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금강경 [해석]

새벽법회 금강경 13 분 여법수지분

금강 반야 바라밀 2023. 3. 25. 19:47

오늘은 금강경 제13분입니다. 저는 금강경을 만난 지 꽤 오래 되었고 공부하고 실천한지도 꽤 오래됐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금강경을 읽어서 경에 나오는 그 대로 무량무변한 공덕을 얻고자 했을 뿐이지

제가 爲他人說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선생님이 열반을 하시고 제가 법당을 차리고 나니까

제가 그때 비로소 금강경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해야 될 필요를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자신이 없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대중 앞에서 금강경을 설하려고 하고 보니까 추상적인 얘 기는 하겠죠.

즉 저도 모르는 금강경을 해설만 할 뿐이지 제가 학교 다닐 때 학문이라는 것을

하면서 이해하고 실감할 때처럼 금강경을 실감나게 설명한다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대중들한테 강의를 하게 되면서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이 것을 깨친 이, 도인,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실감나게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나는 영원히 금강경을 해석하지 못할 것 같은 아주 열등감에 쌓여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배웠던 식으로 물론 모른다는 생각을 바치기는 했지만 바쳐서

다른 모르는 일들이 알 아지는 체험은 했지만 금강경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해석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때 우리 백 선생님의 지침, 또는 생활 속의 어떤 교훈, 그것이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까지도 하나도 못했을 것 같아요.

‘부처님이시라면 금강경을 어떻게 해설을 하실까?’

그것을 자꾸 여쭈어봤더니 보이지도 않는 부처님이 대답하실 리가 없습니다.

저는 가장 가까우신 부처님이신 백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해설을 하실까?

이것을 자꾸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해설 하실까? 염두에 두고,

물론 그때도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고 그랬습니다만 금강경을 읽는다고 해설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 하나하나 조금씩 알아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을 해설했을 때가 이 원당법당을 세웠을 그때니까 1990년쯤 됐을 겁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로부터 한 30년이 지 나면서 이제는 아주 내용이 상당히 실감나게 말씀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라고 생각하게끔 됐습니다. 특히 실감했다고 해서 완전히 깨친 것 하고는 좀 틀리겠죠?

즉 그냥 글자 해석은 저는 안 합니다. 이제는 제 체험을 통해서 체 험은 제가 이해할 수 있고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금강경, 즉 생 활 속에서 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금강경, 그건 아주 쉬운 금강경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게 됐다고 감히 생 각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엊그제 제가 ‘룸비니 학생회’라는 데 가서 법문을 했는데 보니까 좀 맹탕인 것 같아요.

이런 맹탕들한테 어떻 게 금강경을 이해를 시킬까.

그것은 내가 체험을 해서 이러이러하게 내가 금강경을 체험해 봤다는 얘기를 하기 전에는

글자 해 석만 해서는 도저히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고,

쭉 체험의 얘기를 하고 이것이 이렇게 해서 내가 깨친 즉 실감났던 것, 요런 것들을 얘기를 하고

이게 바로 금강경 제 5분에 나오는 凡所有相은 皆是虛妄이라는 뜻이오.

바쳐서 없어졌다는 것이 若見諸相이 非相이요.

그래서 소원성취했다는 것이 則見如來니라. 요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상당히 쉽게 얘기를 했고 그 중에서 한 10%는 이해를 하지 않았을까?

그중에서 싱글벙글하는 사람을 딱 한 사람 봤는데 그 사람은 좀 더 잘 이해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 합니다. 오늘도 글자해석은 안 하려고 합니다. 해도 저도 모르고 다 모르는 해석이 되요.

차라리 그때 룸비니에 가서 했을 때처럼 제 얘 기를 하면서 이것이 오늘 말씀드릴

❶ 佛說般若波羅蜜이 則非般若波羅蜜 내용이다.

요렇게 하면 좀 상당히 이해가 되고, 요게 이해가 되고 끝나는 게 아니죠? 지 금 7독 하실 거 아니에요?

7독하실 때도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7독을 하시면 전혀 설제로 업장이 녹는 것 같습니다.

