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3분의 내용이 어떻게 시작이 됐느냐 하면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어떻게 수도해야 아뇩다라 삼약삼 보리를 얻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으로서 시작이 됩니다.
그랬더니 이제 아뇩다라 삼약삼보리는
밝아진다. 부처가 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고요.
또 우리 식으로 하면 건강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수도들을 해서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것입니까? 이제 이렇게 해석을 해도 됩니다.
그랬더니 이제 부처님께서 금강경 3분에 뭐라고 그러셨느냐 하면 여기 있는 그대로입니다.
일체 중생 지류에는 약난생 약태생 습생 약화생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내가 다 무여열반에 영입 = 무여 열반에 들여보내서 제도를 하겠다고 해라.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즉 이것이 밝아지는 방법이고 부처가 되는 방법이고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뭐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건강경 17분에는 금강경 3분의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하십니다.
소유 일체 중생지류 해서는 양난생 약태생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비해서
금강경 17분은 멸도 일체 중생 하리라라.
모든 중생 여기 양난생 약태생 이렇게 구체화해서 말씀하시지 않고
일체중생이라고 포괄적으로 뭉퉁그려서 펴놓으셨습니다.
일체 중생을 다 제도 하겠다고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느냐 말 안 듣는 사람을 어떻게 교화시켜서
말 듣게 하느냐 불교를 불신하고 공경심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공경심을 내게 하느냐 이런 것들이 바로 제도한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제도한다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이런 어려운 생각을 한 것은 아마 밝은이 말씀에 의하면
전생부터 닦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전생이 있고요 전생에도 해온 것이 제각각 다릅니다.
전생에도 여전히 활 쏘기만 잘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전생에도 칼 쓰기만 잘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전생에도 총을 잘 쏘는 연습만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달리기만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금생에도 달리기 잘합니다. 활을 잘 쏩니다.
근데 전생에도 마음을 닦든 연습을 했던 사람은 금생에도 마음을 닦아서 태어날 때부터 감정 조절을 잘 해요.
저는 세 살짜리가 말도 하기 전에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는 애를 볼 수가 있었어요.
아마 전생은 분명히 있는 거고 전생을 전생의 연습의 결과가 금세 그대로
수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은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마는
여기 실제로 체험하신 분이 실감나게 저희한테는 자주 얘기를 했기 때문에
전생을 믿고 전생의 결과가 그대로 현생에 나타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전생에 많이 좀 닦든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좀 다릅니다.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기 쉽게 얘기하면
생각대로 현실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에서도 조금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 운명을 만든다라는 것을 금방 짐작합니다.
낙관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은 항상 낙관적인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를 합니다.
비관적인 사고 방식을 갖는 사람은 항상 비관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이것도 어렵지 않게 이 즉 자기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것은
전 세계 다 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체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특히 자기 개발서서라고 하는 책들 소위 지위 있는 사람들이 써놓은 책들은
수많은 사람을 어려움에서 구하고 가난에서 풍요로 만들고
그리고 국가를 빈곤에서 부왕으로 만들었던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아마 그분들은 즉 자기 개발서를 쓴 사람들은
전생에 많이 닦든 사람들이고 소위 우리가 불교에서 얘기했던 보살들의
모습이 중생의 모습을 빌어서 중생을 밝게 해주시기 위해서 그런 책을 쓰셨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똑같이 이런 금강경 3분의 얘기를 말도 안 된다 어렵다.
실천 불가능한 말씀을 서가여래 께서 하셨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그 상당히 전생에 잘 닦지 못했던 사람들의 특성이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상당히 잘 닦았던 사람들 사람들은 이것은 어렵지 않은 해석이다.
여래께서 우리한테 실천 가능한 해석을 해 주셨고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고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리고 모든 빈곤에서도 탈출할 수가 있다.
모든 어려움에서도 다 벗어나서 정말 영원한 부처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가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이 여기에 써 있다라고까지도 얘기를 하십니다.
자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느냐 무슨 생각이든지 부처님께 바쳐라라고
이것을 해석함으로써 이것을 실천하게끔 그렇게 만든 아침 저녁으로 건강경을 읽고 이 생각은 운명을 만든다.
우리 생각에 운명을 만든다는 것은 깨친 이가 아니더라도 지혜에 있는 이들은 금방 이해를 합니다.
