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금강경 [해석]

새벽법회 금강경 [존중정교분12] 법문 1부,2부

금강 반야 바라밀 2023. 3. 11. 06:43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시느라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잠이 착각이고 본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그 이치를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은 금강경 12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해석을 해볼게요.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 -

우선 이경 가운데 사구게라는 것은 금강경의 뜻을 나타내는 간단한 글귀를 얘기합니다.

금강경은 5 천 몇 자라고 합니다만. 그 중에서 사구게는 열 몇 자 밖에 안 되죠?

요 열 몇 자 중에서 금강경 전체의 뜻을 다 포함하고 있는 간단한 글귀가 몇 개 있고요.

그 대표적인 글귀를 보통 ‘凡所有相은 皆是虛妄이라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니라.’ 라고 그렇 게 우리가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금강경을 읽고 이해해야 금강경내지 간단한 글귀라도 이야기 해 준다는 것은

읽고 이해해야만 다른 사람한테 얘 기해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얘기해 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설할 수 있는 능 력이 있어야 됩니다. 이 뜻을 읽는다. 이해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얘기해 준다. 이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隨說 是經 乃至四句偈等 요렇게 표현했다. 요렇게 보시면 됩니다.

우리는 지금 금강경을 아주 열심히들 읽고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이렇게 7독씩 하시지 않았죠.

1독이라도 잘하면 재앙이 소멸 되고 아침나절의 재앙이 소멸되고,

저녁의 1독은 밤새부터 새벽사이에 재앙이 소멸된다. 이런 말씀을 듣고 우리는 금강경을 시작을 했습니다.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을 읽어 보니까 실지로 재앙이 소멸이 되고, 또 소원이 성취가 되요.

그 것만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금강경을 자꾸 읽으니까

當知此處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應供養 -

일체세간천인아수라가 다 받들어 모시고 그렇게 되는 것을 저는 여러 번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금강경에 무슨 도력이 있어서 마술이 있어서 재앙이 소멸되느냐?

저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금강경이라는 것은 굉장히 영험해서 재앙을 소멸시키는 그런 능력이 나오고

또 소원 을 이룩하는 능력이 나오고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받들게 하는 그런 위신력이 이 경속에 있다.

이렇게 생 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좋았습니다. 그런 말씀이 참 듣기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읽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경속에 위대한 신통력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신통력을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고

신통 력을 스스로 차단하는 번뇌망상이 우리를 뒤덮여 있었던 겁니다.

금강경이라고 하는 경은 무슨 경이냐 하면 ‘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금강경의 핵심내용이더라고요.

재앙이라는 게 본래 있는 게 아니랍니다. 우리는 재앙이 꼭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별할 때 굉장히 괴롭고,

또 아주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날 때 지겹고 제발 안 만났으면 하는데 만나면서 괴롭고,

생로병사가 고통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배웠고 실지로 그렇게 믿어집니다.

저도 그걸 믿고 그랬었는데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고 그 원인을 없애면 고통도 없 어진다.

이런 이치를 분명히 믿었습니다. 고통은 존재한다. 고통의 원인은 있다.

원인을 없애면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아마 사제법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치가 그럴듯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금강경을 자꾸 읽다보니까 읽는 게 아니라 읽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실천을 하다보니까 그게 잘못된 걸 알았어요.

고통이라는 게 꼭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고통이라고 이름 짓는 순간 고통이 존재합니다.

고통의 원인이 라는 것도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고통의 원인이 있다고 믿고 이름을 지으면 원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원인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고통이라고 이름을 짓는 것이 정말 문제로구나.

그럼 고통이 없다고 믿게 되면 고통이 없어지는 것도 저는 이해하게 됐습 니다.

 

금강경을 많이 해 보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그 다음에 축복이 존재한다. 라고 믿고 또 그 원인이 있고,

원인을 실천을 해서 축복을 얻는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축복이 있다고 믿는 순간에 축복이라고 믿는 순간 축복이 나한테 임하는 겁니다.

재앙이라고 명명하고 이름 짓는 순간 재앙이 나한테 임하는 겁니 다.

이걸 잘 보면 나는 조물주가 되는 거고 나는 조물주입니다.

나는 전지전능한 부처라는 능력이 있다. 라는 것을 아마 여기 법문 을 많이 들으셨으니까

경전에 그렇게 써져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가 아니라 저절로 터득이 됩니다.