❷ 如來 無所說 - 굉장히 추상적이고 저는 법문을 많이 들어봅니다. BTN, BBS나 들어보면 제가 보기에는 이것을 제대로 설하시 는 분은 안 계신 것 같아요. 그리고 세계의 누구라도 아무리 뛰어난 철학자 불교학자라도 佛說般若波羅蜜이 則非般若波羅蜜이 다와 如來 無所說 이 얘기를 거의 못하지 않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천하의 달라이라마도 잘 못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❸ 如來說 微塵 非微塵 是名微塵이니라

❹ 如來說 三十二相이 卽是非相일새 是名三十二相 이것도 약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글자해석만 해서는 이 석가여래의 참뜻과는 전혀 틀리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특히 금강 경 13분을 제한된 시간 30분 내에 하래요. 이건 뛰어난 천재가 아니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이제는 책임 안 진다는 소리는 안하 는 것을 배웠습니다.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얘기부터 할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3학년을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올라갔습니다.

그것이 1958년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저는 제 자신을 ‘나’란 무엇인가?, 고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것을 한 번도 생각을 못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저는 나쁘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온순했고, 양심적이었고, 정직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어쩌다 나쁜 짓을 했지만 저한테는 특성이 곧잘 뒤따라서 반성을 하는 기질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착하게 살아야지 그런 얘기는 어른한테 들었 는데 그것이 저한테는 꼭 꽂혔어요. 정신없는 삶이었지만 저 자신은 그래도 나쁜 짓은 안 했던 거 같고, 온순하다는 얘기를 들 었고, 외모도 선량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저는 제 속에는 사나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저 자신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면서 정신이 어지러워졌던 때가 언제냐 하면 1958년에 제가 고등학교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학 때까지만 하더라 하려 해 지 않았지만, 노력이라는 것을 해 보려고 안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성적은 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무섭게 대학입시를 염두에 두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드러나면서 저는 펀펀히 놀 면서 성적이 좋았던 그 시대에서 서서히 저 자신의 열등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봤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열등감이 뭔지, 열등감을 심각하게 느끼면서 괴로워해봤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정도로 성적 이 떨어졌어도 그걸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지를 못했었어요.

성적이 아주 꽤 좋았어도 잘났다고 해 보지도 못했었습니다.

그 래도 성적은 괜찮아서 시험 때가 되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같이 공부하자는 애들도 있었었는데 고

등학교 오니까 그런 애 들도 거의 없어요. 속으로는 있어도 저를 절대로 부르지도 않아요.

저는 저자신이 열등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노력을 안 해도

중학교 때는 괜찮았는데 고등학교 와서는 무섭게 하더라고요. 물론 노는 애들도 있었겠죠.

그런데 무섭 게 하는 애들이 있는데 저의 인기는 별로 없어지는 것 같고 저보다 성적이 나아지는 애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때 괴로워지기 시작을 했고 정신이 어지러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무엇인가?’,

제가 고등학교 때 열이 되게 올라서 저는 중학교 때 3년 개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1학년 올라가자마자 결석을 하게 됐습니다. 감기가 걸려서 열이 39도 40도 나는데 그래도 저는 그런 것은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한테 매달리면서 응석을 부리 면서 ‘나 학교 못가’ 이러지는 않았고, 이건 내가 끝까지 극복을 해야 된다.

이런 생각으로 학교를 결석하면서도 어떻게 보채지 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0점 처리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3학년 1학기 때 성적은..... 시험 때 그렇게 또 앓았으니까 아주 성적이 떨어졌고, 열등감을 가장 많이 느끼면서 저는 점점 정신이 어지러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백선생님이 이걸 회고를 하세요. 그게 네가 발심하려고 그랬대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시더라고요. 1958년 어지러워 지기 시작을 했지?