그러니까 나쁜 생각이 자꾸 연습이 되면 재앙을 자꾸 불러온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나쁜 생각이 올라올 때 이 생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또 좋은 생각을 자꾸 일으키면 좋은 운명으로 바뀐다는 것을 지혜 있는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나쁜 생각이 일어났을 때 이것을 좋은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좋은 운명을 창조하는 길이기도 하고 수도의 핵심 요체이기도 하다.
이것은 조금 지혜 있는 사람은 금방 알고요. 그리고 여기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무여 열반 저는 이런 체험의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화가 잘 나요. 화가 잘 나는데 화내지 않고 여여부동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어른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물어봅니다.
너는 어떻게 이렇게 화가 날 때 다른 사람은 화가 나서 방방 뛰는데
어떻게 해서 화를 내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한번 물어본다고 칩시다.
우리 도반들끼리도 한가한 시간에 서로 그런 얘기를 의논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개 중에 한 사람은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웬만한 일에 화를 내지 않으셔.
그래서 어떻게 해 화를 안 내세요?
이렇게 여쭈었더니 우리 아버지는 나는 석굴함 부처님의 잠자는
모습을 생각하기만 해도 화가 날 때 금방 화가 안 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도 화가 나고 방방 뛸 때 속구한 불상을 조용히 떠올리기만 해도 나는 마음을 가라앉혔던 체험을 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석굴암 불상을 한 예를 든 거지만
우리 아버지는 화가 났을 때 방방 뜨시지 않고 눈을 고모묘히 감고 있으면서
묵상히 드시다가는 조금 있다가 언제 화가 났었더냐 하듯이 태어나게 하시는 걸 보고
나는 화가 날 때 조용히 묵상에 잠기는 그런 연습을 했다.
이런 체험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개중에는 그런 체험이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화가 날 때 화 좀 한번 내보면 어때 뭐 이렇게 또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화내서 별일 없으면 화내겠죠 화내서 무사합니까? 무사하지 않잖아요.
왜 덤태기 쓰고 아주 안 좋죠. 그런데 이제 이것을 돌파할 파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운명을 존 운명으로 바꾸는 길이 있고 그것이 바로 금강경에 써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실례를 듭니다.
화가 났을 때 화나는 것을 그대로 지속하면 나쁜 운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이것을 좋은 운명으로 바꾸려면 석굴한 부처님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
부처님 화내지 않는 모습이 상상이 떠오르면서 화가 가라앉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처님 의 아주 점자는 고요한 모습 그것은 형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쉽니다.
저는 제 연구실에 석굴한 불상을 한 몇 달 동안 모셔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거 보기만 해도 제 마음이 쉬었기 때문에
근데 한 달 동안 모셔놓으니깐요 그걸 봐도 마음이 하나도 쉬지도 않아요.
쉬지도 않고 아 이제 보기가 싫어지더라구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제 그것이 하나의 그 이미지가 됐고 이미지는 마음을 쉬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요새 식으로 하면 석굴암 불상은 무여 열반이 아니라 유여 열반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러면 그냥 부처님을 향해서는 안 돼요.
형상이 없는 부처님을 향하는 것이 바로
무여 열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마 백 박사님께서는 그런 체험을 많이 하셨을 겁니다.
화가 났을 때 석굴한 부처님을 그리는 그런 연습을 했던 사람의 후생을 보면은 화를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했었어요.
그렇지만 얼굴은 부처님을 그대로 닮아 있어요.
고대로 부처님을 닮아 있지만 화를 뿌리채 뽑지를 못하는 것을 아마
전생의 체험으로서 아마 이해하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추측한데 그런데 석굴한 불상이 아닌 형상이 없는 부처님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을 냈던
사람은 화가 났을 때 즉 우리 식으로 부처님께 바치는 연습을 했을 때
그 사람은 외모가 후생에 부처님을 닮을 리가 없습니다. 부처님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유여열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공경심만 냈기 때문에 그 성품만 그대로 닮아갔을 뿐이지
외모에는 하나의 변화도 없고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렇게 아마 전생의 체험을 통해서 아셨을 걸로 압니다.
그래서 저는 백 박사님이 금강경 을 보고 그대로 이것은
무슨 생각이든지 부처님께 바쳐라를 그대로 해석하시지는 않으셨을 걸로 생각을 합니다.
