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재앙은 소멸하고 소원은 성취해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금강경 제16분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btn에서도 그랬듯이 금강경 해설 그 앞에 붙는 형용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금강경’ 해설이다.
이렇게 일단 생각하시고 법문을 들으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자 합 니다.
금강경 16분은 다른 어느 분보다도 상당히 쉽고 좀 인간적이고 이해가 좀 잘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금강경 여 러 분 다 좋아합니다만 특히 금강경 16분을 석가여래께서도 저한테 염두에 두고 해 주신 것 같아서
16분을 자주 읽고 검토하 고 또 그 실례를 찾아보고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이 되었냐 하면 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되 이렇게 되요.
보통 선남자선여인이라고 하는 것은 탐.진. 치가 있는 보통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금강경을 읽는 겁니다. 그런데 금강경을 단순히 읽었다. 라고 생각하면 적합하지가 않고요.
受持讀誦此經속에는 이것을 믿고信, 이해하고解, 실천해서行, 어떤 깨달음의 결과證까지도 실감을 했다.
즉 신해행증의 내용이 이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금강경을 7독만 해도 된다.
라는 이런 이야기 끝에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금강경 7독에만 집착하는 수가 있죠?
그렇게 해도 공덕은 된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뜻을 알려고 노력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생각이든지 바쳐라. 많이 듣지 않았습니까? 실천하고 그리고 터득이 되는 게 분명히 있어요.
그것을 일지 에다 적어시고 이해가 안 되면 좀 더 나은 선배나 선지식한테 가서
여쭈어서 분명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될 필요가 있다. 이 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 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되 하는 이런 얘기를
금강경을 실천을 충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뜻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그 뒤에 若爲人輕賤하면 우리가 금강경을 읽게 되면 공덕이 아주 많다는 표현이 아주 자주 등장을 합니다.
제일 먼저 공덕으로 언급한 부분이 금강경 4분입니다.
無住相布施福德이 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금강경 4분에 금강경공덕을 처음으로 언 급했고요 그 다음에
8분 若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한 그 복보다도 금강경 수지독송한 복이 더 크다.
이런 표현을 하면서 금강경 가르침의 위대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4분에도 무주상보시의 복은 많다. 8분에는 삼천대천세계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한 것보다도 이 금강경 수지독송한 공덕이 더 크 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참 그것이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8분에만 얘기한 게 아니라 그 뒤에 11분, 12분, 13 분, 14분, 15분, 이렇게 계속 금강경 대단한 공덕이다.
잘 읽어라. 이런 말씀이 아주 간절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금강선원의 혜거스님이 금강경 해설하신다는 것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겁니다.
그분이 금강경도 하시고 하도 지식이 많으니까 다른 경도 다 두루두루 하시는데 그분 하시는 말씀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금강경만큼 그 공덕을 구구절절이 위대하다면서 예찬해 놓은 경은 금강경 이외는 없더라.”
이게 혜거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거 같습니다.
다른 경에도 예찬을 했습니다만 금 강경에는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검토해 볼 사항이 있습니다.
4분에서 무주상보시의 복덕이 크다고 그랬죠? 또 8분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
11분 역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죠? 이것들은 다 自力에 의한 공덕입니다.
자력에 의한 공덕보다도 금강경 수지독송이 더 크다. 이렇게 배우고 있습니다.
8분에 보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그 복보다 금강경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더 크다는 것은 금강경은 좋은 일 함으로써 생기는 공덕이라고 할 수가 없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즉 금강경은 타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크다. 이런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즉 4분, 8분, 11분, 12분은 열심히 독송하라는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열심히 독송하면 그게 자력 아닙니까? 최선을 다 해라. 그 복은 네가 노력한 어떤 복보다 굉장히 크다.
네가 노력한 복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한 것은 자력으로 봐야 됩니다.
그럼 금강경 수지독송한 그 공덕은 자력이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듭니까? 안 듭니까? 자력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들 얘기할 때 간화선 하신 분들은 불교를 자력종교라고 얘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화두참구를 열심히 자나 깨나, 고 양이가 쥐 잡듯이 열심히 하면, 그 열심히 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 아닙니까?
최선을 다해서 하면 확 깨치는데 그런 구절 을 읽어보면 역시 불교 수행은 자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우리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스님들도 특히 간 화선 쪽으로 많이 기우는데......