 

그래서 隨說是經 乃至四 句偈等 이 구절 금강경을 읽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야기를 해줄 정도가 되는 사람이라면 재앙이 꼭 있는 게 아닙 니다.

재앙이 있다고 믿는 순간 재앙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축복이라고 이름 짓는 순간 축복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게 됩니다.

나는 내가 분별 내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게끔 됩니다.

한층 더 나아가서 나는 조물주라고 믿게 됩니다. 그건 누구나 부분적이나마 아마 실감하실 걸로 생각합니다.

조물주이기 때문에 그런지 내 마음은 환희심이 차고 당당합니다.

그러니까 當知此處 금강경을 실천하는 그곳은 一切世間天人 阿修羅皆應供養한다는 얘기입니다.

주위가 부드러워진다. 라고 하는 것은 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應供養의 1차적인 실감입니다.

내 마음에 근심걱정이 없어지면서 부드러워진 게 실감합니다.

우리가 100일을 끝나고 돌아오면 반드시 물으십니다.

“집에 돌아가 보니까 그전보다 사람대하는 것이 다르지 않더냐?” 이렇게 물으세요. 그럼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저희도 그렇게 느끼 고 배웠고 여기도 그렇게 실감하실 겁니다.

그러시니까 이렇게 꼭두새벽에 나오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위가 부드러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참 내가 임금이나 된 것처럼 부처가 된 것처럼 다 도와요.

저는 국내에서보다 도 해외에 나갔을 때 그런 걸 여러 번 실감을 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스리랑카에 갔을 때 아주 실감했습니다.

심지어 날씨 까지도 임금은 날씨까지는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

런데 주위에 만나는 사람마다 또 주위 환경마다 심지어 날씨까지도 저 를 축복해주는 체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요번에 대만가서도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皆應供養한다는 것을

저 뿐이 아니라 같이 가신 분들이 따라서 느끼시지 않았을까 이렇게 믿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조물주다. 부처다. 라는 것을 실감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즉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 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應供養 이것을 다시 말하면

금강경 1독만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얘기 만 해 준다고 하더라도

또는 1독이 아니라 사구게 만이라도 정성껏 읽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실감을 느껴서 다른 사람한테 얘 기를 해 주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주위가 부드러워지고,

주위가 부드러워지는 게 아니라 하늘과 땅이 다 자기를 알아 모시 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아침저녁으로 1독만 해도 그렇습니다. 1독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1독이 아니라 7독을 해요.

7독이 뭐냐하면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이랴 하겠습니다.

이것은 盡能受持讀誦은 주경야선 1독이 아니라 7독으로 낮에도일하면서 올라오는 생각을 다 바치는 겁니다.

자꾸 바치게 되면 그것을 盡能 다할진, 능할능 내 몸에 배도록 금강경을 수지독 송한다. 라는 겁니다.

지금부터 새벽5시까지 금강경7독하는 것도 盡能受持讀誦이지만

7독이 끝나고 5시부터 우리는 쉰다가 아 닙니다.

그때부터도 올라오는 생각을 자꾸 바칩니다.

 

낮에 일터로 나가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일하기 싫다.’ ‘안 된다.’ 또 는 ‘이만하면 됐다.’ 라는 생각을 자꾸 바칩니다.

그것은 晝耕夜禪 요렇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금강경의 盡能受持讀誦이 다.

이렇게 됩니다. 저는 제가 가끔 말씀드렸습니다만 백선생님께는 위대하신 점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생을 아시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시면서 그들에게 알맞은 법문을 수시로 하는 참 위대하세요.

그리고 상당히 인격 이 훌륭해서 누구한테 바라지 않고 제자들이 오면 다 먹이고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시고

그것도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고 봅니 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저는 들은 얘기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지만

투철한 정신으로 항상 어느 때나 스승을 항상 공경하고 예배하 고 이랬다는 점이 가장 훌륭한 점의 하나다.

대단한 훌륭한 점의 하나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고 그래요.

우리가 소사에서 늘 몇 년을 모시고 있었습니다만 금강경을 우리들은 열심히 읽지만 선생님은 아마 다 깨치 셨으면 놀고 계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어떤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도 금강경을 읽으세요?” “암, 읽 지”, “선생님도 미륵존여래불 하세요?”

우리한테만 미륵존여래불을 시켜놓으시고 선생님은 노시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실지 로 물으셨어요.

“아, 나도 읽지” 실지로 봤습니다. 장궤를 하고 7독을 하시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소사에 있을 때도 정말 금강경을 한번만 읽고 마는 게 아니고

안 읽으시는 것도 아니고 계속 읽으셨다고 본인도 얘기하시고 그러십니다.

