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금강경 [해석]

금강경 제 14분 [김원수 법사님] 2차 법

금강 반야 바라밀 2023. 4. 15. 16:36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시느라고 대단히 수고들 많으십니다.

잠이 본래 착각이래요. 우리는 착각이라고 생각이 안 들죠?

잠이 착각인 줄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금강경 14분 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해석하는 것은 요새 식으로 하면 요새 학교교육이나마찬가지로 지식의 전달교육이기

때문에 해석하는 것은 마음 닦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해석도 우리현실에 맞고 실감이 나는 해석을 해야 되는데 대개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해설자들이,제가 조금 이렇게 외람되지만 현실에 맞는 또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의 말씀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부처님 같은,

정말 석가여래와 같은 그런 분을 만나서 직접수행을 했던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요런 말씀을 드립니다.

조금은 다를 겁니다. 그래서 14분도 바로 내 문제,

나에게 알맞은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해석 강의 듣는 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이 금강경 14분에는 금강경 매분도 마찬가집니다만 금강경 전체의 뜻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특히 14분에는 금강경 전체의 뜻이 다 들어있고 우리 수행의 로드맵이 자세히 써져 있다.

요렇게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저는 여기서 다 아시다시피 금강경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과 수보리존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부처님은 수보리존자하고 문답으로 하지만 수보리존자를 여러 중생들로 포함해서

수보리를 밝게 해주기 위해서 말씀을 하시지만 모든 중생을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우리 선생님이 저한테 했던 것,

우리 백선생님이 저한테 했던 것을 저는 연상하게 됩니다. 오늘은 부처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석가여래라고 하는 어떤 사람, 부처님 하면 보통 명사가 되죠?

보통 명사 갖고서는 이 금강경 해설이 실감이 좀 덜 납니다.

석가여래라고 하는 2500년 전 인도 가비라성에서 태어난 왕자,

그이를 싯달타라고 그러는데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는 석가모니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석가여래)과 수보리존자와 첫 만남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저는 백박사님이라고 하는 훌륭하신 분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서 석가여래와 수보리존자가 처음 만났을 때,

금강경을 읽을 때는 수보리존자와 석가여래는 상당히 오랫동안 만났습니다.

한 20년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깨치시고 난 뒤 20년 동안 20년 이후에 설하신 것이 금강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첫 번 만났을 때 어떠했었을까? 아마 수보리존자가 첫 번 만났을 때마다 확 빠져 들어갔었을 것 같아요.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여러 생 닦아왔기 때문입니다.

밝은이 말씀에 의하면 제가 추측해 보면 석가여래와 수보리존자는 금생에만 만난 게아닙니다.

여러 생 동안 인연이 있어서 석가여래는 수보리라고 하는 그런 제자를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2500년 전 그 당생만금강경을 통해서 밝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여러 생전부터 수보리존자는 석가여래라는 분을 모시고 수도를 해 왔을 것이고좋은 인상을 쌓아왔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금생에는 태어나자마자 전생의 기억이 확 떠오르면서 그대로 공경심이 확 났을 텐 데 공경심이 나려면 사람이 인상이 좋아야지 인상이 고약해서 절대 공경심이 안 나죠.

그래서 제가 추측컨대 아마도 석가여래의 첫인상이 사람으로 보지, 절대로 신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신으로 하려면 사람을제도할 수가 없어, 사람을 제도하려면 자기가 신이라고 할지라도, 제가 전지전능한 조물주지만 이 어리석은 중생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는 (신의 모습이 어떤지 우리는 알 수가 없죠? 우리는 그 지혜를 상상할 수가 없죠.)

놀라서 도망을 간대요. 그러니까 그 사람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너무 엄청나게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경전에 나오는 얘기고 제가 아는 지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야 되고, 너무 뛰어났어도 안 되고, 그래도 비범한 인상을 줘야 됩니다.

금강경에는 32상이 나오지만 거룩하고 위대하고 찬란하고 이러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보통 사람하고 구분이 잘 안 됐을 거 같아요. 2500년 전, 그런데 가만히 보면 훤하고 어쩐지 비범하고 그런 건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달리말해서 굉장히 위대한 모습은 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위대하지 않기 때문에,

위대한 것을 보려면 내 자신이 어떤 깨달음의 경지, 높은 경지에 있을 때라야 그 도인의 정체가 보이지,

맨날 사랑과 미움 속에서 살면서 위대한 사람은구경도 못했기 때문에 신이 나타났다고 그래도 신을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은 제도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아주 뛰어난 모습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비슷하게 보인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저 부드러웠을 겁니다. 처음부터 부드럽게 멋진 배우처럼 이렇게 보이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잘 생각해보면 어딘지 좀 틀리다. 어딘지 모르게 좀 훤하다. 어딘지 모르게 비범하다. 이렇게 느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32상 80종호가 돼서 인간이 아닌 절대세계에 있는

그런 모습으로 절대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좀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한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여러 생 같이 수도를 했기 때문에 부드럽지만 당당하고 거룩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수보리존자는 공경심이 났을 거예요.