백 박사님도 처음에는 이 뜻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셨을 것으로 저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깨치는 데 백 박사님도 3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뒤늦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백 박사님이 이미 금강의 하시기 전에 대방광불 화엄경이라는 것을 하시면서
사람의 전생을 훤히 내다볼 정도가 됐었습니다. 어떤 마음 씀씀이가 저런 후생을 만드는가를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무여 열반을 연습을 한 사람은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을
이미 전생의 체험을 통해서 아셨을 거고 유여 열반을 즉 부처를 마음으로 그린 사람은
전히 진심을 해탈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됐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전생의 체험을 통해서 그러면 가장 효과적인 수도 방법은 무엇이냐
올라오는 생각은 되게 안 좋은 생각이 많습니다. 절대로 좋은 생각, 밝은 생각, 선한 생각은 저절로 올라오지 않아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욕망 우리는 몸뚱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한테서 올라오는 생각은 이 몸뚱이를 보호하자는 생각밖에는 안 올라와요.
누가 쳐들어오면 방어한다는 생각 즉 두려운 생각 이 두려운 생각은 몸뚱이 착인데 이런 생각은 자주 떠오릅니다.
이 목숨이라도 내서 남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나지 않습니다.
이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두려운 생각이 나면서 나를 해치게 되면 화가 나는 것이 또 특징입니다.
탐진치 이 화가 나면 나쁜 운명을 계속해서 만든다 근데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운명을 만들고 나쁜 과보를 받는 것을 뻔히 보는데 그중에서
수도한 사람은 나쁜 생각이 났을 때 좋은 생각으로 바꿔서
좋은 운명으로 바꾸는 그런 결과를 보는데 그 아마 사례를 쭉 관찰해 보니까
나쁜 생각이 났을 때 무여열반에
바쳤던 사람이 완전히 나쁜 생각을 뿌리채 없앨 수 있었을 거고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라는
체험을 백 박사님께서는 전생 체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구조를 딱 보시고 아 이것은 바로 밝아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로구나.
이렇게 아셨을 것
그리고 올라오는 생각은 되게 나쁜 생각이니까 이 나쁜 생각을 형상이 없는 부처님이라는 걸로 바꿔야 됩니다.
부처님은 가장 좋은 생각의 대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꾸려면 어떻게 바꿉니까?
바꾸겠다고 하면 벌써 이기적이 바꾸겠다고 하는
이기심이 들어가 있는 한은 역시 나쁜 생각의 연장이고 나쁜 생각은 나쁜 결과를 유합니다.
바꾸겠다. 또 내려놓겠다. 내려놓아라. 이것도 옳은 생각이지만 내려놓겠다라는 것은
역시 아상이 깃든 이런 생각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올라오는
나쁜 생각을 좋은 생각인 부처님 생각으로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 즉 이기심이 담기지 않은 표현이 무엇일까?
이것을 아마 삼년을 연 곳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받쳐라 그럼 이기심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눌러 참는다 참는다. 이기심이 담겨 있습니다.
바꾼다. 인위적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기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고 이기심도 없어지고 완전히 번뇌를 뿌릴 수 없는 효과적인 용어 선택 이것으로서 바쳐라를 택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당
가톨릭에서도 보헌한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받든다는 얘기나 똑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카돌릭에 보헌한다는 말은 깨친니가 만든 말이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보헌 한다는 참 뜻이 없어졌고 이제는 천주님께 매달린다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매달린다는 것은 굉장히 이기적이 되고요.
보헌 한다라는 것은 이기적이 되질 않아요. 올라오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친다.
이게 가장 좋은 수도에 표현 방법이다. 결론을 이렇게 맺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고 부처님께 바치는 연습을 함으로써 부처님의 공경심이 꽉 차는 것을 체험을 했고
그런데 그런 어떤 무여열반 이멸도지라는 표현은
화엄경을 몇십 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화엄경 속에는 이런 부처님께 바쳐라라는
표현 비슷한 것도 아마 나와 있지 않았던 것으로 백 박사님이 얘기를 하십니다.
그래서 화엄경이 마음을 닦는 가장 완벽한 경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부처님이 아니 계시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부처님을 공경하게끔 그러는 그런 어떤 확실한 무엇이 없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화엄경을 해방될 때까지 하시다가
아 이런 식으로 수도를 해서는 사람의 번뇌 망상 특히 탐진체를 완전히 소멸할 수가 없고
소멸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완전히 번뇌를 뿌리뽑을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제 주말 최가 오리엔테이션 때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고
그 말씀을 드렸을 때 상당히 놀라신 그런 부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뭐냐 하면 금강산 대중들 가운데는 우리가 이제 부처님의 10대 제자 부처님의 아들인 나후라 가 포함이 됩니다.