그런데 여기서 보면 4,8,11,12분은 이 금강경 수지독송하는 그 공덕은 자력이 아니라는 것을 의 미합니다.
부처님의 善_護念, 善_付囑이 있다.
아무리 자력으로 보시를 하고 좋은 일 많이 한 대표적인 게 양무제로 아는데 좋은 일을 참 많이 한 임금입니다.
그런데 그이가 절도 짓고, 스님들도 많이 배출하고 일생을 불교 중흥을 위해서
애쓰신 분이 양무제입니다만 그이가 달마대사를 만나서 자기 일생의 보람을 다 털어내 놓았습니다.
일생동안 수많은 절을 짓고, 수많은 경을 찍고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그 공덕이 얼마 나 됩니까? 한마디로 물었어요. 그랬더니 달마대사는
(달마대사는 금강경을 하셨던 분이 아닙니다. 달마대사는 능가경을 중심으로 했던 분이고 저도 능가경 강 의를 한참을 들었는데 결국은 불교는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능가경이나 금강경이나) 그 공덕이 하나도 없다.
그 속에는 금 강경을 수지독송공덕이 더 크다. 이런 뜻이 됩니다.
그럼 금강경 수지독송은 자력이 아닌 어떤 타력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명히 자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력으 로서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이 인간으로서 양무제가 해당이 되고요.
자력으로서 극치에 달한 것은 우리 금강경 15분에 보면 初 日分에 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中日分에 復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後日分에 亦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如是無量百千 萬億劫에 以身布施하고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까?
정말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그 공덕 즉 최선의 노력을 다한 그 공덕보다도 금강경 수지독송한 공덕이 더 크다.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은 금강경수지독송은 자력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우리가 하게 됩니다. 타력이 아닐까? 의문이 들어요. 그런데 금강경 16분을 보면 타력이 등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善男子善女人이 이경을 읽지만 단순히 수지독송하는 게 아니 라 실천을 해요.
실천을 해서 상당히 지혜가 나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재앙도 소멸하고,
상당히 어른스러워지고 등등 이런 좋 은 일을 체험하게 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요.
왜 그럴까? 그것을 설명으로 이 사람은 先世罪業으 로 應墮惡道에 떨어질 사람이다. 저는 이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스스로는 굉장히 모범생이라고 했던 거 같고, 저 스스로 뿐만 아니라 주위 에서도 야!
너 같은 모범생이 군대생활도 아주 고지식하게 했던 그런 것을 보고 동료동기생들이 너같이 착실한 놈이 군대생활 도 그렇게 모범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깨졌습니다.
왜 이렇게 재앙을 당하느냐? 난 군대생활 개판을 치고 별일 다 해 도 군대생활 무난하게 했다.
이렇게 동기들이 얘기를 합니다. 제가 마지막 7개월쯤 돼서 저의 직속상관하고 영창을 보내니 어쩌니 해서 이정도로 험악한 말이 오고가면서 저의 제대를 순조 로움을 방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동기생들이 야! 너 같이 착실한 놈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느냐? 이해가 안 간다.
그 뒤에는 제가 식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당은 소사에서 나와서 저로서는 2번째 사회생활입니다.
군대생활은 첫 번째 사회 생활이라면 식당은 2번째 사회생활인데 저는 소사에서 한4년을 공부했기 때문에 금강경 수지독송 공덕이 굉장히 크다고 그랬 잖아요? 금강경을 실천한 사람이니까 장사를 하던 뭐를 하던 다 잘 될 것이다.
이런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또 선생님도 그렇 게 말씀하셔서 식당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혀 틀렸습니다. 너무 너무나도 험난한 일이 많았고 나중에는 먹고 살기도 어려워서 유지하기도 힘든 상태까지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또 그 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처럼 좋은 일을 했는데 어떻게 하늘이 나한테 복을 안 주느냐. 그것도 종업원 애들이 인간으로 치면 아 주 말단 아주 올데갈데없는 애들, 막가파인생들만 모여드는 것 같아요. 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필이면 이런 막가파인생들이랑 지낼 수밖에 없단 말인가? 저는 부처님을 원망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나처럼 착실한 사람이 어디 없는데도 불국하고 나에게 이런 시련이 떨어지는 것인가? 그 2가지가 제 인생에 최대 고생이었다고 요번에도 주말출가에 표현에서도 쓰고 우리 초파일 권선문에도 썼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해가 안 가다가 금강경 16분을 보니까 이해가 돼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계속 이렇게 경천을 해 요. 계속 깨지는 겁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若爲人輕賤하면 是人은 先世罪業으로 應 墮惡道 그런데 금강경 16분을 보고 위안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확실합니다. 이 16분은 참 제가 좋아했어요. 나한테 꼭 맞는 가르침이다.