저이를 모시고 수도를 했으면, 가르침을 받았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 걸로 생각이 듭니다. 여러 생 아주 깊은 인연이 있어요.

아마 이런 법문은 도인 비슷한 분을 모시고 생활해 보기 전에는 얻어들을 수도 없을 걸로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이것을 얘기하는 것은 필요하실 것 같아서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세계와 우리하고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세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실감을 느끼기에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런 말씀을 통해서 점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제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이를 모시고 내 난제를 해결했으면, 중생인이상 자기 능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난제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식을 찾습니다. 그런데 찾기는 찾는데 그런 비슷한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자기 난제를 해결해 주면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인상이 나서 머리 깎고 출가해서 본격적으로 난제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즉 지금 같으면 이 재앙을 어떻게 소멸합니까? 내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이런 소원이 우리도 있지만 수보리 존자도 똑 같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거창한 금강경질문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닦겠습니까? 이런 살기가 어렵습니다. 먹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좀 부자들은 먹고 살기가 어렵습니다하는 질문은 하지 않겠지만 정신이 산만한데 어떻게 이것을 통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갈등이 심한데 어떻게 하면 갈등을 면하겠습니까? 이런 난제를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이 대답을 하시는데 내가 해결사다. 해결해 주겠다.

절대로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을 것을. 제가 도인을 모시고있어 봐서 압니다. 아마 사람 모습의 석가여래는

“네 속에 답이 있다. 네가 알 수 있다. 이러이러한 식으로 해 봐라.”

그러면서석가여래한테 매달려서 답을 찾으려고 시도를 했지만 석가여래는 “나한테 매달려서 할 필요 없다.

네가 할 수 있다. 단지 못한다. 안 된다. 어렵다는 생각이 착각인 줄 알고 바쳐라.” 요렇게 얘기했었을 것 같습니다.

어렵다는 생각만 없어지면 쉬워진다. 못한다는 생각만 없어지면 되어 진다.

괴롭다는 생각이 없으면 행복이 온다. 괴롭다는 생각을 착각으로 알고 바쳐라.

이것이 저는 사제법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제법문을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지만 처음에고통이 심하니까 고통의 해결방법을 여쭈었을 거고,

석가여래께서는 그것을 고통이라는 생각을 착각인 줄 알아라. 아마 이렇게 비슷하게 얘기하셨고,

네 속에 어떤 행복의 열쇠가 있음을 알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셨을 거고 네가 다 할 수 있다는 식으로유도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수보리 존자도 처음에 다 고통의 문제를 하소연했고, 그 다음에 소원성취의 문제를 하소연했는데 그 대답을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네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안 된다.

못한다는 생각만 없애면 할 수 있다.”

요렇게 대답하셨을 거고 결국은수보리존자를 통하여 재앙소멸을 하게 했고 소원성취를 하게 했습니다.

매달릴게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수보리존자는 비로소 철이 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제 경험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재앙도 소멸하고 소원성취가 된 그것을 아라한 이라고 하기도 하고,

연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재앙소멸하는데 12년을 아함부 법문을 설하셨고,

소원성취하는데 8년의 방등부 법문을 설하셨다. 제가 어떻게 보면 지금 8만4천 법문을 지금 요약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철이 났어요. 그리고 참 위대해 보여요. 그분은

“네 속에서 다 답을 찾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 우리들한테 굉장히 자긍심을 심어 주셨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가만히 옆에 보살들한테 하는 법문을 들으니까

“너희들은 부처다.”라는얘기까지 해 주세요. 저분은 처음에는 부드럽고 거룩하고 위대해서 따르고 싶다.

공경의 마음만 냈지만 절대 공경심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는 점점 철이 나면서 저분은 알 수 없는 분이다. 그저 따뜻한 아버지 정도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 정도로가 아니라 저분은 신이로구나. 정말 알 수 없는 분이다.

그러면서 마치 안연이 공자님을 존경하듯이 절대공경심을 가지게됐고, 공경심을 가져야 밝아지죠.

지금 우리 백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화두참선하는 이들에게 경고를 해요.

뭐냐 하면 도통하겠다는 욕심만 갖고 도통이 되느냐?

도통하려고 하기 전에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을 따르고 싶고 부처님을 닮고 싶어야 그 세계로 들어가지 내가 도통하겠다.

라고 하면서 오매일여寤寐一如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이것만 자꾸 정신집중만 한다면 외레 탐욕심이 커지기때문에 멀어진다는 것이 백선생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수보리존자는 욕심을 버리고 내속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석가여래를 대단히 공경하고 제가 적당한 비유가 없어요. 안연이라고 하는 공자의 수제자가 공자님을 보고 하신 표현 그것이 꼭 적합해요.