그전에는 이미 나이 해방되셨을 때 이미 50입니다. 그때 이미 원숙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같이 모시고 있는 분이 얘기를 해 요. 통금시간입니다.

그전에 목욕재계하고 통금시간이 끝나자마자 돈암동에 계시다가 스승이 계신 혜화동으로 걸어서 갑니다.

한 3~40분 걸리겠죠? 매일 같이 3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스승을 찾아뵙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같이 스승을 찾아뵌 다는 것은 한시도 부처님을 떠나서 사는 일이 없다.

그것이 주경야선 가행정진의 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좀 매일같이 물을 게 뭐가 있나, 들을 게 뭐가 있나,

들어야 까딱하다가는 잔소리나 듣고 꾸중이나 듣지, 적당히 쉬어가 면서 깨칠 때 있을 때만 선생님을 찾아뵙자.

이렇게 하기가 쉽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더니요 나중에는 매일 같이 들어오라 고 그러세요.

그래서 나중에 3년을 매일 같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봤더니 우리는 원체 착각의 동물입니다. 실수의 동물 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잘못 나가요. 마치 동물들이 동물들이라는 것이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

개, 소, 돼지가 제 정신 같아요? 사람이 보면 지능도 형편없고 치매가 완전히 환자죠?

부모, 자식도 모르고 인륜도덕도 없고 축생인 셈입니다.

밝은이가 보면 우리가 축생이 형편없듯이 도덕도 없고, 인격도 없고, 지혜도 없고 깜깜하듯이 우리도 그런 존재래요.

착각 속 에서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선지식 찾아뵈어야 되고,

한시도 방심하지 않아야 되고, 금강경을 1독만 해도 좋지만 계속 7독을 해야 되고,

이래야 어느 정도 착각 속에서 벗어나는 모양입니다.

실지로 백선생님 같은 도인도 매일 같이 밝은 스승을 찾았다는 그 점,

그것은 제가 참 존경할만한 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盡能受持讀誦이다.

그러면 말할 것도 없이 밝아지고야 만다.

금강경을 盡能受持 몸에 배도록 그렇게 읽으면 결국은 最上第一希有 밝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몸에 배도록 읽는 데는 3가지가 있다고 그럽니다.

 

1/몸에 배도록 읽어야 됩니다. - 우리는 극락세계를 체험합니다. 행복만을 체험

2/ 뼈에 사무치도록 읽어야 됩니다. -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서 인재가 된다.

아주 아둔한 축생도 사람의 지혜를 이르게 한다. 요 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3/하나는 골수에 사무치도록 읽어야 됩니다. - 이렇게 되면 부처가 됩니다.

 

이렇게 하려면 금강경 1독 갖고는 좀 힘들 것 같아 요.

우리는 지금 인재가 되는 길, 부처가 되는 길을 가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냥 행복해지시고 근심걱정없이 사시려면 어떻게 보면 금강경 1독만 해도 저는 아침저녁 1독만 해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 니다.

성심껏만 하면, 여기 계시는 분을 저는 대승자라고 보고 적어도 보살이 되시려고 하고, 부처가 되시려고 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나는 보살도 싫고 부처도 싫다. 나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현재는 그러실지 몰라도 여기 계신 분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나는 보살이 돼서

여러 중생들을 도와주고 구제하겠다. 는 그런 원이 서셨기 때문에 여기 오셨지

단순히 행복해지시려 고 한다면 이렇게 밤잠을 설쳐가면서 여기까지 오시지 않고 1독만 성심껏 하셔도 저는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독만 성심껏 하신 분은 절대로 평가절하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죠. 여기 오신 분들은 대승자요. 최상승자요. 보살을 지향하는 사람이요.

부처를 지향하 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봅니다. 또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로 믿습니다. 결국은 밝아지고야 맙니다.

열심히 읽어서 몸에 배도 록 읽으면 극락세계를 체험합니다.

뼈에 사무치도록 읽으면 아주 지혜로워져서 인재가 됩니다.

극락세계는 이미 다 체험하셨 고 여기에 만족하시면 이대로 가는데 아마 이것은 소승의 길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若是經典所在之處에는 - 열심히 수행하는 곳,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는 곳은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금강경 연수원이 됩니다.

그 연수원은 1독만 하는 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주경야선 가행정진하는 데 일겁니다.

