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시느라. 대단히 수고가 많으십니다.
잠이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금강경 제14분의 말씀입니다.
굉장히 량이 길기 때문에 2번 또는 3번에 나누어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 한번만 해도 여러분들이 잘 집중해서 듣는다면 더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전체내용을 2번 나누어서 말 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간단히 해석을 해 볼게요.
爾時에 須菩提 聞說是經하고 深解義趣하고 涕淚悲泣하야 而白佛言하되 -
그때 수보리존자가 이 경을 설하심을 듣고 들을 문(聞)자를 쓰죠? 그냥 들었다가 아니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랬다는 뜻입니 다.
또 한층 더 나아가서 깨우쳤다는 뜻도 되는 겁니다. 청력이 있어서 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희가 백선생님 밑에 여러 제자가 있었고 똑 같은 제자를 통해서 몇 년 동안 법문을 똑 같이 여러 해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제자는 그것을 상당히 기억을 해서 얘기를 해 주는 사람이 있고 똑 같은 자리에서 몇 년 들었지만 한 사람은 남이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해요. 그것은 청력이 있어서 그냥 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잊어버리면 들은 게 아닙니다.
듣고 이해하고 어느 정도 터득을 해야 깨쳤다. 이렇게 할 때 들을 문聞자를 씁니다.
경전의 聞자는 청력의 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고 뜻을 이해하고 공감하면 기억을 해서 다른 사람한테 얘기를 해 줄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저 듣기만 하면 졸면서도 잘 들리거든요. 졸면서 들어보세요. 남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경험 한 것을 들으면 가슴에 딱 박히고 남는 게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얘기해 줄 수도 있죠.
딴생각하면서도 들어요. 듣고 녹음해 놓았다가 녹음해서 들으면 되지, 요렇게 꾀를 부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학점은 잘 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사회에 나가서 직장에 나가서 응용하는데 있어서는 빵점입니다.
우리나라 교 육은 청력에 있어서는 굉장히 발달했는데 들을聞자와 들을聽자를 실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굉장히 뒤떨어진다.
이런 이야 기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얘기를 이구동성 합니다.
그래서 聞說是經 이경을 설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은 이해하고, 공감하고, 터득했다. 그런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深解義趣하고 - 그 뜻을 義자를 씁니다. 깊은 뜻, 이면의 뜻을 해석했다는 뜻입니다.
깊은 뜻하면 잘 모르죠. 그런데 말속에는 이면의 뜻을 생각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면의 뜻을 해석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절대공경심 이 깊으면 깊을수록 이면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스승이 꾸중을 해요.
스승에 대한 공경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 꾸중은 단순히 불쾌한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 다.
이렇게 공경심이 없는 사람은 저렇게 불쾌하게 했으니까 비록 훌륭한 스승이지만 역시 사람이니까 성질을 낼 수밖에는 없 다.
이렇게 하면서 화낸 것에 대한 깊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스승에 대한 깊은 공경심이 있다고 칩시다. 그럼 스승이 화를 내잖아요.
화를 내거나 이상하게 돈을 탐하거나 또는 여 자를 밝히거나 이렇게 했을 때
공경심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 하면 사람이니까 돈을 탐할 수도 있고,
여색을 밝 힐 수도 있고, 화도 낼 수가 있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훨씬 덜 하시지,
저 정도만 해도 훌륭하지,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사실은 깊은 공경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깊은 공경심은 어떤 공경심이냐 하면 공경심속에는 맹목적인 공경심이 있고,
지혜가 동반한 공경심이 있어요. 설사 스승이 화 를 내고 돈을 탐해도 사람이니까 돈에 대한 궁한 마음을 없앨 수가 없겠지.
또 사람이니까 몸뚱이를 가졌으니까 몸뚱이를 건드 리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분은 부처님 같은 분이다.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화내신다. 우리들에 게 뭔가를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돈을 탐하는 척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돈을 탐하시지도 않고 화를 내시는 것도 아니다.
화내 시는 것은 우리들을 위한 자비의 사랑의 매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것은 스승을 굉장히 높게 보고, 절대로 알고, 신의 경지로 봤을 때 그런 이해가 가는 것이다. 이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대부분의 학자들은 금강경을 해석을 할 때 2500년 전에 거저 인도 가비라성에서 태어난 인간으로 출발을 합니다.