그게 발심하려고 그런 것이다. 그러면서 저는 어떤 선지식을 찾았던 거 같습니다. 막연하게 아! 선지식이 있 었으면 하고, 그리고 제 어지러워진 것을 부모, 형제한테 얘기를 해도 하나도 못 알아들어요.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열등감이 나 정신적으로 어지러움을 얘기를 해도 하나도 몰랐던 거 같아요. 막연하게 하여튼 스승이 있었으면, 스승이 있나, 이런 종교 를 찾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지만 그런데 어머니가 절에 다니셨기 때문에 교회는 안 간다. 불교에는 그런 스승이 있을 것이다. 그 생 각을 했던 걸 보면 저는 선지식을 찾는 기질이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것을 우리 선생님께서는 발심이라고 얘기를 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서울대학에 간 것이 우연이고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체력이 굉장히 약해서 어떻게 공부를 조금만 해도 아주 견디지 못하는 약한 체력이었는데 그래도 어떻게 성적이 괜찮아서 겨우겨우 들어가서 운 좋게 서울대학을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아! 이만하면 되었다. 이제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어때요? 그게 뻗어나가는 원동력인 것 같죠? 이상하 게 대학을 1961년에 입학을 했는데 이때 또 어지러워지기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백선생님이 참 아시더라고요. 1958년이 196 1년 이렇게 번뇌 망상의 주기가 3년, 6년 주기로 아주 짧게는 100일이다.

아주 짧게는 사흘, 일주일이다. 3일이다. 그래서 3일 만 잘 해도 일생동안 체험할 수 있는 榮枯盛衰의 번뇌를 다 체험한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3일 기도, 7일 기도, 49일 기도, 100일 기도 이렇게 합니다.

그 다음 3년 기도 제가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싸이클을 늘 그리죠? 그것은 제가 마음대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이 번뇌는 주기적으로 돈다. 3년 주기로 돈다. 100일 주기로 돈다. 지금 생각해보니 까

1958년에 제가 굉장히 어지러웠고 그것 때문에 제가 불교를 찾아다닌 거예요. 아마 제가 집도 잘 살고 머리도 괜찮고 성적 이 계속 우수했다면 그리고 하는 대로 잘 됐다면 저 같은 계산 많은 사람이 부처님 안 찾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1958년 이때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그리고 1961년 입학하자마자 힘들었는데 그때는 아! 이제는 ‘나 살길은 불교다.’

죄 송하지만 그때는 불교를 완전히 미신 비슷하게 알았는데 처음에 어제 갔던 룸비니 학생회를 처음으로 찾았는데 야! 불교는 정 말 대단한 철학이요. 내가 바로 찾고 있었던 것이요. 정말 기뻤습니다.

그때 신소천스님의 금강경을 만났는데 불교한지 얼만 안 됐는데 아주 푹 빠졌던 거 같아요. 저는 확실히 전생에 닦았다고 그리 고 스님이라고 얘기하셨는데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저는 학교공부도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불교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는 철저히 계율을 지켰습니다. 항상 쉬는 시간에도 관세음보살을 했었고, 저는 1학년 때부터 금강경을 다 외웠고 하루에 7독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누가 시켜 서 한 게 아니라 그대로 좋으니까 빠져 들어가니까 7독이 어째서 7독이냐 하면 아침저녁으로 7독이 아니에요. 대학에 들어갔 지만 고등학교하고 똑 같았습니다. 10분에 1독이에요. 하루에 6시간씩 수업 금요일까지 하고 토요일 날 4시간 하고 고등학교 하고 똑 같이 하고 10분마다 쉬니까 하루에 금강경을 7독을 10분마다 하니까 6시간 수업에, 백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그때 너 스승을 만났으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저는 물론 기복이라는 것은 생각안 합니다. 금강경을 읽으니까 무량무변공덕이니까 부처님한테 매달리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불교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나는 깨치는 것을 바로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매달리는 것은 저는 생각 을 안 했던 거 같아요. 관세음보살을 직접 봐야지,