그렇게 되면 則爲有佛 부처님을 탄생하거나 즉 보살

若尊重弟子는 부처가 되거나 또는 부처는 못되더라도 인재가 되거나 요렇게 된다.

대승의 마음 을 가지고 출발한 사람이기 때문에 요것이 포함되어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금강경 12분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3.4.5분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11분, 12분은 아주 蛇足 이라고 생각을 했고 대충 읽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 많이 읽고 나니까 11분, 12분의 의미가 참 커요.

특히 12분 의 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應供養을 하고 결국은 밝아져서 부처가 되거나 보살이 된다.

저는 요새 이 구절을 참 즐기게 됐습니다. 아주 고맙게 생각합니다.

요런 마음으로 오늘 7독 잘 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주경야선 가행정진들 하시느라 대단히 수고들 많으십니다.

잠이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 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 금강경 12분은 2번째 시간입니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금강경의 전체 뜻과 위대성을 간략하게 잘 나타낸 그런 부분이라 생각하게 돼서 또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금강경에는 듣는 문자聞이 자주 나옵니다.

如是我聞할때도 이 聞자가 나오죠? 그리고 說이라는 단어도 굉장히 자주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聞자는 듣는다고 하면 그냥 청력이 있어서 듣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를 듣는다. 청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설한다는 것은 강의를 한다. 요렇게 그냥 생각을 했어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요새 현대인들 대부분 聞자하면 그냥 청력이 있다. 들을 능력이 있다. 귀가 아직 먹통이 되지 않았다.

요런 뜻으로 이해하실 겁니다. 說도 그저 이해하고 강의를 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아마 확실히 이해하고 강의를 하시는 교수도 적지 않을 겁니다.

하여 튼 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聞과 說로 그렇게 이해를 하고 금강경 공부를 해 왔고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분들도 이렇 게 다 그런 걸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제 도인 밑에서 몇 년을 공부했는데 그 도인이 말씀하시는

聞자와 說자는 우리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는 것을 느낍니다.

금강경을 보면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佛說般若波羅蜜은 卽非般若波羅蜜일세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또 如來說微塵은 非微塵일세 是名微塵이니라.

요런 표현이 자주 나오죠? 이걸 잘 해석해야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반야바라밀은 우리들이 이해하고 해석하는 반야바라밀하고는 상당히 틀립니다.

즉 우리가 듣는 聞은 그 냥 청력이 있다는 뜻인데 깨친 이가 말하는

聞은 그냥 청력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확실히 이해했다는 뜻이 됩니다. 속속들이 안다는 뜻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했습니다만 저는 대학교수는 다 알고 강의 하는 걸로 알았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 랫동안 강의를 했죠, 그러면서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확실히 알고 강의를 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그

런데 說도 그냥 강의 를 하는데 확실히 알고 강의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몸에 배고, 피부에 배고, 확실히 자기가 체험을 하고, 그러고 강의를 하는 것은 틀려요.

힘이 있고, 호소력이 있고,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도의 능력까지도 있게 된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聞은 그냥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도인이 말하는 聞은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佛說般若波羅蜜은 卽非般若波羅蜜일세 그 뒤에 중생이 생각하는

般若波羅蜜하고 틀리다는 뜻이고 이해하듯이 우리가 생각하 는 聞은 도인이 이야기하는 聞과는 다르다.

도인이 말씀하시는 聞은 이해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 說은 도인이 말씀하시는 說로 해석하셔야 됩니다. 실천한다는 뜻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해하고 응용한다. 요런 뜻 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강경 12분은 출발이 隨說是經 이 經내지는 사구게 간단한 글귀만이라도

여기서 說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한테 얘 기해준다는 뜻도 있겠죠?

그런데 얘기는 자기가 확실히 실천해서 경험한 것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요. 강의도 그렇습니다.

거 저 들은 대로 거의 앵무새처럼 비슷하게 얘기하는 교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확실히 알고 이해하는 교수는 굉 장히 드물고 그런 사람들은 응용력이 뛰어나서 수많은 논문을 쓸 수가 있는데,

그냥 강의만 하고 전달만 하는 교수는 강의교수 라고 그럽니다.

강의교수에 대조가 되는 말은 연구교수가 되겠죠. 확실히 알고 강의하는 사람이 좀 드물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說은 확실히 알고 실천하는 사람,

금강경을 하루에 1독을 하더라도 확실히 알고 실천하는 사람 이런 뜻이 됩니 다.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하면 그것은 금강경을 많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읽거나 또는 간단한 글귀 사 구게를 說이라는 것은 실천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해도 할 뿐만 아니라 실천까지 했어요.

