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시느라고 대단히 수고가 많으십니다.
잠이 본래 착각이고 없는 것이라고 그럽니다.
잠이 분별이고 본래 없는 것을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은 금강경 제11분에 대한 말씀을 짧게 한 30분 동안에 정리해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본문을 간단히 읽고 직역을 해 보겠습니다.
須菩提야 항하라는 것은 인도의 강 간지스강을 얘기합니다. 간지스강가에 있는 모래 수만큼의 항하 모래수가 굉장히 많죠?
그 항하가 굉장히 얼마나 많지 않겠느냐?
이렇게 부처님께서 물으시니까 須菩提言하되 수보리존자가 말씀하시기를 매우 많습니다. 부처님이시여,
但諸恒河도 간지스강의 항하도 尙多無數은 何況其沙리니이까 -
굉장히 많을 진대는 하물며 그 모래 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많겠습니다.
즉 한강의 모래 수도 굉장히 많은데 제가 알기로는 인도의 간지스강은 한강의 약 5배정도 길더라고요.
긴 강유역의 연변에 모래 수는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모래 수만큼의 항하 간지스강의 또 모래 그 모래는 매우 많다는 뜻이 되겠죠.
須菩提야 我今에 實言으로 告汝하노니 - 수보리야 내가 너에게 진실로 이르노니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七寶滿_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以用布施하면 得福이 多不아 -
칠보로 항하사수의 곱하기 삼천대천 세계 모래수도 많은데 모래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 가득히 채워서 보시를 하면 이 복이 많으냐?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여기서 칠보라는 단어를 왜 쓰셨으며 보시라는 단어를 왜 쓰셨으며, 보시를 하는 것이 왜 복으로 연결되느냐.
이 얘기를 꼭 한 번 검토해보는 것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고 칩시다.
돈에 대한 욕심을 낼 필요도 없이 우리가 무한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가 정해 봅니다.
그럼 여기에 금덩어리, 은덩어리, 진주 칠보라는 게 금, 은, 유리, 파려, 자거, 진주, 마노
(金·銀·瑠璃·玻璃·硨磲·赤珠· 瑪瑙) 우리는 그런 걸 보면 욕심이 나서 내 주머니에 넣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걸 가지면 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어떤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왜 생기느냐? 자기가 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전혀 궁하지 않고 수많은 이 지구상에 모 든 재산이 다 내 것이라고 가정하면 그 칠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칠보라는 단어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칠 보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뜻입니다.
항상 우리는 일체유심조를 알아야 됩니다.
다 마음이 만들었다는 것으로 칠보로 보시한다는 것은 욕심을 덜어냈다는 뜻입니다.
욕심을 덜어낸다는 것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시는 남한테 베푼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돈을 준다는 거예요. 돈을 주는 것이 왜 복이 되느냐?
간단히 얘기하면 우리가 저금한 돈을 은행에 가서 돈 달라고 하면 은행원이 돈을 줍니다.
은행원이 나한테 돈을 준다고 해서 은행원은 보시를 한 것이 아닙니다.
아까운 자기 것을 남한테 베풀어야 즉 욕심을 덜어내야만 복이 되고 공덕이 됩니다.
그런데 은행원이 돈을 주는 것 은 자기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심부름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도 복이 되지 않습니다.
즉 보시라는 말 속에는 우선 자기 속에 욕심이 있다는 뜻이고 욕심을 덜어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고 욕심을 덜어내는 것이 왜 복이 될까?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왜 죄가 될까? 우리는 이것부터 생각해야 됩니다.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죄가 되느냐? 욕심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욕심가지고 있다고 죄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욕심을 덜어낸다고 그게 복이 된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욕심을 덜어 내는 것이 확실히 복이 된다고 느끼신다면 보시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을 겁니다.
그런데 욕심을 덜어내는 것이 복이 된다는 생 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욕심을 덜어내는 행위 즉 보시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왜 욕심을 덜어내는 행위가 복이 될까?
이 걸 한번 검토해 봐야 됩니다. 원래 부처님께서 얘기하신 뜻이 우리는 전지전능한 부처인데 욕심이 덮인 부처예요.
욕심만 덜어내면 욕심만 제거하면 부처의 본 모습이 들어나서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그럽니다.