특히 불교학자들은 다 그렇게 합니다. 즉 공경심이 없이 해석을 합니다.
공경심이 없이 해석을 하면 특히 소승경전 말고 대승 경전은 특히 금강경 같은 대승경전을 한발치도 나아가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가 지금 금강경을 읽고 해석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
즉 부처님 은 사람이 아니다. 신이다. 절대자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듯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보통 사람들은 애욕이 있어서 세상에 태어났죠?
그런데 저런 부처님 같은 경지는 애욕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중 생을 자비로 구제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을 해야만 대승경전을 읽고 그 깊은 뜻을 이해하죠.
이면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대승경전이 아닌 소승경전이 있잖아요?
아함부경전, 방등부경전이고 그 깊은 뜻이 좀 적은 것 같아요.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저 그대로 듣고 실행해서 고통을 면하고 한을 푸는 수가 있습니다.
상당히 행복한 경지 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밝은이가 볼 때는 이 중생들을 부처를 만들기 위해서 오신 것이지,
구제하신 것이지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함부경전, 방등부경전은 단순히 행복하고 소원성취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이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지금 금강경 같은 반야부 경전은 밝게 해주고,
기독교식으로 구제해 주기 위해서 꿈속에서 깨어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정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탕자들을 탕자의 삶에서 벗어나서 부처님의 맏아들임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설한 경이 반야부경전이다.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 깊은 뜻입니다.
깊은 뜻을 알려면 공경심이 있어야 되고, 공경심이라는 것은 부처님에 대해서 절대 흔 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지혜를 동반한 일이 됩니다. 제가 그렇게 깨쳤어요.
저는 소승경전을 참 즐겨 읽었습니다. 경전을 읽고 또 읽고 읽는 게 취미였습니다.
저는 소승경전을 빠삭하게 알았습니다.
그 런데 대승경전은 굉장히 좋긴 좋은 데 특히 금강경 같은 것은 알기 쉽지가 않아요.
3분해석하기가 어렵고요. 무주상보시라는 것도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해석이 안 되다가 아마 밝은 도인을 못 만났으면 영원히 해석합네 할 뿐이지
제대로 한 구절도 해석을 못하면서 세상을 떠났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선지식을 만나서 보니 처음에 선지식을 만났을 때 우리와 똑 같이 식사하고 화도 내시는 것 같고,
돈을 필요로 하셔 서 돈을 구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등등 이러다 보니까 공경심이 좀 덜나요.
저이도 우리랑 똑 같은 사람이지, 하지 만 좀 점잖은 사람이지 군자와 같은 사람이지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한 금강경도 해석을 못하고, 그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뒤로 절대공경심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지극한 공경심이 있을 때라야만 그의 뜻을 헤아릴 수 가 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야만 절대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 요런 것을 깨우치게 되었고,
제가 지금 금강경을 여러 번 해석을 했고 이제는 좀 분명해 지는 것 같아요.
분명해지는 배경이 있다면 우리 스승에 대한 절대 공경심이 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深解義趣 그 이면의 뜻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말만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말을 따라가는 것에는 그이를 인간으로 본다 는 뜻이 됩니다.
저는 자연과학을 전공을 했기 때문에 자연과학도 그렇지만 현대과학은 다 인간이 써놓은 겁니다. 탐.진.치를 가진 인간이 써놓은 겁니다.
지식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지혜를 가르쳐주지 않아요.
지혜라는 것은 아상이 없어질 때 생기는 겁니다. 요
새 현대학문이라는 것은 지식을 키워서 취직을 하고 실생활에 적용하게끔 그렇게만 하지
어떤 깨달음의 세계, 절대 의 세계, 영혼의 세계를 가르치는 그런 학문이 아니잖아요.
요걸 우리가 잘 알고 출발을 해야 됩니다.
여기 와서 퇴타심 내는 사람들도 이게 보통 석가여래를 인간으로 생각하고, 경전도 탁월한 인간이 써 놓은 이런 것이다.
그런 데 탁월한 인간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신입니다. 인간하고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요.