나후라 는 아라한도를 얻은 분으로 표현이 되고 아라한도를 얻었으면 이미 모든 본네는 다 소멸됐다고 했고 생사에서 자제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이렇게 유해에서 벗어나는 걸로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래 수도법이라고 하는 것 중에는 받친다는 수도법은 아마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 종래 옛날 사람들은 탐진치가 올라왔을 때 어떻게 되느냐
화가 불거이 올라왔을 때 어떻게 했느냐 화가 불 거쳐 올라왔을 때 눌러 참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수도 할때출가 수도승들이 가장 참기 힘든 욕망 중에 하나가
음란한 생각이 올라올 때는 어떻게 하느냐 눌러 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른다는 생각이 올라왔을 때 모른다는 생각은 번네 망상이라고 치지도 않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를 뿐이다라고 우선 지켜놓습니다.
자 그래서 옛날에는 탐진치가 아주 불같이 올라올 때는
눌러 참는 것이 유일한 수도 방법이었는데 눌러 참으면 화도 안 나는 것 같고
음란한 생각이 안 나와도 겉으로는 점자는 것처럼 이렇게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백 박사님은 면밀하게 쭉 검토를 하셨던 것 같아요.
결국은 음란한 생각을 일시적으로 눌러 참았지만은
그 참는 그 견디는 힘에 한계가 다 달아있을 때는 반드시 폭발하게끔 돼 있다는
그 번네가 뿌리채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음란한 생각이 올라올 때는
그 음란한 생각이 올라올 때까지 계속 받쳐야 된다는 거예요.
형상이 없는 부처님께 자꾸 바쳐야 된다는것
바치지 않으면 부처님의 마음이 금강경을 계속 독송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 독송해서 잘 되는 분은 한 번만 독송해도 돼요.
근데 우리는 칠독을 하는 이유는 칠독을 하면 그래도 부처님 마음을 닮아갑니다.
왜냐하면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부처님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처음에는 잘 못 느꼈는데
실무유법,
실무중생 등멸도자,
무주상보시,
범소유상 개시험망 약전 제상의 비상이면 즉견여래
이게 다 부처님의 마음임을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을 때 저는 시원해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청량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경건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래서 금강령 읽어라 재앙이 소멸되느니라 이런 말씀을 하셨고 부처님 닮아가느니라 이런 얘기를 하셨던 것
그럼 낮에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올라오는 여러 생각을 꼭 눌러 참지 마라
눌러 참는 것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소멸일 뿐이다
그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부처님께 자꾸 바쳐라 이렇게 얘기하셨던 겁니다.
그것도 형상이 없는 부처님께 바쳐라 잘 안 바쳐지면 거기다 대고
미륵전 여래불을 해라 이제 이런 주문을 내셨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해보면 확실히 좀 번뇌가 줄어듭니다. 저는 실제로 체험합니다.
저는 몇십 년 동안 금강경 잃고 올라온 생각을 바쳤던 결과 이제 웬만한 일에는 성내지 않습니다.
또 그리고 젊었을 때는 이성이 그립고 그리운 생각이 불타오르고 불타오를
때는 그리도 그리울 수가 없고 그런 소설을 읽고 그런 친구들하고 대화를 하고
그런 문학 활동을 하고 끊임없이 궁리를 발산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자꾸 바치고 바치고 그러는데
처음에는 안 바치고 또 안 바쳐지고 이러다가 자꾸 하니까
점점점점 줄어들어서 이제는 좀 싱거워질 때도 많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근데 뭐 그렇게 순조롭게 되지는 않았죠. 깨지고 자 빠지고 골탕도 먹고 재앙도 당하다가
결국은 이제 결국 깨치기도 했던 겁니다. 근데 확실히 없어진 때가 있다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게 이게 금강경이 괜찮은 거예요. 그리고 아무 부작용이 없어요.
이게 이거 한번 해볼 만한 건데 그 핵심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올라오는 모든 생각 중에서 양난생 약태생이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것이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얘기했지만 지혜에 있는 사람은
우리 생각이 운명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운명만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도 만듭니다.