즉 욕심을 덜어내는 순간 부처님 광명이 우리한테 임하고 부처님 광명은 복과 공덕이 될 수 있다.
요렇게 이해를 하기 때문에 욕심을 덜어내는 것은 큰 복덕이 된다. 일단 요렇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효녀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을 구하기 위해서 중국 상인에 의해서 인당수에 몸을 던집니다.
효녀심청은 막연한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지금 고대사 사학자들이 주장하고 있고 인당수에 몸을 던져서 연꽃이 피었다는 것도 아마 사실이고 연꽃이 피어서 중국의 어떤 임금한테 바쳤더니 연꽃 속에서 심청이 태어났다는 것도 아마 사실이라고 해 서 심청이 학회가 있을 정도로 거기에 대한 많은 논문을 저는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삼백석에 자기 몸을 보시하는 거요 몸이 얼마나 아깝습니까?
아까운 것을 주는 것, 즉 탐욕심을 덜어내는 것을 자기가 본래 전지전능한 부처인데 탐욕심에 가려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탐욕심을 덜어냄으로써 부처의 본 모습, 즉 전 지전능한 본 모습이 일부라도 드러남으로써 복이 된다.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됩니다. 보시는 욕심을 덜어내는 겁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보시할 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한다 는 말 속에는 뭐가 포함되어 있느냐 하면 욕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시한다는 것은 욕심을 덜어낸다는 겁니다. 소멸한 다는 뜻입니다.
소멸이 왜 복이 되느냐 하면 자기가 본래 전지전능한 부처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그 욕심에 가려서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욕심을 떼어내 덜어내 소멸함으로써 전지전능한 위력을 일부라 러내기 때문에 복이 된다
그냥 돈 주는 것이 왜 복이 될까? 우리는 그 뜻을 이해해야 됩니다.
즉 심청이는 삼백석을 던지는 것은 욕심을 떼어냈다는 뜻 이고 욕심을 떼어냈기 때문에 복이 됐고 왕비가 됐다.
이렇게 해석해야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도 보시가 왜 복이 될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왜 복을 받을까?
우리 주역에도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 여경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좋은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불선지가積不善 之家 좋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필유여앙必有余殃 반드시 재앙이 뒤따른다.
이런 이야기를 저는 주역에서 많이 읽었습니다. 저는 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복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복을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 좋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재앙이 생긴다는 말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욕 심이 해롭다는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보고 재앙을 안 당하는 것을 제 근시안적인 시안으로 보았 기 때문입니다.
제가 깜깜했고 지혜가 없었고 제가 지금 와서 공부에 보람을 느꼈던 것은 참 철없었던 초등학생시절 순진했던 시절이 아니었 습니다.
너무나 무지했고 한심했고 탐욕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 어렸을 때 시절이라는 것을 지금 알고 보시와 공덕이 된다 라 는 밝은이의 말씀을 따라서 제가 베푸는 것이 공덕이 된다는 것을 알고 베푸는 연습을 하기 싫었지만 왜냐하면 제 욕심이 있 기 때문에 상당히 하느라 했어요.
하기 싫지만 하기 좋은 것을 하는 것은 보시가 되질 않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베풀어야만 살 점을 떼어내는 아픔이 있어야만 아상이 소멸이 되고,
아상이 소멸이 되어야만 복이 되고 공덕이 됩니다. 요렇게 아셔야 됩니 다.
저는 그런 경험을 했고 탐욕이 많았던 시절 그리고 탐욕을 떼어내는 연습을 했죠.
그런 시절 탐욕을 떼어내는 연습을 했었을 때 이기심으로 억지로 하면 금생에 복이 되기가 어렵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것을 즐겁게 하면 금생에 복으로 이어진다고 그럽 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왜 복을 못 받느냐? 이런 소리를 합니다. 그
런데 그것은 좋은 일을 하지만 억지로 속에는 계산을 하면서 보시를 했기 때문에 금생에 복으로 안 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저도 똑 같이 굉장히 하기 싫은 일을 즉 탐욕이 굉장히 많았는데 탐욕을 떼어내는 일을 하기 싫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 시키시니까 하려고 했습니다. 하려고 하면 서도 이것이 복이 되나,
안 되나 하고 궁리를 했어요. 그러니까 금생에 복이 잘 안 됐겠죠? 그런데 저희는 다행히 금강경을 만 나서 바치면서 보시했습니다.