우리가 동물들하고 거리가 먼 것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그런데 석가여래가 볼 때는 술 취해서 살거나 요새 환각제 마약에 취해서 살거나 꿈속에서 살거나,
잠자는 식의 삶을 산다고 보고 저네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꿈에서 깨어나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합니다.
오로지 고통에서만 면하려고 하고 한만 풀려고 합니다.
이게 영원한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면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굉장히 안타깝게 여기셨어요.
처음에는 묻는 게 고통을 면해주십시오. 이런 것만 물어요. 저는 꿈속에 살고 있습니다.
꿈 좀 깨뜨려주십시오 이런 질문은 감 히 하지도 못합니다. 그저 고통만 면해 주십시오. 하는 게 아함부 경전이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한만 풀어주십시오. 방등부 경전이다. 이렇게 다 풀고 나니까 이제 꿈속에서 깨어지게 해 주고 싶어요.
‘네가 부처다.’ 이게 반야부고 핵심이 금강경이다. 이 렇게 아셔야 됩니다.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는 큰 은총을 받으러 온 겁니다.
제가 가끔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것처럼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실은 하버드대학이 비교가 안 됩니다.
涕淚悲泣하야 而白佛言하되 그러면서 부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希有世尊하 - 하는 것은 대단한 부처님이십니다.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希有라고 할 정도라면 수보리존자도 이미 절대세계의 맛을 본 거예요
상대의 세계에 살다가 절대의 세계에 딱 들어갔어요 절대 세계가 어떤 것인지 전혀 상상을 할 수 없을 거라고 맛을 본 거예요.
상대의 세계에 살다가 절대의 세계에 딱 들어갔어요. 절대 세계가 어떤 것인지 전혀 상상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틀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도인의 마음을 촌탁하려고 여러 번 추측을 하다가 번번이 깨졌어요.
아주 꽤 똑똑해서 눈치도 빠르고 이래서 도인의 마음 은 이럴 것이다.
라고 알았다가 번번이 깨졌다는 말씀을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깨지는 과정에서 저는 성장을 했습 니다. 아마 자꾸 그렇게 깨지다보면 언젠가 나도 도인의 마음이 되겠죠.
그런데 그게 마음에 들어갔다고 가정을 하면 이 중생 세계와 절대세계는 너무나 틀려요. 아! 참 그동안 술 취해서 살았구나.
꿈속에서 살았구나. 아마 이런 느낌이 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 이제 깨치고 보니 석가여래는 정말 위대하구나. 훌륭하다 소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표현을 希有世尊하 했습니다.
佛說如是甚深經典하시니 - 절대의 세계에 들어가고, 영원의 세계에 들어가고, 탕자의 삶에서 벗어나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 니다.
그러니까 我從昔來에 所得慧眼으로는 未曾得聞如是之經이니이다 - 그전에 제가 조금 아는 체하고 지혜가 났지만 그 지혜로서는 즉 아 라한의 지혜로서는 부처님의 경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참 제가 그때 멋도 모르고 잘난 척하고 설치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 다.
이런 참회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럼 잘 보시면 금강경 3분에 뭐부터 시작이 되었느냐 하면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卽非菩薩이니라
아상을 없애라고 했어요. 이것은 달리 말하면 절대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기초 작업입니다.
저는 아함부 경전, 방등부 경전을 읽고 고 통에서 해탈하는 방법을 설명을 해 줬습니다.
“아! 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면 석가여래가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아! 그래 고 통 있지, 그런데 그건 네 애욕 때문에 그래, 애욕을 닦으면 고통이 없어져.”
그러면서 일단 고통을 인정을 하고, 네 속의 애욕을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 금강경에 들어가서는 “아! 저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금강경 식인 대답은 어떻게 되냐 하면 “너, 고통이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모르느냐?
고통이라고 이름 짓지 마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아함부 때와 얼마나 틀립니까?
그러니까 금강경 3분에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없애라 하는 것은 “너 고통이라고 이름 짓지 마라.
이름 짓는 순간 고통이 생기고, 고통이라고 이름 짓지 않으면 고통은 없는 것이니라.”
이런 식의 답변이나 마 찬가지입니다. 이름 짓는 것은 我相의 연습이다.
