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금강경 [해석]

지경공덕분 제15 (2부) [김원수 법사님][새벽법회]

금강 반야 바라밀 2023. 4. 30. 11:02

지경공덕분 제15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시느라고 대단히 수고들 많으십니다.

잠이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 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지난 새벽에도 금강경 15분의 첫 번째 시간을 말씀 드렸습니다만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이 됩니다.

제가 BTN에서 늘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금강경해설’이라고 그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많은 불자들은 금강경 공부든 또 불교공부든 사회생활 과 직접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즉 뛰어난 깨달음을 가진 사람, 제가 종종 법문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서산대사나 성철스님 같은 사람은 뛰어난 영적지도자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사회생활에 뛰어나다고 할 수 는 없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백선생님 경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종종 ‘百戰英雄이 知佛法이다.’세상의 모든 것을 달통한 사람이야말로 불법 을 더 안다는 말씀을 종종 하시면서

뛰어난 즉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사회생활도 잘 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강조하셨던 것 같습니다.

즉 깨달음의 세계와 사회생활은 다르다고 해석을 하기 때문에

많은 금강경 해설서들은 수행을 잘 해도 사회생활과는 무관하다.

이런 식의 해석을 하니까 그게 실질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거의 佛經이 아무런 기여나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 아요. 무소유의 삶이 좋다.

부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는 몰라도 세상에서는 가난하게 사니 어떻게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세상의 좋은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교를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백선생님의 가르침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불법을 적극적으로 잘 실천 행동하는 사람이 야말로 세상에서도 영웅호걸이 된다.”

이렇게 얘기하시고 가장 그것을 적극적으로 하신 표현이 무엇이냐 하면

“견성성불이라 고 하는 것은 가장 완전한 사회인이 되는 길이다.”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선생님의 특징이고, 이런 특징을 살려 야만 불교가 살 수 있다.

많은 사회인들이 불교를 좋아하게 된다. 이런 말씀을 여기서 드립니다.

오늘 15분도 특히 15분의 전반부는 금강경 독송의 공덕이 굉장히 크다고 하면서

영적세계에 가는 어떠한 수행법보다 금강경 수행법으로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가 되었다면 오늘 금강경 15분의 2번째는 금강경 가르침의 사회성도 매우 뛰어 나다.

이 공부를 한다면 어떤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 사회의 어떤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금강경식의 공부대학은 뛰어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그런 대학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저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식으로 오늘은 15분을 해설 해 드리고자 합니다.

금강경 15분에는 3가지의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하나는 약락소법자라는 말이 등장을 하고요.

소승자, 대승자라는 말이 등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약락소법자는 이 경을 수지독 송해서 다른 사람한테 설할 수가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 경은 대승자나 최상승자를 위해서 설하는 것이다. 이 렇게 해석이 됩니다.

그럼 저같이 이렇게 자주 금강경을 강의하는 사람, 그리고 이번에 특히

bbs와 같이 저하고 친하지도 않은데서 아주 저를 과찬 을 했어요.

금강경의 대가라고 불러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금강경의 대가라는 호칭이 되면 당연히 대승자요. 최상승자로 생 각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겉으로 나타나는 금강경의 대가와 실지로 대승자와 최상승자는 상당히 다르다.

요런 말씀을 드립니 다. 즉 대승자 최상승자 약락소법자 3가지가 있는데 저는

그 중간에 소승자를 하나 추가해서 말씀드립니다. 그 마음씀씀이

아상의 소멸정도를 가지고 아상이 가장 많은 사람을 저는 약락소법자라고 이름을 짓고

그 다음에 소승, 대승, 최상승으로 갈수록 아상 이 아주 적고 아상이 거의 없거나

이렇게 된 이를 대승자나 최상승자로 금강경을 수지독송할 수 있는 사람은 금강경에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대승자나 소승자로 구분했던 것 같습니다.