그런 사람은 隨說是經하되 乃至四句偈等하면 當知此處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應供 養한다.

그랬는데 우리는 天人阿修羅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하늘 세계가 있는가 봐요 우리 눈에 잘 안 보이죠?

阿修羅라는 세 계도 있기는 있는가 봐요. 기독교에서 천당 지옥이 있듯이 우리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인간은 자주 보죠? 축생은 봐요.

그런데 天이나 阿修羅는 잘 안보여요.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릅 니다.

그래서 우리 백선생님은 주로 인간얘기하시고 축생얘기하시지 하늘나라세계 얘기는 잘 얘기를 안 하시더라고요.

또 하늘나라 세계 말고 극락세계라는 게 또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제 번뇌 망상 때문에 그런 것은 제가 질문도 안 했습 니다.

거저 번뇌 망상이나 없어졌으면, 마음이나 편했으면, 그리고 내가 뜻한바나 이루어졌으면,

또 먹고사는 문제나 해결이 됐 으면, 그 생각 때문에 하늘나라니,

아수라니 이 보이지 않는 세계 귀신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차 근심 걱정도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것 같고,

들리 는 것 같은 것을 느끼면서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어요.

수도하는 분들은 아마 그런 걸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바쁘고, 서로 싸우고 화해하기 바쁘고,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것을 겨우 해결하는 수준이지

즉 눈앞에 있 는 그것을 떠나서 좀 더 깊은 세계 여기에 대해서 아예 관심조차 안 가질 뿐만 아니라 부정을 하고 아예 그 세계는 없다.

내 눈 에 없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거든요. 전생이 뭐가 있느냐, 없다. 내생도 없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지 않는 거 같아요. 저는 믿기 는 믿었지만 확실히 알지는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금강경 공부를 자꾸 하면서 전생을 믿기는 믿었지만 실지로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죠. 그

런데 그것도 확실한 믿음으 로 이어집니다.

마치 聞은 처음에 듣는다가 수도를 하면서 이해한다로 변하듯이 전생도 믿기만 했지 실감을 잘 못했는데

특히 억울한 일이 해 석이 되면서 왜 이렇게 억울한 일이 생기나?

그건 전생이 아니면 해석이 안 됩니다. 전생이 있다는 것을 믿었지만 자꾸 공부하 다 보면 좀 실감을 느끼죠.

그러면서 어느 듯 제가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세계는 있습니까?

아수라는 있습니까? 그런데 하늘나라 이건 아주 추상적이에요.

요새 UFO라는 게 있잖아요? UFO 는 있습니까? 그 다음에 지옥은 있습니까?

지옥은 안 보입니다. 죽어서 천당으로 갑니까? 지옥으로 갑니까? 이렇게 또 여쭈어 봤어요.

그런데 가는 게 아니래요. 내 속에 그대로 지옥을 느끼는 것뿐이지.

지옥 간다고 그러잖아요. 죽어서 지옥 간다. 번뇌 망상이 아주 심하고 고통을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열이 펄펄 납니다. 저는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열을 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정말 지옥이던데요.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지옥을 가는 게 아니라 지옥을 체험하는 겁니다.

자기 마음속이 지옥이 있어요. 그럼 천국은 자기 마음속이 상쾌한 것이 천국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대요. 지옥을 느끼면서 하루에 만 번 죽고 만 번 사는 지 옥 이걸 아비지옥이라고 그럽니다.

한번 죽으면 그냥 아주 죽으면 좋은데 죽었다.

또 살았다. 편안할만하면 또 죽었다. 하루에 만번 죽었다.

만 번 살았다를 체험하는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옥 간다고 그러지만 어디로 가는 게 아니라 자기 속에 번뇌 망상이 지옥을 만든다.

그런데 실지로 가는지, 또 천국이 있는지 이게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도인의 답변은 어떤 것인가.

대개 도인은 체험해 보시지 않는 것은 잘 말씀하시지 않는데

그때 지옥 그러면 능엄경에 우리는 육도윤회라고 하지만 거기는 9갈래로 나옵니다.

하늘갈래, 지옥갈래, 갈래라는 표현으로 나옵니다.

그래갖고서는 능엄경에 석가여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 다. 9갈래가 있었다.

이런 말씀을 분명히 하시더라고요. 또 제가 질문했습니다. 아미타불의 극락세계가 있느냐?