我相만 없어지면 바로 고통이 없어진다.
그래서 고통을 없애는 경전이 아니에 요. 금강경은 고통을 없애는 경전이 아닙니다.
아함부는 고통을 없애는 겁니다. 이 고통이라는 테마를 통해서 절대의 세계, 영 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금강경 3분부터 無我相이라는 게 나옵니다.
금강경 4분에 不住相布施가 나옵니다. 절대의 세계에 들어가는 겁니다.
고통을 면하고, 한을 풀고 그리고 단계적으로 절대세계 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당장 절대세계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준비가 많이 됐습니다.
그래서 3분에 我相을 없애라.
4분에는 不住相布施해라.
‘부처님의 마음이 되어라.’ 이 뜻입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히 부처를 바라지 못합니다.
그저 고통이나 면했으면, 소원이나 성취했으면 저도 그래서 불교 믿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부처님 이 보시기에는 “야! 소원성취는 기본이야, 너 거기에 매달려서는 부처가 되지 못해,
바로 절대의 세계에 들어가 무한한 보배를 얻으라. 너 작은 100만 원짜리 월급에 만족하느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네 재산이야.” 부처님은 그것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그 렇게 해서 깨우치시면서
我從昔來에 所得慧眼으로는 未曾得聞如是之經이니이다
世尊하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信心이 淸淨하야 則生實相하면 當知是人은 成就第一希有功德이니이다 -
법화경을 보면 아 라한은 남방불교에서는 최고 성자라고 그러지만 그건 영원한 열반이 아닙니다.
有餘涅槃입니다. 無餘涅槃으로 가라.
“너희들 이 그대로 부처다. 부처의 세계를 놔두고 자리를 탐하느냐.
너희들이 그릇이 작아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안 믿기거든 요.
“고통이라고 이름 짓지 마라. 본래 없는 것이다. 이름을 짓는 순간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딱 믿기만 하면 그 는 숙세의 선근이 많아 바로 절대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것이 信心이 淸淨하야 則生實相하면 - 절대의 세계에 들어간다. 저는 이 한 구절만 해석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보리존자가 涕淚悲泣을 합니다.
왜 涕淚悲泣을 하느냐 하면 부처님이 너 무나 훌륭하신 것을 알기 때문에,
훌륭한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훌륭한 소질을 깨우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너무나 큽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너무나 커요. 사실 그렇대요.
알고 보면 우리는 경전에 처음부터 뭐라고 그러는가 하 면
著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실새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시고
부처님도 걸식을 하시고 이런 걸 보면 부처님도 역 시 먹어야 사는구나.
옷을 입어야 사는구나. 집이 있어야 의식주가 있어야 사는구나.
역시 인간이로구나. 이런 생각을 딱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점점 금강경을 공부하게 되면 그런 것 없어도 다 사십니다.
그렇지만 중생들한테 경제생활을 가르쳐줘야 됩니 다.
그리고 자기도 바로 부처 흉내만 내어서는 안 돼요. 세상에서는 똘아이가 되고 맙니다.
돈키호테가 되고 맙니다. 요새 돈키 호테 같은 스님들이 몇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당장 부처다 그러니까 경제생활, 법률생활, 정신생활 다 뛰어넘고 바로 부처가 되요.
그래서 著衣持鉢하시고 入舍衛 大城할 때 부처님은 경제생활을 할 필요도 없고,
법률을 지키는 사회생활을 할 필요도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중생들한테 경제생활도 하고,
법률생활도 해라. 세상의 규칙을 따라라 이런 과정을 보여줘야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연극하신다. 라고 알게 됩니다.
그래야 금강경 1분의 해석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강경 1분의 해석이 안 돼요.
엉뚱한 해석이 됩니다. 그런 것을 느끼고 수보리 존자는
‘아! 부처님의 지혜는 정말 대단하다.
이 세상의 일거수일투족의 모든 중생들을 밝게 해 주시 려고 부처님의 자신의 고통 이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우리들을 위해서 희생하시는구나.’ 이런 것을 아 니까 涕淚悲泣이 당연히 되겠죠.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부처님은 神입니다. 우리와는 너무나 틀립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꿈속에서 살고, 마약 속에서 살고, 술에 취해서 살고, 잠자듯 이 살면서 몽롱한 상태에서 삽니다.