즉 불교에서 사람의 부류는

약락소법자,

소승자,

대승자,

최상승자 넷으로 구분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보통 사회 에서는 어떤가? 특히 서양에서는 어떤가?

그건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의학계에서는 사람을 혈액형으로 대개 분류를 하는 것 같고 혈액형과 그 성격은 상당히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들은 무슨 형하고 무슨 형하고는 궁합이 맞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고 무슨 형은 지도자형이고, 무슨 형은 전문가 형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마 자세히는 모르지만 혈액형을 갖고 구분하는 것이

소위 서양 사람들 대부분의 현대 사람들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런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과 관련이 있나 싶어서,

그리고 운명과 관련이 있는가 싶어서 우리 선생님께 한번 여쭈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선생님께서는 거기에 동의하시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사람을 4부류로 분류를 하는데 그것 은 A형, B형, AB형, O형 이런 식의 분류가 아니라

소음인, 소양인, 태음인, 태양인 이런 식으로 분류를 하시더라고요.

우리 백선생님께서는 특히 한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시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병이 있다고 생각이 되시면 스스로 화제를 내 어서 약방에 가서 처방을 받아갖고서는 스스로 복용하시는 이런 지혜가 있으신 것 같아요. 한

의사 자격증을 따신 것 같지는 않 습니다. 의료행위를 하신 것을 보신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의학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예가 깊으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분은 사람을

소음인, 소양인, 태음인, 태양인으로 분류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품도 거기에 따라서 용심도 그렇게 변하 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 주요계식 유교계의 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불교에서는 약락소법자, 소승자, 대승자, 최상승자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15분에 그것을 분명히 표현해 놓 았습니다. 사회적으로 하는 게 좋아요.

그럼 위와 같이 약락소법자.......등등 이렇게 하면 좀 추상적 아니에요. 그럼 어떤 사람이

우리 A형이 어떤 사람이에요? A형 하면 몰라요. 그걸 설명을 해 놓아야 알듯이 약락소법자도 설명을 해 놓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약락소법자)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보다도 현실적인 형이하학적인 일을 굉장히 중요시 하는 사람입니다.

요새말로는 법보다 주먹의 힘을 더 믿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양심적으로 들여다보세요.

나는 누가 보면 사실은 합리적인 것 같 아도 나는 사실은 안 그래,

나는 상당히 감정적이고 법보다 주먹이 더 나아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

이 런 사람은 아마 약락소법자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말해서 소승인, 대승인, 최상승인은 선지식을 잘 만나기만 하면 금생에 밝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 씀드립니다. 소승인부터는 공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약락소법자는 금생에 좀 힘든 사람이라고 선지식은 얘기 하시지 않나 싶습니다. 법

당에는 소승, 대승, 최상승인만 꼭 몰려들지 않아요. 사람들이 다 몰려든대요.

석가여래 밑에도 소승 인도 있고, 대승인도 있고, 약락소법자도 있고 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들은 전생에 선지식 만나 밝아지리라고 원을 세웠던 사람입니다. 원을 세우니까 석가여래 같은 분도 만나고, 도인도 만나고 수도를 해요. 그런데 어떤 마음으로 오느냐가 틀립니다. 오는 마음 부터가 틀립니다.

약락소법자는 뭘 훔치러 오거나 불로소득의 특징 대명사, 백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어떤 비구니가 왔는데 저는 도통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열심히 해도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하 면 도통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질문을 하더래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어느 생엔가 제가 비구니가 됐었고

제가 열심히 도통을 하려고 그랬고 그리고 아마 그 도통을 하는 방법을 물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비구니를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야! 이 도둑 년이라고 야단을 치셨대요.

백선생님은 육두문자를 써서 무안을 잘 주십니다.

제가 태전선사가 한퇴지한테 육두문자를 썼다는 얘기를 했는데 육두문자를 써야 정신이 나고

졸음에서 깨지 부드럽게 하면 자장가처럼 졸음이 와요.

