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금강경 [해석]

새벽법회 금강경 13 분 여법수지분 2부

금강 반야 바라밀 2023. 3. 26. 17:41

 

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금강경 7독 잘 하시어

그 내용을 잘 실천하셔서 잠이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깨우치시어 부처님 전 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지난번에 금강경 13분을 다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제한된 시간에

간단하게 정리할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13분의 내용을 일부밖에는 말씀을 못 드렸고

오늘은 그 후속 분을 말씀드릴까 했는데 후속분이 또 연결이 잘 안 되면 실감이 안 날 것 같아서

오늘은 좀 더 재주를 다해서 제한된 시간 내에 13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가 해설하는 금강경 말씀은 도인께서 우리 선생님께서 금강경을 해설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냥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 한 간단한 대답을 해 주시는데 질문은 설명이 아니었습니다.

제 용심을 보고 제 마음을 닦게 해 주시는 대답이었지 금강경 해석에 대한 설명을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 마음을 닦게만 해주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을 앵무새처럼 외워서 드릴 것도 없습니다.

저는 금강경 해설을 하면서 그냥 책에 나오는 그대로 설명을 드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저도 우리 스승께서 저한테 해 주시듯이 실지로 마음을 닦게 해 드리고 싶고요.

그리고 실감을 느끼 게 해 드리는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설명에 대한 해석 그것을 하는 것은 금강경 해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런 해설을 말씀드리고자 합 니다.

우선 13분에서 꼭 설명하고 넘어가야 될 부분은 아래 4가지로 적어봤습니다.

 

1. 佛說般若波羅蜜 則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2. 如來 無所說

3. 如來說 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 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4. 如來說 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이 4가지를 물론 해석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데는 또 실감나게 체험하는 데는 우선 제가 공부했던 내용을 먼 저 말씀드리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제식대로 제소리를 내어서 이것을 말씀드릴 때

금강경13분이 좀 더 이해가 되고 실천 가 능한 금강경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누차에 걸쳐서 수도장에 들어갔을 때 수도장이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소사라는 단어를 자주 썼습 니다.