친견을 해야지, 왜 매달리느냐, 즉 친견하고 싶을 정도로 불심이 강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점점 맑아졌던 거 같아요. 고1 1961년에 되게 힘들어서 불교를 만났는데 머리가 점점 맑아지더니 저 는 군대라는 군사훈련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학교성적도 괜찮았을 거고 그리고 좀 더 탄탄대로를 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이요 고통이 인제 ROTC라는 것을 해 가지고 3학년 때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저의 열등감을 뼈저리게 느꼈 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요. 지나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때는 죽을 것 같이 괴로웠습니다. 처음에 3학 년 때 하계군사훈련을 받는데 인격이고 뭐고 없더라고요. 존대고 뭐고 없어요. 그때는 깍듯하게 서울대생 알아주고 이랬는데 군대에 갔더니 낮에는 포복이라는 걸 보살님들은 모르니까 높은 포복 그러니까 애들이 극한 상황에 몰리니까 서울대생 프라 이드고 뭐고 다 없어요. 야간 전술가면 남의 집 고구마 캐먹고, 그건 좀 덜해요. 나중에 병기를 반납해야 될 때 남의 것을 훔쳐 서 반납, 물론 다 그러지는 않고 그중에서도 꼿꼿한 애들이 아마 없지는 않았겠죠. 저는 그때 제 체력이 이렇게 약한가. 처음으 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지극한 열등감을 느끼고 그때 그랬습니다. 천하의 공자님이라 하더라도 이런 비인간적인 군사훈련 속에서 점잖은 것을 유지할 수 없을까, 사흘을 굶으면 도둑질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그러더니 이렇게 덜덜 볶고 비인격적인 천대를 받으니까 화내지 않 으셨을까? 저는 공자님의 경지를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은 물론 될 것 같았는데 공자님은 안 될 것도 같았었어요. 야! 내가 이렇게 허약한가, 저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뒤에 군대를 갔더니 장교로 간 게 더 안 좋았던 거 같아요. 저는 장교로 가서 늘 화가 나 있었고 화가 나다가 안 되면 맥 빠지는 겁니다. 늘 듣는 말이 별명이 당신 아침 먹었어? 저는 이 렇게 힘이 없었어요. 그리고 군대가 너무나 안 맞았습니다. 2년 동안 매일 같이 제대날짜를 꼽고 또 꼽고 지옥 같고 정신적으 로 육체적으로 굉장히 피곤했던 거 같습니다. 제대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저는 무력의 한계를 느끼는 겁니다. 학생 때만 하더라도 나는 할 수 있다. 언젠가는 뭐가 될 수 있다. 이 런 희망을 조금 가졌는데 군대 와서 체력의 한계, 내 지도력의 한계, 정신력의 한계 이러면서 여지없이 무시당하는 것을 밥 먹 듯이 하다 보니까 정말 열등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인제 그게 저를 살려준 게 백박사님의 가르침인데 그러면서도 유일한 희망이 그때는 하숙을 했었기 때문에 퇴근을 하고 나서 는 불경을 읽었습니다. 저는 불경 읽기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낙이었지만 새벽에 출근하면 또 괴로웠 어요. 매일 같이 읽었습니다. 불경을 읽으면 그렇게 좋았어요. 그래도 숨 막히게 괴로웠던 것이 이제 백박사님을 만나면서 바 치는 것을 배웠잖아요 그러면서 저는 새 정신이 났습니다

여기서도 이렇게 꼭두새벽에 나오신 것은 이렇게 하다가 월요일날 출근하시면 좋으실 거예요. 제가 주말출가의 선배입니다.