나 같은 사람한테도 부처님께서 약간 자비의 손을 뻗치셨구나 이 걸 여러 번 느꼈습니다.
결국 저는 많은 애로를 극복하고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경전그대로 한다면 저는 전생에 죄를 무지하게 많이 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래 너는 죄지었다. 나는 안 그랬다. 비아냥대는 도반들이 그때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는 장사해서 아주 고생하고 이러지만 우리는 고생 하나도 안 하고 탄탄대로여서 큰 사업체도 이룩했다.
그런 사례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저를 동정하고 무시하고 비아냥대고 이랬던 것 같 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없는 열등감을 느끼고 우리 선생님이 공부 일체급 시켜준 거 맞아?
이런 선생님에 대한 의심도 적잖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제 전생에 지은 죄업에 비하면 저는 너무나 많은 것을 선택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많이 느낍니다.
이 사람은 선 세죄업으로 사람 몸도 못 받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사람 몸을 받았나?
이렇게 봤더니 제가 꿈을 봤는데 우리 백선생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시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좀 구원해 주시려면 부잣집에 좀 괜찮은 집에 구원을 해 줘야 되 는데 너는 전생에 하도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구원해서 사람 몸은 받게 하지만 너는 짭짜름한 고생을 해서 고생이 축복임 을 깨달아서 밝아지는 이런 과정을 너는 거쳐야 된다.
아마 이렇게 보셨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나는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생각을 했다가 나중에는 내가 이렇게 된 것만으로도 天佑神助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괜찮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 구세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무리 부처님, 부처님 하고 매달리고 그래도 잘 안 되는 게 많거든요. 구세주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구세주는 많 다는 게 지금 제 생각입니다. 즉 보살들이 겉으로 나는 전생에 보살의 화생이다.
라고 드러내지 않습니다. 저한테 지극히 시련을 주면서 너한테 편안하게 해 줘서는 너는 곧 까먹는다.
고생을 짭짜름하게 해서 언제까지 고생을 해야 되느냐? 그 고생이 축복임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너는 고생을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고생이 저한테 최대의 선물이더라고요.
만일 저한테 도반이 있습니다. 출판사하는 도반 그네들은 고생을 하나도 안 했어요. 처음부터 탄탄대로로 이미 40대 후반에 외 제차 타고 다니고 그랬는데 저는 지금까지 외제차는 커녕 제가 김형태선생님 덕분에 조금 출세했습니다만 외제차고 뭐고 빈 궁하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참 많이 떼를 쓰고 이럴 수 있냐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련이 저를 크게 했던 것을 이제 느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선 법문거리가 없었을 거예요. 저는 법문거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 법문 거리를 듣고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 같아요. 제가 법문거리가 없고, 고생을 안 하고, 탄탄대로를 걸었다면 요 번에 국회에 가서도 맺힌 게 있었을 겁니다. 국회에서도 많은 스님들이 왔는데 거기에 있는 속인들도 그렇고 스님들도 그렇고 저를 아는 척하려고 그러고 옆에 오려고 그러더라고요. 그게 법문에 감동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시나 너무 하시다. 이러다가 사고방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니다. 이런 시련은 너 무나 고마운 것이다.
이런 시련을 통해서 나는 법문거리가 많음은 물론 진짜 인간이 되었구나.