현실도 만드는 게 아니라 산하대지도 만듭 우리가 나쁜 생각을 하면
배은망덕을 하면 밝은이는 봅니다 후생의 새가 되는 것을 봅니다
진심을 많이 하면 후생이 개가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 생각이 바로 현실을 만들고 이런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그 생각을 바치면 진심을 바치면은
개의업보에서 탈출할 수도 있고
새의 배은 망덕하는 새의 업보에서도 탈출할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것이 재앙을 소멸하는 길이다. 이 얘기는 굉장히 실감나는 얘기로 들립니다.
그러니까 올라오는 모든 생각은 나쁜 생각이다.
이렇게 표현해도 됩니다. 또는 재앙의 근원이다 이렇게 표현해도 됩니다.
이것을 눌러 참거나 가지지 마라. 올라오는 생각을 자꾸 바쳐라.
그런데 저는 안 바쳐졌어요. 굉장히 안 바쳐졌어요.
전생의 궁리를 즐기고 즐기고 소설을 쓰고 또 쓰고 아마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요새 이게 소위 작가들이라는 사람들이요 공상가들입니다.
공상가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데 이제 개중에는 불교 소설을 쓴 사람들은 좀 놔둬요.
일반 뭐 연애 소설 이런 쓴 사람들은 완전히 공상으로 꽉 차 있는 것을 많이 이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생에 복을 진 사람은 그걸로 인해서 돈도 벌고 작가도 되고 이름도 날리고 이러지만
그것이 밝아지는 길하고는 전혀 틀리다는 것을 저는 실감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굉장히 전생에 소설 많이 쓰고 상상을 많이 하고 상상하는 게 굉장히 재밌었던 것 같아요.
상상이 어쩌다 맞으면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거
그러면서 저의 운명은 점점 더 비관적이고 아주 안 좋은 쪽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금생에 다행히 도인을 만나서 이 궁리가 자꾸 뻗어나가요.
궁리가 뻗어나가는 생각을 통제할 길이 없을 정도로 저는 굉장히 정신병에 걸렸던 때가 있었어.
완전히 사회생활하기 어려웠었죠.
그리고 아주 궁리를 잘하면 그것은 어느 때는 똑똑하다는 소리까지도 들었기 때문에
그 궁리를 잘하는 사람이 천재다 라는 이런 착각까지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그걸 멈추니까요. 그렇게 청량하고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번뇌 망상에서 벗어난 세계가 이렇게 위대하고 좋다는 것을 느끼면서 저는 이 구절을 굉장히 실감을 많이 느낍니다.
자 그래서 올라오는 모든 중생이라는 것은 생각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재앙으로 연결됩니다. 재앙 안 좋잖아요. 상상할 땐 재밌죠.
근데 재앙이 일어나면 비참합니다.
근데 그것을 자꾸 바치면은 이게 상상하는 습관이 자자꾸 줄어들다가
나중에 상상이 그렇게 재미있던 상상이 재미가 없어져요.
상상을 안 하게 그러면서 상상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질 때를 저는 체험을 했습니다.
날아갈 것이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리고 번뇌가 완전히 없어져서 무여열반 이멸도지를 실감하게 됐습니다.
그 뒤에 한 구절만 더 합니다. 여시 멸도 무량 무수 무변중생 하되 실무 중생이 등멸도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미우면요 지금도 가끔 정치 얘기를 들어보면
옛날에 학생 때 뭐 해 뭐든 그때 생각이 나서 화도 나고 이런 사람지구촌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자꾸 바치다 보면 지금은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번 하면 그 전에 꼬리를 물고 그냥 멈추지 못하고
동료들 찾아서 같이 얘기를 하고 패거리 짓고 뭐 뭐 데모도 하고 작당도 하고 뭐 이렇게도 가겠죠.
이제 그 정도 안 합니다. 이제 그런 거 자꾸 비분 감지하는 사람 보면 좀 싱겁고 피해지고 저러다가 재앙의 근원이겠구나 이렇게 알게 되는데 그때는 꼭 그게 있는 것 같아요.
화날 것이 있고 분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고
분노하지 않으면 바보같 열을 내야 되는 거 같아요. 열을 내야 될 대상이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근데 그게 있다라는 생각 이것이 점점 착각으로 알게 됩니다.