육두문자는 아상을 녹이는데 매우 필요하기 때문에 도인들이 육두문자를 쓴다고

도인들이 왜 육두문 자를 써 상스럽게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아상을 깨우쳐주는 그런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도둑년이라고 했대요.

그래서 저는 의문을 가졌어요. 왜 열심히 공부하고 도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한테 도둑년이라고 야단을 치셨을까?

그런데 그게 도통이라는 것은 본래 밝은 이가 보면 우리는 도통이 되어 있어요.

도통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거저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고 보십니다.

바치기만 하면 돼요. 다 되게끔 되어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따먹으려고 그래요.

우리도 소원성취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아들 대학입시를 위해서 정한수 떠놓고 열심히 비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아들 좋은 대학입시 또는 취직자리를 위해서 빌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안 된다는 생각만 바치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본래 구족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이치를 모르고 그냥 가서 확 낚아채면 된다. 이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도둑의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이게(도둑의 마음) 약락소법자의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은 선지식을 만나도 처음에는 체루비읍을 하고 난리를 치다가 조금 있으면 그리고 소원성취도 어쩌다가 돼요. 그러 다가 인제 그 사람은 일확천금을 바라고 불로소득을 바라고 한꺼번에 뚝 따먹으려고 하는 도둑의 마음 아닌가요.

그게 가만히 보니까 아닌 걸로 생각을 하고 어떤 비구니를 도둑년으로 야단을 치시길래 그게 남의 일인 줄 알았어요.

가만히 보니까 제가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제 속에도 도둑의 마음이 있고 훔치러 왔고 거저 얼른 도통을 싹 배워서 지겨운 젖 짜는 데를 다 떠나고 어서 밖에 나가서 넥타이 딱 매고 사회생활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제 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건 확실합니다. 누구한테나 이런 거지, 도둑의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선지식을 만나도 곧 싫증을 내고, 퇴타심을 내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있어도 속으로는 다른 목적으로 와요. 여기 법당에도 진짜 공경심을 배우러 오신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배우는 것 싫다. 당장 내 발등에 불부터 끄자, 이게 도둑의 마음, 거지의 마음입니다.

그 다음에 나는 소원성취보다도 여기에 예쁜 사람이 있으니까 여기 사귀러오자 만만한 사람이 있으니까

내 세력을 키우러 오 자 이런 사람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대개 약락소법자에 속하게 되고, 그리고 자기 목적인 소원성취가 화끈하게 이루어지면 목적 다 했다. 이제 떠나게 됩니다.

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 하면 그것이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그리고 타력을 거의 믿지 않습니다.

절대자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다 내 노력으로 된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지 어떤 절대세계 에 있다는 것을 안 믿는 것 같아요.

잘 보세요.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죠.

기독교식 으로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믿어요.

열심히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연보도 내고 십일조 도 하고 장로도 얻고 하지만 장로라고 해서 다 천당 가느냐?

천만에 아니거든요. 승려라고 해서 다 천당 가느냐? 아닙니다.

그 사람은 사회가 돼도 전문가도 되고, 지도자도 돼요. 왜냐 복 지은 게 있으니까 그런데 속의 마음까지도 지혜롭거나 통솔력 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전문가나 영원한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他力을 잘 안 믿 어요. 기적적인 소원성취 같은 것도 소원성취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되던데 어쩌다 믿고요.

그리고 자기 노력과 힘으로 밀어붙 여서 산다. 이런 상당히 물질만능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제 궁리가 아니라 저는 이런 생각을 안 가졌는데 오랫동안 도인을 모시다 보니까 내 속에 도둑, 거지의 마음이 너무나 많구나.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많구나. 불로소득이 너무나 많구나.

한꺼번에 화끈하게 딱 뭐해야 얼마나 재미있고 좋아요. slow and steady 영어 공부할 때 제일 앞에 딱 그런 걸 써놓았어요.

slow and steady보다 확 한꺼번에 끝내준다.

얼마 나 통쾌하고 좋아요. 이게 알고 봤더니 도둑의 마음이 있더라고요.