처음에 인간으로 봤어요. 안연도 공자님을 그런데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신처럼 느껴지고 대단한 존재로 느껴지고,

위대한 존재로 느껴지면서 절대공경심을 내고 수보리존자도 공경심을 낸 것이 금강경에는 체루비읍涕淚悲泣,

희유세존 이런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난제 해결 후 철이 들고 지혜가 나고 안연의 마음이 되면서 석가여래에 대한 절대공경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공경심이있어야 부처님 세계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공경심이 없이 그냥 욕심으로 들어갔다가는 요새말로 작살이 나서 처벌을 받는다고 그럽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는 종종 백선생님한테 저희는 처음부터 말대답은 안하지만 곧잘 질문은 했습니다.

질문 속에는 정말 모르는 것을 여쭙고 싶어서 질문하는 수도 있지만

제 속에는 아주 못 되게 좀 테스트하고 싶은, 또는 선생님이 그것도 모르느냐 좀 짜증 섞인 질문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면 당장 안색이 변해요. 그런데 저는 그래도 좀 얌전한 편입니다. 좀 더 못된 사람이 있어요.

상당히 도전적인 얘기를 하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는 아무소리를 안 하시는데 나중에 그래요.

“저이는 좀 있다가 죽는다.”고 그래요. 그러면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지.

요새 신문기자들보면 어떻게 대통령한테 날카로운질문도 하는데 죽지도 않는데요.

도인이라고 뭐 별거예요.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불순한 용심을 갖고 특히 밝은이한테 도전하면 그것은 처벌로 이어진답니다.

그 비유를 이렇게 하세요. 태양을 자꾸 쳐다봐요. 태양을 쳐다보면 눈이 먼다.

절대세계는 도전하면 안 된다. ‘예’해야 된다. ‘시봉 잘 하기를 발원해야 된다.

’ 특히 “깨달음의 세계에 올 때 옳지 하지 마라라. 얼른 시봉 잘하기를 발원해라.” 이것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이게 백선생님의 말씀인 줄 알았는데 제가 인도의 요가 책을 봤어요. 거기에도 밝은이의 세계가 있는데 우리가 지금 아직은 도통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셨죠? 저도 잘 못했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아마 도통의 세계를 아마 체험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굉장히 밝은 광명을 느껴지는 수가 많은 모양입니다.

빛 이게 밝음의 증표입니다. 마음이 아주 환희심이 나고 대낮에도 태양이2개쯤 뜬 것처럼 머물며 세상이 아주 밝고 그런 세계,

그런데 도통의 세계는 태양이 한 100개쯤 뜬 것 같다네요.

그것을 쳐다보면 눈 부셔요. 눈이 먼데요. 절대로 쳐다보거나 맞장 뜨려고 그러거나 말대답하고 이러지 말아야

저희는 그래서 말대답은 일체 없습니다.

‘네’ 또는 ‘시봉 잘 하겠습니다.’ 실천하는 게 특징이에요.

상대적인 세상에서는 말대답해도 통합니다. 절대적인 세계에 가서는안통해요.

그런데 그것은 아직 체험을 못하셨기 때문에 그 정도만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도 말대답하고 따지고 분별심 내고 이렇게 하면 퇴타심으로 이어집니다.

그러시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대답하다보면 퇴타심으로 이어집니다.

수보리가 절대세계에 들어가면서 정말 새로운 사실이 발견 되고

자기 자신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을 하는데 자기 자신의 정체를 보니까 너무나도 추한 거예요.

우리는 지금 잘난 맛에 살죠. 어떻습니까? 못났다고 하면 멱살잡이 하고 싸웁니다.

그런데그건 정말 철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밝아지고 철이 자꾸 나게 되면 제일 깨달음이 나를 아는 거예요.

‘나의 모습’, ‘나는 무엇인가’ 이런 책의 제목이 많잖아요. 나의 정체를 모르고 있어요.

꽤 잘난 줄 알고 있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열등감을 느끼고 살아요. 그런데 자꾸 알게 되면 점점 밝아지면서 내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러면 너무나도 추하고 너무 하잘 것 없고 이렇게 되면서 죽고 싶은 생각도 들겠죠?

그것도 착각이래요. 그것도 벗어나게 되면 비로소 나를 알면서 깨달음의 세계, 절대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참 추하고 놀란 모습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지마라라.

이게 不驚不怖不畏 절대세계에 들어갈 때 체험되는 현상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요새 절에서 가르치는 분들은 이런 과정을 얘기 안 합니다. 공경심도 얘기 안 합니다.