소사에 갔을 때 수행했던 그 3가지 핵심 수행의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❶ 일이 많았습니다. 일하기가 싫었습니다. 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일하기 싫은 마음을 바쳐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일하기 싫은 마음을 형상이 없는 부처님께 바쳐라. 그 부처님도 그냥 부처님이 아니라 형상이 없는 부 처님입니다. 자비로운 부처님도, 위대하신 부처님도, 거룩하신 부처님도 아닙니다. ‘일하기 싫은 마음을 형상이 없는 부처님께 바치되 착각인 줄 알고 바쳐라.’ ‘안 된다는 생각도 바쳐라.’ 물론 거기에는 착각인 줄 알고 바쳐라가 들어갔습니다. 안 된다는 게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르는 게 많습니다. 모를 때 여쭈어보면 대답을 해 주시지 않아요. 네가 알 수 있다. 모른다는 생각이 착각인 줄 알고 바쳐라. 요렇게 대답을 해 주세요. 그래서 스스로 알게 하시고, 스스로 되게끔 하시고, 스스로 일하게끔 하셨던 것 같습니다. 참 일하기 정말 싫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쉬고 싶은 생각도 바쳐라. 이렇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기 싫은 것을 자꾸 바쳤더니 하기 싫은 게 점점 줄어들면서 저는 굉장히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변했던 거 같습니다. 아! 금강경은 이런 식으로 해야 되겠구나. 탐심은 이런 식으로 닦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❷ 정말 모를 것도 많고 안 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생각을 자꾸 바치니 까 영원히 안 될 줄 알았던 것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되는가? 했더니 안 된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될 수 있는 능력이 내 속에 본래 있음을 알았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내 속에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러면서 저는 차츰차츰 무능력자에서 능력자로 변해갔습니다. 이 얘기가 아마 잘 안 믿어지실 거예요. 그런데 실지로 주위에 안 되는 일이 있을 때는 누구의 도움을 청하거나 떼를 쓰거나 이러시지 마시고 안 된다는 생각을 한번 바쳐보세요. 그래도 안 되면 또 바쳐보세요. 또 안 되면 또 바쳐보세요. 될 때까지 바쳐보세요 그럼 됩니다. 그 다음에 모를게 너무나 많습니다. 모른다는 생각도 자꾸 바쳐 보세요. 모를 것은 영원히 모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꾸 바 쳐보면 차츰차츰 아주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옅어지다가 어느 때 어쩐지 알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나오다가 어느 때 느닷없 이 알아지는 현상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공부는 그 지침만 일러주면 혼자된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도 착각이었습니다. 혼자 하려 고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매일 들어오라고 그러셨어요. 여기도 공부를 이렇게 몇 가지 지침을 해 주고 이렇게 하면 혼자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그 뒤에 결론은 뭐냐 하면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순간에 내리막길 로 급속도로 내려가는 걸 너무도 모르실겁니다. 그런데 저는 잘 압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것은 공부하는데 최대 금물중 의 하나라는 것을 꼭 아셔야 됩니다. 오만한 생각이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매일 같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들어갔더니 제가 올라오는 생각이 있어요. ‘아! 선생님은 나같이 똑똑 한 사람을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누구든지 탐이 날 수 있는 그런 존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그럽니다. 너의 선생님은 너 같은 훌륭한 제자 만났다. 잘 생각해 보니까 그런 것 같 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은 꾸중을 하시는데 저는 좀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야! 선생님은 나를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도 물론 바쳐야 되지만 잘 안 바쳐졌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붙들어두려고 하는 것 은 양반이죠. ’날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 생각이 점점 깨져요. 왜냐하면 날 붙들어 두고 이용하려고 그러면 어떤 질문을 해도 다 달콤하게 꼬 드기는 답변을 해 주실 것 같은데 내 말투나 이거에 따라서 선생님의 얼굴은 수시로 변하는 겁니다. 너 갈 테면 가, 너처럼 꼬 드기고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아주 그런 식의 기대를 하면서 질문을 하면 여지없이 돌아오는 것은 무참한 망신과 너 없어도 언제든지 이 법당은 유지가 돼, 너 갈 테면 가, 이런 것을 몇 번 당하다 보니까 선생님은 날 꼬드긴다는 생각, 또 나를 특히 귀 여워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실지로 저 분은 참 가련하고 한심한 저를 인연이 있어서 밝게 해 주시려는 그런 느 낌을 차츰 들게 되면서 선생님에 대한 진정한 공경심이 생기게 됐습니다. 그건 여기 계신 분들도 비슷합니다. 제가 그랬듯이 여러분들 중에서도 나를 예뻐서 나를 꼬드겨서 친절하게 대답을 잘 해주는 걸 보니까 나를 이용가치가 있어서 이렇게 대답을 잘 해준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몇 번 그렇게 생각을 했다가 선생님께서 되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나 제가 정성을 들인 때는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시고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조금이라도 성의가 결여 된 질문을 할 때는 여지없이 차게 되돌아오는 것을 느끼면서 저는 그런 미망에서 벗어나게 됐고, 저분은 진작 나를 위해서 정 말 자비심으로 해 주시는구나. 절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이게 매일 들어갈 필요가 있어요.

매일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 스승에 대한 위대성을 느낄 수도 없고 공경심도 나올 수가 없습 니다.

그 뒤에는 못마땅한 게 너무나 많았습니다. 뭐냐 하면 제가 싫어하는 사람, 제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을 선 생님은 칭찬하시는 거예요. 가장 아주 견디기 괴로웠던 것은 여색을 탐하지 않아야 될 도인이심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가까이 두시고 그 여자의 사고방식이나 하는 게 너무나 거칠고 못마땅한데 그런 거칠고 못마땅한 그 여자의 편을 들어주실 뿐만 아니 라 그 여자를 시켜서 저를 아주 괴롭히는 거 같은 것을 했을 때 ‘아! 이게 정말 도인의 법식이 맞나?’ 그렇게 하고서는 선생님 을 꾸짖는 마음이 종종 올라왔습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늘 그러시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참 닦기가 힘 들었습니다. 왜 저러실까? 왜 저러실까? 그것을 뛰어 나갔다. 하기에는 저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렇게 돼요. 그 여자를 옆에 두는 이유가 뭔가를 설명을 해 주세요.