반드시 시련이 축복임을 깨달아 야만 밝아질 수 있다. 저는 이렇게 결론이 됐습니다. 若爲人輕賤하면 是人은 先世罪業으로 應墮惡道 이것을 가만히 보세요. 이 사람은 선세죄업으로 악도에 많이 떨어졌지만 지금 도 저를 경천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저는 어이가 없지만 이제는 화도 안 냅니다. 그런데 그 경천을 할 때마다 이제는 화내기 보다도 그래 선세죄업 즉위소멸, 선세죄업 즉위소멸 그렇게 한번 해 보세요. 직장에서도 그렇고 상사한테 천대받고 가정에서 도 남편한테 버림받고 또 자식들한테 버림받고 등등 기타 여러 가지 시련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16분 을 생각하세요. 若爲人輕賤입니다. 선세죄업을 이 경천당한 것으로 선세죄업이 소멸되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이렇게 한번 해 보시면 그 경천은 반드시 축복으로 바뀝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나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한번 내리 막길을 가게 되면 다시 올라가지 못합니다. 세상에 그런 수가 많거든요. 쭉 올라가면 한번 떨어지면 다시 못 올라가요. 그게 소 위 미국의 하버드대출신들의 약점이라고 그럽니다. 하버드대출신이 지은 책을 제가 읽었습니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게 하버드대출신의 약점이라고 제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굉장히 경천을 당하고 패가망신할 정도로 고통이 심해도 이것은 축복의 전 단계다.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 다. 그렇게 해서 先世罪業을 則爲消滅하고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합니다. 인제 밝아진다. 이 뜻입니다.
그런데 先世罪業이 消滅하면 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잖아요. 고통이 다 사라지고 행복한 시절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 다 사라지고 나서 행복해지는 삶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복은 말년 복이 최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대개 그럴 거예요. 아! 이제 되었구나. 이만하면 됐구나. 그럼 또 떨어져요. 이걸 꼭 유념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그때 이만하면 됐다. 하지 않고 자꾸 바치면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밝아진다는 얘기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서 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 거예요.
이 공덕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이 표현이 過去無量阿僧祇 劫에 於然燈佛前에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하야 悉皆供養承事하야 無空過者로 표현합니다. 이게 모든 부처님을 나는 계 속 섬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보시의 공덕이 크죠? 그런데 부처님을 공양한 공덕도 큽니다. 보시의 공덕은 대개 자력으로 봐야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 공경으로 인한 복은 타력에 속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자력에 의한 복만 얘기를 했다.
항하사목숨으로 보시한 복 그것은 자력이다. 그런데 이제는 타력에 의한 복을 얘기하겠다. 타력에 의한 복이 있지만 그 타력에 의한 복보다도 이 금강경 수지독송 공덕이 더 크다. 이런 뜻입니다. 이것을 참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금강경도 저는 알고 봤더니 타력 같아요. 그런데 그 금강경의 복보다 팔백사천만억나유타 부처님 을 계속 섬겼다는 것은 부처님을 통해서 자비광명을 받았다는 뜻이고 타력에 의해서 섬겼다는 뜻입니다. 그걸 이해를 못했어 요. 자력보다는 타력이 낫다. 그건 이해가 되지만 타력보다 금강경이 더 나은가? 여기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金剛經을 能受持讀誦此經하면 그러면 부처님 모든 보살들한테 보시한 공덕보다 더 크다. 이런 뜻이 됩니다. 즉 타력의 복보다 더 크다. 요런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게 뭔가 하면 처음에 우리가 수도를 할 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도를 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런 걸 느끼실 거 예요. 그 뒤에 자기만 편해진 게 아니라 부부사이에 화목해집니다. 이것도 느끼실 거예요. 또 가난이 변해서 부자가 됩니다. 이 것도 느끼실 거예요. 아! 금강경의 공덕은 대단히 많다.
요새 우리 오늘 주말출가가 있습니다. 그런 좋은 말씀을 하실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뭐도 잘되고, 뭐도 잘되고, 이런 일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대개 내가 해서 어떤 인위적인 노력으로 해서 받는 복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업장을 바치니까 부처님 광명을 받아서 업장이 소멸이 돼요. 부처님 광명이 나한테 비치니까 그것은 자력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타력인데 금강경도 타력이고 부처님께 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께 悉皆供養承事ㄴ데 왜 이게 더 많다는 말 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걸 꼭 아셔야 돼요. 금강경 15분에 그것은 최상승자나 대승자를 위해서 하는 거다. 이 소승자는 八百四千萬億那由他 諸佛 悉皆供養承事속에는 대승의 마음을 내지 않은 사람임을 그 안에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이 잘 되기 위해 서는 아무리 부처님께 공경 공양한다하더라도 타력에 의해서 힘 안들이고 큰 복을 얻었다하더라도 그 복보다는 금강경을 能 受持讀誦此經 능히 수지독송하는 사람의 복이 더 크다는 말이 무엇이냐? 能자가 붙었다는 것은 금강경을 통해서 소승자가 대 승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속이 넓어지고 대승자가 되면 소승자일 때 아무리 복을 지은 것보다도 대승자때 받는 복이 굉장히 크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러고 절에서도 그러지만 아무리 복을 주려고 해도 너희들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서 복을 못 받는다. 그런 얘기는 아마 성 경에도 나오고 불교에도 내가 사랑하는 자식이 다섯 있어 이 재산을 물러주고 싶어요. 유산을 물러줘도 이것을 받아들일 그릇 이 큰 사람한테 더 많이 갑니다. 아무리 내가 똑 같이 사랑하지만 이 재산을 유지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날려 먹는 사람한테 는 자연히 잘 가지 않는답니다. 마찬가지로 能受持讀誦此經하면 能자는 이 금강경을 자꾸 읽으면 소승자가 대승자로 변한다.