그래서 주말출가를 하면서 백선생님을 만났더니 열등감이 꽉 차 있는 저한테 항상 반겨주시고 반겨주시는 사람을 그 전에는 본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장래에 희망을 주고 칭찬을 해주는 분은 중학교 때 공부 곧잘 했을 때 칭찬을 해 주는 선생 님 그게 마지막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백선생님이 유일하게 칭찬을 해 주시고 만날 때마다 아주 부드럽게 대해주시는데 아! 이렇게 따뜻한 분이 있었나? 저는 이제 주말마다 출가를 하면서 다시 제대와 동시에 출가를 시작 이때가 1967년, 그런데 제대하면 공부 잘 하겠다. 싶겠죠? 이때 제대하니까 처음 우리가 금강 경 읽으면 분별망상이 쏟아져 뭘 읽었는지....... 졸다가 읽다가 엄청 쏟아지다 많이 그러시죠? 제가 출가했더니 어떻게 분별이 쏟아지는지 악심이 쏟아지고, 미워하는 마음이 쏟아지고, 열등감이 쏟아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게 1958년, 1961년 소사 에 출가했을 1967년 이때와 똑 같더라고요. 출가했을 때 다 천사인 줄 알았더니 여기 스님도 계시지만 출가해서 도반들을 보니까 야! 이런 쌍놈들이 야! 그것도 또 괴로움 이 시작이 되는 거요. 그러면서 공양주부터 하래요. 공양주부터 하고 생전 밥을 해봤습니까, 뭘 해 봤습니까. 여기서 밥하는 남 편을 딱해 여기시는 것을 보면 저는 군대에서 고생은 했지만 밥은 안 해 봤거든요. 그런데 거기다 소젖 짜라. 쇠똥 치워라. 그 런데 자꾸 바치니까 군대보다 훨씬 편하더라고요. 1961년에서 1967년 이 주기가 6년입니다 이러고 한 1년 지나니까 조금 편 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거기에는 법이 없어요. 군대에서도 법이 없어요. 시키는 대로 ‘네’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무대뽀가 어디 있나 그 랬는데 거기만 무대뽀인 줄 알았는데 소사는 더 무대뽀예요.