이게 금강경 공부에 전 최대의 보람으로 생각하고
착각을 알게 되니까 아 그럼 세상이 허무해서 어떻게 되느냐
그 허무하게 알게 되니까 제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굉장히 자유로워지는그래서 이제는 자유로워지면서 뭐를 느끼느냐 하면
여시 멸도 무향 무수 무변중생하되
그걸 갖다가 진짜 화가 나고 이런 것을 또 그립고 이런 것들을 자꾸 바치고 또 바쳤어요.
근데 그리운 게 점점 즐어지다가
아 그리워했던 것은 허상이었구나 내 허상을 붙들고 그리워했구나
허상을 붙들고 비은 강계했구나 허상을 가지고 애달퍼했구나 이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받치려고 했고 극복하려고 했고 지으려고 했던 것이 알고 봤더니
팩트요 실상이 아니라 다 허상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것이 하나 둘 알아채게 되면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좀 눈에 트입니다.
그러면서 철이 나는데 그 세상으로 보면 어른스러워졌다.
그리고 지혜로워졌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인이 되었다라고 하는데
이 저는 과학도였지 않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가 옳다는 생각을 딱 하나 가지면막 우겼던 적이 있어요.
핏대를 내가면서 동료들을 우기다가 이제 동료들을 시원치 않으면 이제 선생님한테 따지러 갑니다.
선생님들 마음에 안 들면 선생님 하고도 우겨요.
내가 선생님보다 훨씬 더 잘났어요. 아 이랬던 어리석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면 이제 선생님이 교과서를 대면은 교과서도 틀렸어요.
이렇게 된 겁니다. 이 한 생각이 딱 박히면요 내 눈에 보이는 게 없이 되는 겁니다.
근데 자꾸 바치다 보니까 아 내가 우겼던 게 점점 착각이 오구나.
내가 얼마나 허상에 살았는가를 알게 되면서
사람으로 치면 지혜가 나고 철이 나듯이
과학으로 치면 아아 그전에 이게 내 주장을 세웠기 때문에 몰랐는데 이제 내 주장을 세우자 하니까 알아져요.
저 지금 제가 옛날로 다시 돌아가서 과학도가 되면 훨씬 더아주 위대한 괜찮은 과학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대신 이 공부를 해야 됩니다. 안 하면 물론 안 됩니다.
아니 그 정도로 핏대를 올려가면서 내 주장을 세웠던 내 과거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느끼게 됩니다.
그건 느끼지 않으면 이 공부는 보람 없어요.
계속 잘난 척만 하고 있으면 이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어져.
이제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여시멸도 무량무변중생같다.
자꾸 바쳤는데 그것이 팩트요 실상이요 엄연한 현실이요
당연히 주장해야 할 진리라고 믿었지만 진리도 아니고 실무중생의 그런 우길 가치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느껴집니다.
여기도 어떤 정치 이념에 사로잡히고
종교 이념에 사로잡히고 어떤 과학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자기 주장을 올바른 주장을 갖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면 서가야레 같은 분이 보시면 참 한심하다.
니 목숨이 그런 데다 생사를 걸 정도로 한심하냐 바로 거기서 벗어나라.
너 자신을 알아라. 아마 이러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제 그렇게 되니까 옛날 소크라테스의 말도 다 진짜로 들리고요.
그리고 금강경 말씀은 점점 더 갈수록 실감이 납니다.
제가 오늘 꼭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왜 백 박사님께서 무슨 생각이든지 바쳐라 하는 이 참 뜻의 말씀을 꼭 전달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이것을 딱 보고 깨쳐서 하신 게 아니라 전생 체험을 통해서 이기심이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다 재앙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고 이기심이 안 들어가는 표현
부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것을 칠독으로 하는 게 좋다라는 것은
백 선생님의 체험에 의해서 나온 거고 체험에 의해서 나오신 뒤에는 원을 세우셨나 봐요.
칠독을 하는 사람은 내가 구제를 해 주겠다.
그래서 이게 이제 제가 얘기했지만
황선덕 박사 때부터 칠독은 어떻게 보면문수보살의 서원이라는 표현으로 해서 법을 세우셨어요.
그런데 칠독이라는 법이 없었으면 우리는 지 멋대로 일독도 좋고 지 멋대로가 될 겁니다.
그런데 도인이 독을 정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대로 칠독입니다.
억지로 또 칠독은 좋지가 않아요. 인위적인 것 붙은 것은 다 옳지가 않습니다.
칠독으로 원을 세워서 저절로 칠독이 되게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주경야선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낮에는 또 일해야 됩니다.
