봐야 숙명통이 나야 난제가 해결이 됩니다.

원인을 안다면 해법도 나옵니다. 우리가 소사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 위대하신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 생 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묵묵히 그것을 바쳐라, 바쳐라. 그러십니다.

또 애인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랑스러운 애인을 생각하면 아! 참 견딜 수 없이 지금도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그 럼 바쳐라 얘기합니다. 처음에는 동조도 합니다. 그래 그립지? 보고 싶지?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하니? 가지고 있으면 괴롭지 않냐? 바쳐라. 대개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인제 조금 더 진일보하면 그래 자꾸 바치면 너는 어머니 너의 어머니의 정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지 않아?

요렇게 얘기를 합니다. 알고 싶다고 얘기를 하면 한번 바쳐봐라. 네가 알 것이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또 미워하 는 경우도 있어요. 자꾸 바치고 바쳐봤는데 정말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죽이는 모습을 봤습니다. 죽이는 모습을 나타내니까 A가 누구야? B가 누구야? 이렇게 됩니다. 알고 봤더니 A는 자기고 B는 사랑스러운 어머니라는 것 을 느끼게 되면서 이게 사랑스러운 어머니가 아니라 살생업보가 아닙니까? 요 정도까지 느껴지면 선생님은 그때 가서 그럽니 다.

네가 엄마께서, 엄마께서 너의 엄마가, 엄마가 아니야, 살생한 업보야 이렇게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면 소름이 쫙 끼쳐요. 그런 데 대개 엄마, 애인 죄송합니다. 남편, 아내, 끊을 수 없는 인연들 아니에요? 그런데 대개 죽이고 살리는 업보들입니다. 대부분 입니다.

그런 소리 들으면 끔찍할 거예요. 그러니까 알아질 것이다. 네가 알아봐라. 요렇게 얘기하십니다.

습니다. 그 다음에 더 붙여서 이 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서 내가 죽여야 된다. 요렇게 까지 발전을 합니다.

그럼 이 원수 업보를 어떻게 만나? 당장 헤어져야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제도 헤어져야 되겠다고 질문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인과응보의 진리 못지않게 재앙이 축복이라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 업보인 줄 알고 원수를 자꾸 바치면 원수가 변해서 은인이 되고 이게 또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원 수업보라고 알면 당장 하는 것마다 나를 숨 막히게 하고, 꼭 나를 재수 없게 만들고,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저이는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증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다가 그걸 또 바쳐봐라.

바쳐보면 그게 내 생각이고 전생을 알았지만 이 전생만 알게 되면 증오심이 싹없어 집니다.

아! 그이 때문에 내가 밝아졌다. 라고 하면서 전생을 만약 알면 은인으로 또 둔갑을 합니다.

요렇게 하면서 미운 생각이 없어지 고 고맙게 되거든요.

이게 불교의 또 하나의 진리 재앙이 축복이라는 진리까지 알아지게 되면서 바치라는 뜻을 아마 실감나게 되실 거 같습니다.

여기까지 하면 바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더 이상 안 하시겠어요? 그리고 내 사랑하는 마음 이것 즉 그 뿌리는 대개 사랑이 아닙니다.

살생일 수가 있습니다. 살생이라고 그래서 미워하면 안 돼요.

살생! 하! 알고 봤더니 살생업보야 그러면서 정이 뚝 떨 어지면서 그 뒤에는 증오심을 내는 수가 있더라고요.

그게 궁리죠? 그것도 바쳐야 됩니다. 바치게 되면 그것이 은인으로 바뀌 거든요.

그럼 미움이 없죠. 다 부처님처럼 보이게 되는 겁니다. 요렇게 하셔서 바친다는 것의 뜻을 알아야 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 중생을 제도 한다는 것은 직역입니다.

이 중생을 분별심으로 보고 부처를 부처님 마음으로 보는 것은 도인의 해석입니다.

내 안에서 찾을 때 그것은 착각인 줄 알고 형상 없는 부처님께 바쳐라. 인데 그것을 소멸하라, 라고 해석이 되고 소멸할 때 평 온한 마음을 얻게 되고, 평온한 마음을 얻게 될 때 그 정체가 알게 된다. 알게 되면 특히 사랑일수록 미움의 뿌리가 된다는 것 을 알고 증오심을 살생업보라고 알게 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정이 떨어지기도 하고 해탈이 됩니다.

정이 떨어지면서 미워지는 게 아니라 정체를 알게 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게 될 때 미워지기도 하지만 해탈이 되어서 은인 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립니다.

부처님께 바치는 것을 잘 깨우쳐서 부처님 시봉 잘 하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_()()()_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짓기를 발원합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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