말대답만 해도 안 돼요. 그래도 군대는 조인트는 까여도 말대답은 했는데 여기서는 조인트는 안 깝니다만, 말대답을 하면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야단은 안 치세요. 그 뒤에는 야단을 안 치시고 방향을 돌리세요. 후에는 질문을 하면 시원찮으면 꾸중을 하시면 차라리 좋은데 꾸중은 안 하시고 방향을 돌려서 저를 무안하 게 만들어요. 말대답도 못해요. 그러다가 소사에 들어가면 외면하실 것 같아요. 그걸 느끼게 만들어요. 그게 군대에서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적지 않게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면서 죽으라 하고 바칠 수밖에 없었어요. 선생님 하나만은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도반이고 뭐고 다 살벌해요 그러면서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데 그런 과정에서 한 3년 가까이 되니까 정신없이 쏟아졌던 게 서서히 가라앉아요. 저는 단 5분도 쉬지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개나 고양이를 가만히 보면 조금도 쉬는 게 없잖아요? 조금 있으면 분별 망상하듯이 저는 분별망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았고 열등감, 분노, 모순, 부정, 이런 걸 하다가 보니까 늘 편치 가 않았는데 분별이 쉬면서 편안한 날이 오고, 즐거운 날이 오고, 그 다음에 안 되는 게 변해서 되고 그리고 싫은 건 싫은 거고, 지겨운 것은 지겨운 거지, 그런데 지겨운 게 아무리 바친다고 즐겁게 되느냐? 그런데 즐겁게 되는 것 같아요. 제일 어려운 게 모른다는 것을 바쳐서 안다. 라는 건데 그것도 자꾸 바치다. 바치다. 보면 잘 집중을 해서 지켜봤어요. 그전에는 실수 투성이었어요. 철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터득이 되고 철이 나더라고요. 철이 나는 게 알아지는 거구나. 그리고 조금 마 음을 쉬면 어떤 영감 같은 것도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아! 이게 안 된다는 것도 착각이고 본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쇠똥 같은 것 얼마나 지저분합니까? 나중에 인분도 치우게 했어요. 여기 인분을 치우라고 그러면 천금을 줘도 안 한다. 그러실 분이 너무나 많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괴로움이나 난관을 도피는 안 됩니다. 그것도 서서히 시키시는데 모든 것 을 인내의 한계까지 다 했기 때문에 아! 이렇게 견디면 군대생활도 쉬웠겠구나. 이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정신은 점점 맑아지면서 나중에 배고픈 것도 바치니까 배가 안 고파지고, 잠도 바치니까 잠도 줄어들고, 우리가 학생 때 책을 많이 읽고 사랑과 미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과 미움, 이것이 인생의 본질 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 도 바치니까 애욕도 주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여기 지금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그것을 실천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그러면서 새까맣게 높게 보였던 시인, 작가, 교수님, 이런 것들의 경지가 점차 좀 발 아래로 보이게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점점 불가능이 없어지고 제 몸은 점점 가벼워졌던 것 같습니다. 정신력, 체력이 굉장히 허약했던 제가 이제는 웬만한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꾸 바꿔가는 것을 제가 느끼고 이게 바로 공자님은 나보다 훨씬 더 뛰어 나셨겠구나. 이렇게 하면서 그동안 불가능이라고 했던, 꼭 팩트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것이 팩트fact가 아니다. 불가능이 아니다. 모르는 게 아니다. 이것이 착각 일 수 있다. 라는 느낌이 점점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착각이 소멸되면서 ‘된다’가 되고, ‘안다’가 되고, ‘재미있다’가 되는 겁니다. 저는 그 뒤로 밖에 나가서 학교 때는 공부가 그렇게 싫었었어요. 그리고 공부는 누구나 다 싫 어하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노동은 누구나 다 싫어하는 거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노동은 즐거움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거기서 배운 거 같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누구나 다 지겨워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하는 것을 알게 됐습 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면서 인생은 다 괴로운 것, 이렇게 하시는 분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때 상당히 비로소 철이 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철이 나기 시작을 했음에도 우리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전지전능하고 만능 이니까 우리 응석을 받아주시고 떼쓰는 것도 들어주시고 그러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고 우리를 키우시는데 얼마나 애쓰시고 이런 것을 전혀 몰랐던 거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더라도 밀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철이 나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래도 제가 잘 몰랐는데 더불어 밖에 나가서 저는 학문에 대해서 취미도 붙이고 좋은 논문을 쓰고, 또 쓸 수 있었던 것은 수도장에서 배운 그것이 없었으면 학문이라는 것은 영원히 지겨운 것이다. 노동은 지겨운 것이다. 이렇게 알고 일생을 갔을 겁니다. 그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체험을 했습니다. 공부는 지겨운 것이 아니다. 즐거울 수 있다. 노동도 즐거울 수 있다. 이렇게 바뀌었고 인생이 고해다. 라고 작가나 시인 철학자들 많이 얘기하는 데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괴롭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제 체험으로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생각보다 굉장히 훌륭하고 그전에는 떼쓰고 그래도 이렇게 야단치시 지 않는 것이 자비롭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점점 철이 납니다. 나 같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철이 없고 정말 개똥철학을 가지 고 잘난 척했었던 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가가 알아지고 저 같이 어리석은 사람, 떼쓰는 사람을 키워시는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하신가. 이제 철이 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대로 다 되기 시작을 했습니다. 너는 고등학교교사로 있다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그대로 머물렀을 겁니다. 너 무 힘들더라고요. 힘든데 전문대학을 가려고 그랬더니 바로 가지더라고요. 저는 또 전문대학을 만족하려고 그랬는데 다 똑똑 한 애들은 다 4년제로 떠요. 그래서 또 4년제로 가려고 그랬더니 또 되더라고요. 좋은 논문을 쓰려고 그랬더니 되더라고요. 법 당도 세우려고 했더니 법당도 되더라고요. 승승장구했습니다. Qncjslatlqhd 그런데 재앙이 축복이라는 것은 몰랐던 것 같아요. 잘 되는 맛에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듯 저한테 재앙이 들이 닥치기 시 작을 했습니다. 아무리 바쳐도 재앙이 꺾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알고 봤더니 무시겁 업보업장이 그렇게 두터운 줄은 몰랐어요. 두텁지 않았으면 하는 대로 잘 되었기 때문에 깊은 진리를 못 깨쳤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앙, 시련, 난관, 경천, 등등, 이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참 어려웠던 시절이 아마 3년 주기로 일어났었을 것 같은 데 그거는 여기서 따질 시간이 없죠. 그런데 저는 어느 듯 끝까지 공부했던 것이 재앙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본격 적으로 우리 선생님이 제가 참 못 나, 그리고 선생님은 참 훌륭해 보여요. 그 전에는 하는 일이 잘 되는 분이 도사인 줄 알았는 데 도사는 그래가지고서는 도사 못 되겠더라고요 재앙이 축복인 줄 알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아상이 이렇게 못난 줄임을 알아 야만 그걸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인의 경지는 내가 생각할 수없이 대단히 훌륭하고 높다

저는 그래서 안연(회)이 공자인 스승을 보고 우러러볼수록 더 높고 뚫어볼수록 더욱 단단하다는 것을 굉장히 실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한테 제가 참 못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못 난 줄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지금도 혹시 잘난 척하시는 분 계시죠? 제 후배들입니다.