대승자가 되면 똑 같이 보시를 하더라도, 똑 같이 부처님께 공양을 해도 무한한 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전에 이런 얘기를 우리 백선생님께서 하십니다.
한의사들이 사람의 관상을 보고 4가지 형태로 분류를 합니다. 태음인, 태양 인, 소음인, 소양인 넷으로 분류를 합니다.
이게 아마 서로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이 운명적으로 태어나서 그래서 말하자면 태 음, 태양은 대승자나 최상승자에 속하는 것처럼 백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음, 소양은 약락소법자 내지는 소승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백선생님이 얘기하시기를 소사에 있을 때 내가 소음인이었대요.
이 금강경을 소사에서 4년 동안 읽으니까 태음인 쪽으 로 많이 기울었대요. 이제는 아마 태음인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소음인으로서는 별 좋은 짓을 다해도 자기 그릇이 원체 작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적습니다.
만약 태음인이 된다면 받아들이는 그릇이 크기 때문에 아주 무량공덕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이 가능 합니다. 모르겠어요. 제가 잘못 해석했는지 몰라도 그렇게 해석을 하니까 이게(能受持讀誦此經) 딱 맞더라고요. 그러니까 여기서 복 주세요. 복 주세요. 이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그릇이 크라. 그릇이 커야만 큰 복은 저절로 오는 것 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유명한 김형석교수님을 잘 알겁니다. 103~4세 그이는 독실한 크리스찬입니다.
자기는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 고, 그때 도산 안창호선생의 설교도 들었다고 그럽니다.
도산 안창호는 독실한 크리스찬이고 그렇지만 목사는 아닙니다. 그런 데 자기가 보기에는 그릇이 큰 사람이 설교가 더 힘이 있더라. 도산 안창호선생의 강의를 듣고 자기는 발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산 안창호선생은 대승자일 거고 똑 같이 예수를 믿어도 대승자가 받아들이는 정도는 더 크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그릇이 소승자라면 아무리 노력을 다해도 자기 그릇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못 받는 거예요. 저는 이 구절 能受持讀誦此經을 해설을 잘 못하다가 그렇게 하니까 풀려요.
모르죠 우리 선생님한테 여쭈어보면 틀렸다. 이러 실 수도 있지만 제 마음에는 미안함이 없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 봐도 예전에는 모범생일 수는 있어도 백박사님의 뜻을 미리 헤아려서 알아서 하는
이런 큰 그릇은 못 됐던 거 같아요.
시키는 거나 겨우 했지 그런데 오랫동안 수도장에 있어 보니까 시키시는 것만
겨우 해서는 축복을 받는 일이 한계가 있고 알아서 그런데 그것은 여기도 그렇지만
제가 논문을 쓰면 대학원생들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대학원생들 중에서는 알아서 논문을 써서 지도교수의 업적을 굉장히 빛나게 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은 대승자로 생각을 합니다. 시키는 것을 겨우 하는 사람, 또 시키는 것을 잘하는 사람은 소승자이고,
또 지도교수가 대신 논문을 써 줘야 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약락소법자다. 어떤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까?
부처님 탓이 아니라 내가 대승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대승자가 되라는 그런 가르침을 귀히 생각하고 잘 받들어서 실천하면 힘 하나 안 들이고 경에 나오는 대로
是經義가 不可思議일새 果報도 亦不可思議니라 하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아마 성취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렇 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짓기를 발원 합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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