“나는 쟤가 예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쟤 때문에 너희들이 진심을 닦 을 수가 있다. 너희들이 진심을 닦을 수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밝아질 수가 있다. 나는 그 애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애가 너희들의 진심을 닦고 너희들의 오만함을 닦게 해 주니 내가 쟤를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게 보통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는 아니죠? 정말 도인만이 할 수 있는 소리고 그래서 제가 많이 반성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인의 법식이 뭔 가를 알게 됐고요. 수기설법이 무엇인가를 알게 됐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도 지금생각해 볼 때 참 오만했던 거 같아요. 선생님한테 질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면 대 답을 잘 했는데 질문을 하다 보니까 제 속에 좀 못된 소견이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질문을 해서 선생님을 골탕을 먹이면 어떨 까?’ 그리고 ‘선생님은 외레 너는 아주 똑똑한 제자라고 칭찬해 주지 않을까?’ 이런 저는 못된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 고 내가 질문했을 때 선생님이 쩔쩔 매던 것을 저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비슷한 습관이 수도장에 들어와 서도 저는 질문을 많이 드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몰라서 드렸던 것이고 친절하게 다 대답을 해 주시는 것 같아서 또 질문 하고 또 질문하고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질문은 알고 봤더니 질문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질문은 이렇게 무얼 질문하면 그 질문을 쭉 설명을 해 주세요. 그런데 백선생님은 질문을 하면 질문을 설명해 주질 않습니다. 질문하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질문하는 나의 용심을 보는 겁니다. 제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6조혜능대사의 책을 보니까 큰비가 내리면 큰 나무는 점점 더 잘 자라고 잔풀은 계속 꺾인다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그 뜻을 몰랐습니다. 몰라 서 그 뜻을 설명해 달라고 선생님한테 질문을 했었고 그전에 어느 때는 설명을 잘 해주시던 그런 기억도 있어 여쭸습니다. 그 랬더니 설명을 해 주시지 않고 “네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네가 바로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 저 는 몰라서 질문을 했는데 몰라서 질문을 했으면 설명을 해 주실 것이지 느닷없이 “네가 그 애를 꾸짖는 마음이다.” 이렇게 얘기 를 하시니까 망신스럽기 할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야속하기도 하더라고요. 선생님은 지도방법이 올바르지 않은 교수가 아닌 가? 내가 선생님을 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질문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설명을 해 준 뒤에 그이로 하여금 신심발심하게 해 주시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깨칠 때는 상당히 오래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 도인의 스타일은 질문은 대답을 상세히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질문하는 용심, 마음씀씀이를 보고 그것이 나쁜 것이라면 바로 잡아주는 것이 더 급선무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자꾸 하면 어떻 게 돼요? 궁리를 자꾸 또 질문하게 되고 또 질문거리를 마련하게 돼서 이 수도시간이 지식교육이지 지혜를 일깨우는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그때는 몰랐어요. 수도는 지식의 연장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음을 닦고 인격을 키우는 게 교육이라는 걸 알 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매일같이 법문을 들어가면서 지식이 늘어난 게 아니었습니다. 마음 닦는 것이 무엇이라는 걸 알고 그리고 도인의 법식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를 알고 도인은 정말 아상이 없는 분이고 꼬드기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주고 밝게 해 주시는 것이 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너무나 위대했습니다. 그분은 정말 안 되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고, 전지전능한 분이었는데 호랑이가 발톱을 숨기듯이 조용히 때를 가르치시면서 본인의 위대성을 잘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저로 하여금 일 깨우게끔 그렇게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해도 안가고 원망도 했고, 처음에는 굉장히 친절한 것 같더니 일단 문안에 들어서니까 엄하기는 얼마나 엄한지 옛 날에 꼬드기고 이용하려고 했다는 거는 완전히 착각이고 망상임을 새롭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어느 듯 이제 와서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저는 핀치 놓자 입장에서 지도자 입장이 됐습니다. 지금은 적잖은 많은 사람들일 저한테 상담 을 요청합니다.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러 가지 바라는 것이 많이 있어요. 그럼 소원 성취하는 방법을 저는 일러 주 지를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 “네 속에 선입견만 바꾸면, 안 된다는 선입견만 착각인 줄 알고 바친다면 네가 할 수가 있다.” 우리 선생님께서 정답을 일러주시기보다도 힌트를 주시고 내속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키워주셨듯이 저도 그런 식으로 답변하는 것을 배우고 그런 식으로 대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원성취를 바라고 질문하는 것은 그런대로 답변하는 데 내가 익숙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고약한 것은 저를 상당히 공 격적인 용심을 가지고 공격의 마음을 가지고 물론 겉으로는 물론 저를 공격한다고 이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하는 내용 을 보면 그이의 진심이 확 묻어나요. 아! 내가 예전에 선생님께 그렇게 했구나. 이제 보입니다. 그럼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 나요? 우리 선생님이 예전에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기보다도 꾸중부터 했습니다. 육조단경을 물었는데 단경을 설명해 주시 지 않고 저를 꾸중하고 망신하셨듯이 저한테 질문할 때 상당히 공격적인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고 제가 느끼는 수가 많습니다. 그럼 저는 그 대답을 해주고 싶지가 않아요. 이 용심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답을 안 하거나 또는 묵살하거나 이 꾸중을 하면 2배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꾸중하지 않습니다. 저는 선생님처럼 법력이 없어서 꾸중은 삼갑니다. 그래도 괘심해요. 그래서 어느 때 나무라게 됩니다. 그게 가장 알맞은 답으로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면서 즉 처음에는 저 자신이 일하기 싫은 마음, 안 된다는 생각, 이게 다 착각임을 알게 되고 일도 건강하게 되고, 능력도 있어지고 철이 나게 됐 습니다. 특히 모른다는 생각을 자꾸 바치면서 지혜가 났다는 뜻은 철이 났다는 뜻입니다. 어른스러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참 스승은 위대하다. 요런 것을 알았다는 것은 철이 났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새로 태어난 느낌 이 듭니다.