얼마나 착각 속에서 살았나, 여기 몽상가라고 별명 지었던 사람이 얼마 전에 보따 리 싸서 나갔는데 그를 몽상가라고 흉봤어요.

흉보다가도 아! 내 모습이 저것이었지, 지금 이정도로 저는 성숙해졌습니다. 천하에 악인 같은 사람들을 요새 와서 저는 많이 만납니다. 저는 칭찬만 많이 들었지 저를 흉보는 사람들은 별로 많이 만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가족 중에서는 좀 그랬지만 그런데 요새 와서는 저는 굉장히 때로는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저는 돈만 밝 히는 사람, 여자를 밝히는 사람, 여자 따라 다니는 사람, 교묘하게 법사인척 하면서 사기 치는 사람, 그리고 등등....상상을 초월 할 수 없는 비방이 저한테 쏟아집니다.

저는 처음에는 굉장히 분개하고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많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럴 줄 알았다.’ 로 바꾸게 되면서 그게 그의 모습이 아니라 ‘나도 저랬을 것이다.’ ‘내 모습일 것이다.’ ‘아니 나다.’ 요렇게 바뀝니다. 그런데 이게 빠른 순간에 바뀌어야 되는데 한참 고생 고생하다가 늦게 바뀌어요. 그러면 서 어떤 사람을 키우신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했나,

우리가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내가 대중들을 거느리면서 나는 잘 하려고 했는데 내가 비난 을 받는 것을 보고 나도 똑 같이 우리 선생님의 속을 저렇게 뒤집었을 텐데 그때도 화내시지 않고 키우셨던 우리 선생님이 얼 마나 훌륭하신가.

이걸 뼈저리게 느끼면서 저의 어렸을 때 모습, 젊었을 때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처량하고 형편없었던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걸 배우셔야 됩니다. 제가 선배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잘난 척하고 남 흉보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아직 고생 좀 더 하셔야 된다는 말씀, 확실합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뼈저린 저의 경험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더 성숙해지고 은혜를 아는 사람, 은혜를 갚으려는 사람, 즉 미륵존여래불의 마음이 돼 가면서 “언젠가 네가 미륵존여래불을 깨칠 것이다.” 이 말이 이해가 갑니다.

이제는 제가 말씀드리는 금강경은 제가 젊었을 때 뭘 몰랐을 때 금강경 해설한 것과는 영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 고 누가 뭐라고 그래도 변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나쁜 짓을 해도 나는 그게 바로 내 모습이거니 하고 변명하고 하지 않기 때문 에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佛說般若波羅蜜이 則非般若波羅蜜일새 是名般若波羅蜜 -

철없는 중생들이 잘난 척하는 반야바라밀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형상이 없어요.

그 시(때) 그 사람에게 밝게 해주는 이름이 없는 반야바라밀이다.

제가 지금 반야바라밀 하는 것은 제가 초창기 때 해설했던 그것과는 틀립니다.

제가 반야바라밀하는 것은 상당히 실감나게 하고, 공감하게 하고, 이해하게 한다고 생각합니 다.

그것은 재앙이 축복임을 깨우치면서 저 자신이 착각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을 착각이라고 알게 되면서 제 가 하는 금강경은 모든 분별이 착각임을 몰랐을 때 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 구절에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 전에는 뭐라고 그랬을 때 말대답을 하고, 변명을 하고, 남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모습으로 알면서 아무 할 말이 없어졌습 니다. ‘부처님은 아무 할 말이 없으시다.’ 는 이 말이 이해가 됐습니다. .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합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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