불로소득의 마음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도통 그럴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원래 구족되어 있어요.

거저 안하지만 않고 되는 게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이 소승인은 소위 소승인이라고 그래서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승인 보다는 못하지만 굉장히 사회 적으로 보면 모범적이고 진실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전문성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소위 그 앞에는 명자가 붙습니다.

의사가 되더라도 ‘명의’, ‘명인’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소승인입니다.

상당히 진실한 수도자입니다. 양심적인 사람, 사리를 아는 사람, 이런 사람도 법당에 와요.

공경심은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는 왜 나오느냐 하면 아! 여기에 상당히 실익이 있어, 나한테 도움이 돼, 그것도 일종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그이한테 굽히고 복종을 하 는 것 하고는 조금 틀린 것 같아요.

실익을 취하려 옵니다. 그리고 법당에 오고 선지식을 만나면 저 사람은 대단히 지혜로운 사 람이고,

저이를 계속 따라 다녀야 되겠다. 야단을 맞아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다가

그게 변하지 않고 결국 깨달음에 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에 이것을 소승인의 ‘소’자를 썼다고

그래서 속이 좁다는 그런 뜻은 결코 아니에요. 남방불교를 우리가 소승불교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는 소리지 그 사람들은 상당히 점잖고 모범적이고, 아라한이라 는 것은 성자거든요.

그런데 대승인 하고 비교를 해 보세요. 그리고 이 소승인들은 상당히 전문가가 되고 지도자도 됩니다.

이 앞에 ‘명’자가 붙을 수도 있습니다. ‘명전문가 명지도자.

‘ 한국의 춘향 같은 사람, 심청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은 소승인에 속한다 고 봐야 합니다.

그게 어떻게 대승인이 못되고, 최상승인이 못 되느냐? 이런 의문을 가지실 겁니다.

그럼 대승인은 어떤 이냐? 하면 양심적인 사람보다도 좀 지혜로운 사람에 속합니다.

소승인은 아직은 지혜롭지 못하고 사랑과 미움이 있어요.

대승인은 사랑 과 미움에 굉장히 담백합니다. 춘향이, 심청이 어때요? 굉장히 진실한 사람이죠?

그런 사람은 저는 소승에 속한다고 봅니다. 사랑에 목숨을 바치고 기독교, 카톨릭에서 하는 순교자들,

대개 소승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대승인은 상당히 지혜로워요.

진리라고 해서 목숨을 걸고 이러지 않습니다. 진리는 내가 만든 것이다.

나한테 맞으면 진리다. 이렇게 하면서 상당히 융통성 있게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게 진리지 진리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이건 상당히 지 혜로운 판단입니다.

이게 대승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승인은 선지식이 있으면 따져 봐요.

누구보다 누가 훌륭하니까 상대적으로 이이를 받들자가 아니고 조건이 없는 마 음을 냅니다.

무조건 고개부터 숙이는 기질이 있는데 전생부터 많이 닦지 않으면 여기 법당에도 이걸 따져 봐요.

어느 법당보 다도 이 법당이 낫다. 이래서 오신 분이 있죠? 그래서 오시는 것은 나쁘지 않아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약락소법자보다는 썩 낫 습니다. 그런데 따져서 하는 것보다도 무조건 좀 굽혀보면 어떨까요?

무주상보시하고의 차이가 있습니다. 따져서 계산해서 이 사람은 잘하면 이 다음에 나한테 은혜를 갚을 것 같으니까 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대개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특히 우리가 제가 저번 에 얘기했던 역관 홍순원 같은 이는 무조건 주고 보는 거예요.

계산해서 줬습니까? 무조건 주고 봤습니까? 대승인은 지혜로운 이가 있으면 계산을 해 보니까 이 사람은 실익이 있다. 이래서 하면 약락소법자는 아니더라도 아직 조건 없이 하는 것은 아닙 니다. 그런데 전생에 닦던 지혜가 있으면 도인이다.