그런데 우리도 가끔 들여다보면 자기의 잘못을 모르고 주위에서 보면 환상가 몽상가가 너 무나 많다는 것을 느낍니까?
주위에도 그렇게 보일 때가 있어요. 그건 사실 자기가 그렇거든요. 부처님이 보시면 참 딱한 거예 요.
그런데 인제 수보리 존자가 깨치고 보니까 부처님의 지혜는 대단하다.
그리고 부처님의 자비 를 빌 필요가 없어요.
그리 고 고통이 나서 쉬었다 가십니다. 10리를 40번을 쉬었다고 그래요.
사람이니까 피로하시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 분은 안 그래도 돼요.
그렇지만 인생은 무상하다. 육신은 무상하다. 젊었을 때 닦아라.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십리를 몇 십 번 을 쉬어가셨다.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하게끔 이제 상당히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이 생겼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如是如是니라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不驚不怖不畏하면 - 不驚不怖不畏는
백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이것을 해석할 사람이 참 드물 것이다. 그
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는 不驚不怖不畏를 아주 쉽게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석하는 것 하고는 좀 틀린 것 같아요.
모든 경전에 나오는 해석은 그분들이 다 도인의 말씀을 들은 것도 아니 고 또 깨친 것도 아니고 그 밑에서 생활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시중에 나오는 해석은 저희가 믿을 수가 없다.
절대세계를 우리 의 얄팍한 지식이나 상식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요. 들어가면 까딱하다가 죽는다고 그래요.
우리 백선생님께서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너, 당장 도통을 시켜줄 수가 있다. 도통을 시켜주면 너는 죽을 수가 있다.
그러니까 너를 도통시켜줄 수가 없다.
도통을 시켜 주면 그 세계는 너무나 엄청나고 대단하고 우리들은 극락세계라고 얘기를 하는데 ”
그런데 우리의 상식하고는 너무나 틀린 거 예요. 그 밝음을 체험하면 백선생님은 종종 그런 얘기를 합니다.
“밝은 태양아래 지렁이는 꿈틀거리다가 그러다가 죽는다.”
밝 은 태양아래 응달이 더욱 어둡습니다 절대의 세계를 한번 체험해보면 까닥하다가 죽어요 죽거나 퇴타심 내거나 이렇게 됩니 다.
절대세계를 step by step으로 맛을 보여줘야지 한꺼번에 싹 들여놓는 것은 굉장히 안 좋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걸 방편이 라고 그럽니다.
부처님이 이런 step by step 해서 절대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우리는 모르는 거예요.
우리하고도 똑 같구나. 때로는 실수 도 할 수가 있구나. 실수하니까 우리가 봐주자. 우리가 거꾸로 부처님을 봐주고 있어요.
우리가 봐 줄 정도로....... 절대 자기를 낮추고 죽이고 절대 공경심으로 나가야 깨칠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제 절대세계로 들어가니까 너무나 엄청나니까 놀라고 두려워요. 도망가고 싶어요.
저는 여기서 퇴타심을 많이 낸 사 람들은 그 사람들을 화를 내고 못됐다. 이렇게 하고 싶지를 않습니다.
여기서는 가행정진하고 저한테는 대개 다 환희심 내고 법사님 은혜 잊지 않겠다.
영원히 따르겠다. 그러다가 갑자기 싹 돌아서서 퇴타심 내고 욕하고 그럽니다. 그를 배신자라고 저 는 욕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공부를 하고 절대세계를 맛을 보다 보니까 상당히 들어가다 보니까
자기의 업장을 버리고 절대세 계에 들어가야 되는데 업장을 가지고 들어오니까 거기서 두려움을 느끼고 그런데
진심을 내고 욕을 하고 가는 것이 퇴타심 내 는 사람들의 현주소다.
그를 배신자라고 하지 마라. 절대세계에 不驚不怖不畏가 아니라 驚怖畏하기 때문에 도망 갈 수밖에 없 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모든 법문 듣는 분들일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전에 환희심 내어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짓기를 발원 드립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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