사회 활동을 해야 됩니다. 국가 사회의 은혜를 보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 불교 중흥의 발전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발전시키고 국가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건강한 사회인이 돼야 되는데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조용히 도만 닦는 것은 아마 부처님의 참 뜻하고는 거리가 멀고요.
참 뜻은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서
금강경 해설도 밝아지고 행복해지는 길로 해석하기보다는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길로 해석을 한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 금강경 3분의 내용
- 금강경 3분의 내용은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아우 따라 삼약삼보리를 얻겠습니까? 어떻게 수도해야만이 안우따라 삼약삼보리를 얻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이 됨
-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 치료에는 약난생 약태생 습생 약화생이 있다고 답변하심
- 금강경 17번은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겠다고 해라라고 말씀하심
- 자기 개발서를 쓴 사람들은 전생에 많이 닦았던 사람들이고
- 보살들이 중생의 모습을 빌어서 중생을 밝게 해주시기 위해서 그런 책을 쓰셨다고 생각함
-
- 서가 여래의 수도법
- 서가 여래께서 우리한테 실천 가능한 해석을 해 주셨고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고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음
- 모든 빈곤에서도 탈출할 수가 있음
- 모든 어려움에서도 다 벗어나서 영원한 부처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 같음
- 구체적인 방법이 여기에 써 있다고 함
- 나쁜 생각이 연습이 되면 재앙을 불러온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됨
- 나쁜 생각이 일어났을 때 좋은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좋은 운명을 창조하는 길이기도 하고 수도의 핵심 요체이기도 함
-
- 석굴암 불상
- 화가 났을 때 화나는 것을 그대로 지속하면 나쁜 운명으로 이어짐
- 좋은 운명으로 바꾸려면 석굴암암 부처님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 부처님 화내지 않는 모습이 상상이 떠오르면서 화가 가라앉는 것으로 볼 수가 있음
- 석굴암 불상은 유여 열반이라는 것을 알게 됨
-
- 부처님을 향한 공경심
- 부처님을 향해서는 안 되고 형상이 없는 부처님을 향하는 것이 무여 열반이라는 것을 알게 됨
- 화가 났을 때 석굴암부처님을 그리는 연습을 했던 사람의 후생을 보면 화를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했음
- 부처님을 공경심을 냈던 사람은 외모가 후생에 부처님을 닮을 리가 없음
- 올라오는 나쁜 생각 좋은 생각 을 부처님 생각으로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은 이기심이 담기지 않은 표현임
- 부처님께 바치는 연습을 함으로써 부처님의 공경심이 꽉 차는 것을 체험함
- 해방될 때까지 하시다가 사람의 번뇌 망상 특히 탐진체를 완전히 소멸할 수가 없고 소멸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완전히 번뇌를 뿌리뽑을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됨
-
- 금강경의 독송
- 옛날 사람들은 탐진치가 올라왔을 때 눌러 참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 같음
- 음란한 생각이 올라올 때는 형상이 없는 부처님께 자꾸 바쳐야 됨
- 부처님의 마음이 금강경을 계속 독송해야 됨
-
- 금강경의 의미
- 금강경을 읽고 번뇌가 줄어듦
- 올라오는 모든 생각은 나쁜 생각임
- 올라오는 생각을 자꾸 바치면 재앙을 소멸하는 길임
-
- 금생의 도인
- 금생이 다행히 도인을 만나서 궁리가 자꾸 자라났지만 바쳐라
- 번뇌 망상에서 벗어난 세계가 위대하고 좋다는 것을 느끼면서
- 올라오는 모든 중생이라는 것은 생각임
-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재앙으로 연결됨
- 자꾸 바치면 상상하는 습관이 줄어듦
- 상상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질 때를 체험함
-
- 칠독의 의미
- 백 박사님께서 무슨 생각이든지 바쳐라 하는 참 뜻의 말씀을 꼭 전달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이것을 보고 깨쳐서 하신 게 아니라 전생 체험을 통해서 이기심이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다 재앙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고 이기심이 안 들어가는 표현으로서 수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표현이 무언가를 오랫동안 고심하셨던 결과임
- 칠독을 하는 사람은 내가 구제를 해 주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음
- 칠독이라는 법이 없었으면 우리는 지 멋대로 일독도 좋고 지 멋대로가 될 것임
- 칠독은 억지로 하는 것은 좋지가 않고 인위적인 것 붙은 것은 다 옳지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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