딱 굽히고 옵니다. 그리고 대개 받들 마음을 내고 배울 마음을 냅니다. 계산하는 것하고 조금 틀려요.

계산하는 게 더 약은 것 같아도 밝은이가 보면 그게 더 어리석다고 그래요.

조건 없이 해야 됩니다. 그렇 기 때문에 진짜 신심이 되고, 진짜 공경심이 됩니다.

그리고 대승인은 선지식과 만날 때 열심히 따라서 나한테 실익을 취하자가 아니라 따르고 자시고 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 시봉 만 하는 겁니다. 시봉을 하면 축복은 저절로 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정도 되면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어느 정도 반은 깨닫 고 들어간 사람입니다.

소승인은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했지만 열심히 따라다니면 부처가 된다는 스타일인데

이 소승인과 대승인의 차이 를 구분하셔야 됩니다. 저는 이것을 구분을 못했었어요. 소승인이 더 훌륭한 것 같았었어요.

저는 도산 안창호선생을 한때 학생 때 굉장히 존경했습니다.

지금 알고 봤더니 도산 안창호는 소승인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감히 그런 훌륭한 선생을 평가하는 것은 죄송한데 오랫동안 밝은이를 모시고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학생 때 이승만 대 단히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승만은 상당히 지혜로운 사람이고, 둘 다 기독교 신자입니다.

이승만은 좀 더 하나 님에 대해서 분별심이 좀 더 적은 것 같아요.

다른 종교하고 구분을 잘 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이의 글을 내가 여러 번 읽어 버 릇했는데 유교의 하늘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일시합니다. 더 낫다고 보질 않습니다. 이는 상당히 지혜롭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소승인은 他力을 조금 믿어요. 절대의 힘이 있다. 이 세상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된다.

대승인은 타력을 수시로 체험합니다. ‘나’라는 아상의 힘은 없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최상승이 되면 지혜로운 사람보다도 밝은 사람이 되고, 적극적인 시봉이 됩니다.

주인이 적극적으로 시봉을 해요. 주인이 폼 잡고 나는 지배자다 이런 생각을 하면 주인의식이 아닙니다.

종업원도 받들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마음, 적극적인 시봉을 하고,

대승인으 로부터 소승인 약락소법자로 갈수록 부처님과 함께 사는 삶을 망치는 타력이다.

내 의지대로 자유의지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 다. 최상승자는 오로지 부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분별을 안 해요.

거저 바치기만 하면 다 됩니다. 제가 조선시대 어떤 예를 들면서 그이는 과거에 급제를 하지 않았어요.

급제를 하지 않아도 벼슬을 하는 별정직이라는 게 조선 시대 때 있었대요.

그이는 일생동안 “네? 네”하는 두 마디만 하고 살았다고 그래요. “네? 네” 말이 필요없었다고 그래요.

그리고 다 원 세우는 대로 되니까 그런데 저는 최상승자와 대승자의 경지를 전혀 몰랐어요.

왜냐하면 저는 소승자 내지는 약락소법자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그 런데 다행히 도인을 만났고 그런 걸 보면 약락소법자는 아니었던 것 같고, 소승인 쪽이 맞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데 아마 잘 보니까 전생의 어느 때는 대승자도 됐었던 것 같아요. 전생에 닦던 기운도 나오거든요.

그래갖고서 저는 이제는 좀 변한 것 같아요. 소승인에서 대승인으로 많이 가까워지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승인이 되면 완전히 내 인위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노자도 무위이화無爲而化 내가 설치지 않고서도 저절로 다 된다는 것, 저는 이제 설치지 않습니다.

설쳐봐야 자기만 피로하고 깨지더라고요 그리고 설치지 마세요.

우리는 대승인과 최상승인의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바치기만 하면 다 된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바치고 오로지 맡기고 옆에서 도반을 호랑이가 물어가더라도 나는 오로지 흔들리지 않고 부처님을 향한다. 이런 자세면 다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면

약락소법자는 겉으로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실력이 없는 전문가, 겉으로는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실력이 없는 지도자,

소승인은 실력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실력 있는 지도자다.