도통을 자나 깨나, 고양이가 쥐잡듯이, 딱 화두참선해서 어느 날 갑자기 탁 터지는 거로만 하는데

백선생님은 그것을 굉장히 경계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간화선을 가지고 지금 확실하게 깨쳐서 수행의 로드맵을 제대로 밝힌 선사가 아마 없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절대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이제 비로소 석가여래가 진짜 위대하다는 요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이를 인간으로 보고 그저 부드러운 아버지로 봤다. 따뜻한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저분은 조물주고 우리도 똑 같이 조물주라고 일깨워주실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고 나 자신 역시도 대단한 존귀한 존재다.

아마 이게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서 얻어진 결론이 아닌가 제가 생각을 합니다.

그때 가면 보통 어리석은 사람들한테는 주는 마음 연습해라, 무보수한 마음 연습해라. 이것이 보시바라밀이니라.

이렇게 가르치죠? 그런데 석가여래의 입장에 서게 되면 보시바라밀을 해서 사람을 밝게 해 주기 위해서 하지만 그분은 베풀 일이 있어서 베푼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미 베풀 일도 없고, 베풀 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베푼다는 것도 다 허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제일바라밀(보시바라밀)을 설하시느냐?

왜 인욕바라밀을 설하시느냐? 그것은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래요.

이네들을 정말 구제해 주기 위해서 억지로 베푸시는 시범을 보이시는 겁니다.

베풀 것이 있어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14분 아주 감동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가리왕이 할절신체할 때 화내지 않았다.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 같은 분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옆에 있는 그런 이들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지로 아! 대단하다. 이렇게 생각이 되죠.

가리왕의 인욕선인이나 예수님 같은 분은 이미 화낼 일이 본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을 박히더라도화내지 않고 아마 그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을 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보였느냐?

저는 잘 모르지만 제 추측으로 깨달은이라면 또 인욕선인은 왜 가리왕한테할절신체가 되었느냐?

그런 모습을 보이고 화 안내는 모습을 보여야 또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못 박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을 제도할 수가 있고 밝게 할 수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일부러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인욕바라밀을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인욕바라밀은 비인욕바라밀일세 그네들은 우리를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인욕바라밀의 모습을 보인 것이지 실지로 화내고 견딜만한 일이 있어서 견디는 것은 아니다.

해야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욕바라밀은 다르다.

우리를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연극처럼 나타내 주신 것이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

즉비제일바라밀卽非第一波羅蜜

시명제일바라밀是名第一波羅蜜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즉 비인욕바라밀非忍辱波羅蜜이다. 요렇게 이해하셔야 됩니다.

즉 부처님이 하시는 것은 기생의 모습으로도 나타내는 것이 화엄경에도 있습니다.

다 연극이고 우리를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쇼를 하는 거고 그런 것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저희는 우리 백선생님이 화를 내시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리고 남을 비판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하는 것이 알고 봤더니 바로 내 소리더라고요.

바로 그 사람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예를 들어서 네 마음을 밝혀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판, 남을 흉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흉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밝게 해주시기 위해서 그이를 통해서

네 마음 들여다봐라.

요렇게 하는 것을 몇 번 깨달으면서 도인이 하는 것, 석가여래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연극입니다.

중생들을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런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뭐냐 하면 내가 이렇게 해서 밝게 되었는데 너희들도 똑 같이 밝은 존재다.

너희들도 똑 같이 부처다. 이것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연극을 꾸미신 거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금강경에 心不應住色布施다. 이 겉에 나타난 형상에 의지해서 보시하지 마라.

우리는 대가가 있을 때 대가를 바라고 보시를 하잖아요? 뇌물을 쓴다고 그러죠.

뇌물식으로 베풀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도 여기서 열심히 일하고 나면 내가 열심히 일했으나 나는 대가를 바라고 일하지 않는다.

이러면서 사실은 그것은 대가를 바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대가도 안 주니까 나는 뭐 떠난다. 이렇게 비슷하게 하고 떠난 사람들이 꽤 많아요.

그것은 자기 자신이 조물주라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자기가 전지전능한 조물주라면 남한테 대가를 바랄 필요가 없어요.

다 끊임없이 베풀어줘도 남습니다. 즉 달리말해서 너희들이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석가여래가 시범을 보여요.

화낼 일도 본래 없다. 욕심낼 일도 본래 없다. 너희들도 역시 그런 존재다.

내가 그렇게 보였듯이 너희들도 그런 존재다. 하는 것을 일깨워주고 그 결론이 心不應住色布施다.

너희들은 色聲香味觸法에 住해서 布施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허상임을 알 정도로 너희들은 전지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이것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면 물론 이것은 제 상상이고 제 생각입니다.

그럼 참 석가여래 정말 위대하다. 라고 감동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환희심 내어

부처님 시봉을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합장공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