보시했다는 것은 무료급식을 했다는 겁니다. 아마 얼마 안 있으면 우리 법당에서 무료급식이 다시 재개될 것인데 가능한 대로 거기에 즐겁게 참여하시는 것은 보시의 공덕 을 지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바치면서 해서 그런지 저는 금생에 가난했던 사람이 금생에 부자가 됐다.
이렇게 감 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좋은 일 해야 될 것이 종종 눈에 띄고 그전에는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제가 돈이 없어서 못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할 정도로 저는 여유가 있어졌습니다. 가난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 니다. 滿三千大千世界七寶布施하는 것은 복이 많으냐? 그랬더니 복이 많습니다.
이렇게 수보리존자가 대답한 그 뜻을 저는 이 해합니다.
확실히 베푸는 것은 탐심을 떼어내고 떼어내는 것만큼 부처님 광명이 들어와서 복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티 없이 해야 금생에 받는다.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佛告須菩提하사되 若善男子善女人이 - 만일 어떤 수도하는 사람이 於此經中에 - 이 금강경중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 이 사구게라는 것은 사구게가 여러 개가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사구게는 금강경 5분에 나오는 凡所有相은 皆是虛妄이라 若見諸相이 非相이면 則見如來라
이 표현을 대표적인 금강경사구게라고 하는데 특히 난제가 있을 때 지금 각종 난제를 갖고 여기에 왔는지도 모릅니다.
바치는 것도 난제를 소멸하는 방법이지만 우리 선생님 께서는
이 사구게를 계속 되풀이해서 외워라. 언제까지 되풀이 하느냐?
근심걱정이 없어질 때까지 자꾸 이 사구게를 외우라고 했고 외웠던 적이 있습니다.
사구게 내용 속에는 이 근심걱정이 다 착각이고 본래 없는 것이니라.
착각인 줄 알고 잘 바친다면 모든 근심걱정은 모든 난제는 해결이 될 것이다.
이게 금강경5분에 나오는 사구게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수지한다는 것은 항상 한다는 뜻이니까 낮이고 밤이고 항상 금강경 뜻을 생각한다는 뜻이고 낮이고 밤이고 올라오 는 생각을 다 부처님께 바친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을 알기 쉽게 얘기하면 晝耕夜禪 낮에는 일하면서 바치고 밤에 우리는 거의 잠을 안 자죠?
밤에도 바치고 이게 晝耕夜禪加行精進.입니다. 잠을 어떻게 안 자야 되느냐?
저는 잠을 꼭 자야 된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잠을 꼭 자야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잠을 자 야 된다는 생각이 저로 하여금 잠자게 했던 것입니다. 저는 학생시절에 최소한 8시간은 잤던 것 같습니다.
저는 금강경을 읽게 되면서 제일 괴로웠던 것 중의 하나가 잠을 줄이는 것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5시에 일어났고, 5시에 일어날 때 만해도 8시간은 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도장에 오니까 3시에는 일어나게 됐어요. 3시에 일어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아마 그런 식으로 했다면 일생동안 잠을 줄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이라는 가르침은 뭐냐 하면 잠은 분별이고 착각이고 본래 없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이 금강경가르침입니다.
금 강경을 읽으면서 잠이 올 때 금강경을 읽으니까 잠이 착각이고 본래 없는 것이다. 라는 것을 자꾸 되풀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금강경을 읽으면서 차츰차츰 잠이 줄어들어가고 잠이 줄어들면 그 이튿날 진이 빠지고 참 힘들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좀 힘들 었어요. 여기 다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분별심이 소멸이 되니까 오히려 활력이 나오고 나중에는 3시간을 자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은 때가 있었습니다.
낮에 중노동을 하면 3시간 갖고는 안 되겠죠? 그런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면 확실히 3시간만 자도 됩니다.
금강경을 읽어야 됩 니다. 금강경을 읽지 않으면 3시간 갖고는 안 됩니다. 금강경을 읽는 동안은 휴식시간입니다.