 

佛說般若波羅蜜이 則非般若波羅蜜일새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반야바라밀은 너희들이 설하는 반야바 라밀과는 다르다. 우리들이 설하는 반야바라밀은 우리들이 설하는 위타인설은 여기서도 그러실 거예요. 나는 남한테 금강경을 잘 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설한다는 것은 글자 해석하고 예를 잘 들고 누구누구는 이랬다. 하는 소위 세상의 교수식 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도인은 교수식, 즉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쁜 점을 나무라고 꾸짖고 해서 인격자로 만드는 게 도인식의 해석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답을 안 할 수가 있어요. 또 잘난 척하는 사람한테는 들어주기만 하면서 가끔 좀 빈정대는 말 씀을 하세요. 그래서 찔끔하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제 금강경을 누가 질문하는 수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힌트는 드리죠. 그 뒤에는 아주 테스 트하는 용심을 갖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는 꾸짖는 용심을 갖고 그럴 때는 절대로 그 해석을 해주는 것은 의미가 없 습니다. 소원성취 방법을 일러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 공경심만 갖게 하면 다 되는데 무엇 때문에 글자해석을 해 줍니까?

저는 그래서 비로소 이 구절 ‘佛說般若波羅蜜이 則非般若波羅蜜일새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반야바라밀은 지식교육이 아닙니다. 그시 그시(그때그때)에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의 나쁜 용심을 바로 잡아 주시면 서 인격을 향상시키고 분별을 쉬게 만들어서 무한 능력이 드러나게 하는 그런 것을 지혜교육이라고 그러죠. 그건 적당한 형상 이 없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인격교육이지 이름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 이름 해서 반야바라밀이니라. 저는 이걸 잘 몰랐는데 이 제는 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如來 無所說이라고 그랬습니다. 사실은 질문을 했을 때 저는 열심히 설명을 해 줬어요. 그런데 열심히 설명해 줄 필요가 없었어요. 제가 열심히 질문했을 때 우리 선생님이 대답하시지 않았어요. 네가 알 수 있다. 바쳐봐라. 그러면서 스스 로 알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도 질문을 할 때는 가만히 보면 스스로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제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자꾸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그 모른다는 생각을 바쳐보세요. 이런 식으로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할 말이 없어요. 바치 세요. 이 한마디면 다 됩니다. 저는 비로소 부처님은 아무 하실 말씀이 없다. 다 부처인데 그리고 다 아는 능력이 있는데 무슨 하실 말씀이 있나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대답을 한다면 내 주장을 설득시키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알게끔 방 향제시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無所說의 뜻을 이해하게 됐고, 저도 무소설無所說하려고 노력을 하고 석가여래야 말로 진정 無所說이다. 無所說은 할 말이 없어요. 다들 부처이고 도인이기 때문에 바쳐라 한마디면 다 되지 무슨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정말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각종 물건들(카메라. 피아노)도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있는지도 모 릅니다. 딱딱 두들기면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뭐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있는 것과 있다고 보는 것이 똑 같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보는 것이었을 뿐, 있다고 보는 것은 팩트fact가 아닙니다. 있는 것은 팩튼데, 있다라고 하는 것, 즉 이것을 다 팩트로 봤던 것입니다. 그런데 있는 게 아닙니다. 있다. 라고 내가 볼 뿐입니다. 그런데 있다. 라고 보는 것은 가변적입니다. 팩트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산하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있다. 라고 본 뿐이다. 믿을 뿐이다. 그런데 믿음이 변하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몰랐었어요. 그런데 제가 무능 안 된다. 안 된다가 진짜 팩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안 된다가 팩트가 아니라 안 된다고 한 내 생각이 생각 은 팩트가 아닙니다. 변할 수 있습니다. 그