대승인은 아주 탁월한 불세출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최상승인은 전문가 수준이 아닙니다. 구원자가 될 수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문가와 구원자는 질적으로 틀립니다. 그 다음에 참고적으로 바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꾸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특히 상담실에 계시는 분들은 그것에 대한 대답을 잘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바치는 것은 소원 성취하는 길이 아니라 마음 닦는 길이고, 소원 성취하는 길은 또 발원문을 따로 써줘야 된다.

이렇게 또 주장하는 논리가 있는데 그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느 듯 바치는 것은 수도의 길이고, 소원 성취하려면 발원문을 써서 외워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 데 아닙니다. 바치는 것이 소원성취의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리고 발원문 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그래서 바친다는 것이 왜 그러냐 하면 중생의 마음 우리의 마음이죠? 분별심을 부처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해요.

내 생각을 부처님께 바칩니다. 하잖아요?

바치는 순간 내 마음 있는 자리에 내 분별심이 있는 자리에 불심이 도달하게 되는 겁니다.

바꾸는 것이 바치는 겁니다. 그럼 금강경 독송도 바치는 겁니다.

왜냐하면 금강경은 부처님의 가장 밝으실 때 설하신 경, 즉 부처님 마음을 의미합니다.

금강경을 읽는 동안 우리는 부처님의 마음이 됩니다.

우리의 탐.진.치가 부처님 마음으로 교환이 되는 겁니다. 바꿔지는 겁니다.

그래서 금강경 독송이나 바치는 것은 동일합니다.

미륵존여래불은 뭐냐 하면 석가여래 마음 가신 곳이 미륵존여래불입니다.

내세의 부처님이다. 이런 생각하시면 안 돼요.

서가여래의 마음이 곧 미륵존여래불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하는 동안에 부처님 마음이 되는 겁니다.

그리 고 우리의 중생심은 사라지는 겁니다. 미륵존여래불이 곧 바치는 것입니다.

금강경 독송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난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 난제를 어떻게 극복을 하느냐?

그리고 난제가 있다고 인정을 해 놓고 극복하는 방 법을 찾는다면 어려워요.

돌아가는 거예요. 금생에 난제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난제를 빨리 극복하려면 난제라는 생각이 착각인 줄 알고 얼른 바칩니다.

난제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난제를 축복이라고 이름을 바꿔주어야 되요.

그 러니까 바치는 것이 난제해결의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난제해결하고 소원성취하기 위해서 발원문을 따로 써서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바치기만 하면 되고요. 미륵존여래불만 하면 되고요. 또 금강경 독송만 잘 해도 됩니다.

그래서 오늘 바치는 것 잘 아셔야 되고,

불교에는 4그룹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되고,

그 중에서도 대승인과 최상승인은 우리가 선지식을 만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세세생생 선지식 만나기를 발원 알고 봤더니 선지식이 택한 거예요.

그런데 약락소법자는 선지식이 택하지도 않고 택해도 왔다가 금방 달아나는 것이 이 사람입니다.

소승인도 선지식이 택한 겁니다.

그 런데 겨우겨우 붙어있는 게 이 선지식이고, 대승인 최상승인도 다 선지식이 택해요.

다 택하지만 대승인은 선지식을 기쁘게 하 는 사람들입니다.

최상승인은 선지식을 즐겁게 하는 사람입니다.

기쁘게 하는 것보다도 한층 더 고차원이 즐겁게 하는 겁니다.

우리 논어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자주 말씀을 드렸죠?

알기 쉽게 비유하면 그렇다고 생각을 하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제 약락소법자와 소승인에서 열심히 선지식한테 매달렸더니 거의 대승자의 반열에는 간 것 같아요.

저보다 나으셔야 되고요. 그러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이 법문 들으신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잘 하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