그래서 3시간으로 줄고요 3시간 으로 줄게 되면 조금 더 하면 거의 잠이 본래 없음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잠이 없어졌던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그것을 남한테 성내지 않고 분별 내지 않았다면 오래 유지했을 텐데 저는
잠이 없어지는 순간 상당히 오만해졌고 오만해지는 바람에 탐.진.치를 냈고 그것이 잠 에 또 다시 매몰되었던 경험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잠이 없어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얘기 드립니다. 그러면서 정 신은 굉장히 맑아졌고요.
제가 몇 번을 얘기했지만 대낮은 더욱더 밝았습니다.
아주 화려하고 밝으면서 마음은 극락세계처럼 환희심이 났다는 것을 체험한 것을 여기 지금 晝耕夜禪加行精進을 하면서 매일 나오는 것은 그만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매 일 나오시지 제가 인상을 쓰고 악을 쓴다고 안 나오실 분이 나오시겠어요?
말이 안 되죠. 누가 인상 쓰는 것 정도는 조금도 두 려워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해보니까 좋은 건 사실 좋아요.
사구게를 한다는 것은 晝耕 낮에는 일을 해야 우리가 생 업을 유지하는데 일하면서 바치고 그리고 밤에는 졸리면 또 바치고 이렇게 하는 것 그래서 밤, 낮으로 바치는 것이 受持입니 다.
受持乃至四句偈等 이렇게 해석됩니다. 爲他人說이라는 구절이 자주 나옵니다.
受持乃至四句偈等까지는 저는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좋습니다.
이 爲他人說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복 짓는 행위를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보면서 섬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해 요.
그런데 수도자들은 受持乃至四句偈等 여기까지 하고 맙니다.
그런데 진짜 수도자 즉 大乘者는 그 뒤에는 남을 위하는 일을 해야 돼요.
저는 나이 60살까지는 受持乃至四句偈等을 했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좋은 체험을 했어요.
제가 60때 비로소 무료급식을 시작했습니다. 무료급식도 처음에는 14년을 했는데 1,2년에 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베풀어주고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니까 별천지가 전개되더라고요. 그리고 뭘 깨쳤느냐 하 면 주는 것이 바로 금생에 들어와요. 그전에는 좋은 일을 하느라 했지만 그 좋은 일이 보답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생각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답이 돼서 되돌아온다는 것이 믿어지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을 읽으면서 무료급식을 하니 까 그게 바로 주다가 돌아오는 그 간격 인터벌이 점점 짧아지더라고요 주고서는 10년 만에 되돌아오는 수도 있고, 20년 만에 돌아오는 수도 있고 금생에 안 돌아오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 읽으면서 베풀면 되돌아오는 간격 인터벌이 점점 짧아 져요.
어느 때 주는 순간 바로 되돌아옵니다. 당장 저는 느껴요.
제가 이 성금을 지금도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 돈이 아닙니다.
제가 관리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 은 일을 하면 그 성금액수가 거의 수학적으로 쌓입니다.
또 진실로 공경심을 내는 순간 바로 되돌아오는 걸 느낍니다.
제가 크 게 깨친 것은 금강경을 하면서 무료급식을 하니까 주면서 바로 되돌아오는 시간이 짧아지고 즉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다. 라 는 것을 체험을 하고 주는 것이 받는 것이라는 체험으로 이어지면서 재앙이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爲他人說은 다른 사람을 부처님처럼 尊貴한 존재로 보고 자타불이가 되죠.
주는 것이 바로 받는 것이다. 가 되고, 재앙 이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요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거는 내거예요.
즉 인격자가 되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爲他人說을 해야 인격자가 되고 인격자가 되면 속이 아주 넓어지고,
다른 사람을 부처님처럼 귀하게 볼 수 있게 되는 이런 아주 넓은 마음 의 소유자가 된다.
저는 그것이 되지 못했습니다만 실감을 합니다.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저는 굉장히 기쁠 겁니 다.
제 속에는 무한한 지혜가 나올 거고 그 복덕은 그냥 단순히 탐욕심을 덜어내는 복 보다는 매우 크다.
이 말을 믿고 금강경 을 읽으시면 그냥 읽지 않으시는 것보다 훨씬 금강경이 재미가 있고
실감이 나서 그냥 금강경만 자꾸 읽어도 뜻을 잘 모르고 읽어도 괜찮더라고요 그런데 특히 이 뜻을 안다면 훨씬 더 실감이 날 거고 복이 된다고 하더라고 훨씬 더 큰 복이 되시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법문 들으신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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