래서 안 된다는 생각을 바치니까 되지 듯이, 이것도 있다. 라고 보는 생각을 착각인 줄 알고 바치니까 변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여기서 금강산이 안 보입니다. 500리지만 거리가 멀다. 라는 것을 팩트다. 라고 생 각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멀다가 아니라 거리가 멀다는 내 생각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자꾸 바친다 면 여기서 금강산도 보일 수 있다는 믿음이 저는 생기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산하대지라는 게 팩트가 아니라 산하대지가 있다 고 보는 생각, 그게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如來說 非微塵이 是名微塵 이니라 如來說 世界가 非世界ㄹ새 是名世界니라 -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微塵, 우리들이 생각하는 微塵은 팩트로 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미진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여기에 문지방이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우리 선생님께 서는 네가 매일 다니는 문지방을 못 본다. 라는 것은 문지방이 있다. 라는 생각에 매여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도 착 각인 줄 알고 바친다면 문지방도 못 본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간다는 겁니다. 이게 이해가 가야 초능력자가 됩니다. 부처의 경지에 오르는 겁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 매달려 있으면 중생세계의 삶에서 살면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겁니다. 즉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문지방이면 문지방, 우리가 생각하는 문지방하고 틀리다. 이겁니다. 우리는 문지방이 있다고 보지만, 문지방이 팩 트라고 보지만 부처님은 문지방은 팩트가 아니다. 문지방은 너희들이 있다고 볼 뿐이다. 그 생각을 믿기 때문에 그 생각을 바 치면 진짜 문지방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如來說 三十二相이 卽是非相일새 是名三十二相이니이다 - 우리는 미인을 보면 참 마음이 황홀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참 잘 생겼다. 그리고 이 잘 생긴 것은 팩트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정말 존경할 만 하고 정말 이것은 진짜 존재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것도 네 생각이고 착각일 수 있고, 그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즉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32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한 모습이 아니다. 즉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마음 밖의 형상이 아닙니다. 마음속의 용심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혜능대사는 우리가 보는 32상은 거룩한 모습으로 보지 만 혜능대사는 그것을 淸淨行으로 봅니다.

티 없는 청정한 행으로 봅니다. 또는 아름다운 거룩한 마음으로 봐도 됩니다. 형상 이 없습니다. 억지로 이름 하여 32이상이라고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저는 이런 얘기들을 처음에 믿지도 않았고 해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치지 못한 사람은 금강 경을 한 줄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만이 이것을 실감나게 체험을 하시고 실감나게 얘기하실 수 있습니다. 단 중생들 중에서도 부처님을 지극히 공경하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부처님과 한 마음이 되면서 금강경에 대한 해설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완전히 중생세계에 살 때 저자신이 해설한다고 했지만 제가 해설한 것은 지식의 연장이었고 사람을 밝게 해 주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됐습니다. 되레 깜깜하게 해줬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금강경 몇 십 년 하면서 부처님을 지극히 공경하려 고 하니까 제가 해설하는 금강경은 그냥 지식의 교육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데는 마음을 닦게 해 주는 요소도 꽤 되며, 바치 면서 하고, 그 말꼬리를 따라가면서 하지를 않고 내 지식 자랑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해준다는 원을 세우 면서 하니까 거기에는 위력이 뒤따릅니다. Qncjslatlqhd 즉 과거 몇 십 년 전에 내가 했던 금강경 해설은 아무 위력이 동반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해설은 그때와는 틀립니다. 지금은 순간순간 부처님과 한마음이 돼서 부처님이 무소설을 하셔서 수기설법을 할 수 있는 위력을 주셔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듯이 아마 제가 지금 하는 것은 그때하고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자랑하려고 하 는 게 아니죠? 위의 (4가지 구절)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게 되니까 실천가능 하도록 말씀드릴 수 있었다. 요 런 뜻이 됩니다 이렇게 이해하셔서 금강경 공부 잘해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이 법문 들은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합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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