저는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저는 꼭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 아미타경에 그렇게 있다고 석가여 래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꼭 있다고 믿었는데 의심이 된 게 뭐냐하면 육조단경을 제가 공부하고 난 뒤에

육조혜능 대사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우리 마음에서 찾아야지,

서방으로 십만팔천리 가면 안 된다. 이것을 얘기를 하세요.

그때부터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을 하죠.

그 다음에 원효스님의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라는 게 있습니다. 아미타경 해설서죠.

그것을 제가 또 읽었죠. 강의를 하는 사람 이 참 드물더라고요.

조금 봤더니 거기도 역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마음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얘기하시는데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존재 안한다.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우리 선생님께 또 여쭈어봤어요. 아무리 혜능대사가 있다해도 선생님이 정답입니다.

역시 우리 선생님께서는 아미타불의 극락 세계는 중생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하신 방등부의 법문이라고 그렇게만 말씀을 하시고 혜능대사와 똑 같이 서방으로 십 만팔천리 가는 게 아니다.

혜능대사께서는 마음의 十惡을 없애면 십만을 가고, 八邪를 제하면 팔천을 간다.

그런 식의 답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즉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이라고 하는 것은 아상이 녹은 상태로 금강경을 실천을 하면,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깨친 이 의 말씀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밝은이, 깨친 이 밑에서 몇 십 년을 제가 금강경을 실천해 본 결과 제 나름대로 의 체험을 말씀드리는 최소입니다.

아마 도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라고 저는 그 정도까지 밖에 말씀을 못 드립니다.

그런데 소승인의 금강경실천을 하는 이 정도가 되면 처음에 아상이 없어지는 것을 저는 3단계로 종종 말씀을 드립니다.

❶ 아상이 쉰다. 아상이 굉장히 요란을 떨어요. 그런데 그게 좀 가라앉으면 고통이 좀 덜합니다. 그걸 아상이 쉰다고 그럽니다.

❷ 그런데 좀 더 자꾸 수도를 하면 아상이 거의 없어진 것처럼 보여요. 그것을 아상이 녹는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게 거의 성자의 반열에 오른다.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❸ 아상이 아주 더 없어진다. 비슷비슷한 용어라도 좀 틀리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소위 깨친 이, 견성성불한다는 것은 저는 요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隨說是經의 뜻은 아상이 녹는다는 뜻인데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상당히 지혜와 마음의 평화와 행복과 지혜를 느끼 고요.

저는 이 주경야선 가행정진을 하시는 분들은 종종 아상이 많이 녹는 것을 체험하시지 않나 요렇게 생각합니다.

상당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먹고 사는 문제 별로 걱정이 안 돼요.

우리는 아직 먹고사는 문제가 굉장히 걱정이 되는 수가 많잖아요?

어 떻게 사나. 죽을 때 되면 어떻게 힘들지 않나. 편안하게 죽는 길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듭니다.

그런데 아마 아상이 녹을 정도가 되면 그런 걱정은 다 없고요.

아주 마음의 즐거움과 평화와 안락함이 꽉 차지고 저는 여기서 금강경공부하신 분들도 상당히 그런 것을 상당히 체험하시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면 실지로 주위가 부드럽습니다.

이 금강경 공부를 하다가 여기서는 잘 모르죠. 여기서 100일 공부하다가 집에 한번 가보 면 밖에서는 좀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또 해외에 나가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이 가라앉는 것만큼 내 마음이 또 해외에 나가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이 가라앉는 것만큼, 내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만큼, 내 아상이 쉬고 녹는 것만큼 주위가 바뀌는 것 같아요.

주위가 동시에 바뀌면서 다 종종 찬양을 하고 그 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특히 해외에 나가서 많이 느꼈는데 아주 신기했는데 하늘도 나를 찬양하고

사람도 나를 찬양하고 심지어는 산천초목까지도 나를 반기는 거와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데 하는 것마다.

일이 잘 풀리는 느낌 그것을 천인아수라가 개응 공양한다.

라고 이렇 게 생각하고 그것은 세상 식으로 표현한다면 부귀영화가 넘쳐흐른다.

이렇게 돈이 굴러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저는 백선생님이 그런 표현을 잘 안 하시는데 절더러 꾸중을 하신 적이 있어요.

너는 돈이 길에서 굴러가도 그 돈을 주울 줄도 모르는 놈이다.

밝은이가 보면 우리는 흔히 밝은이는 돈하고 무관하다.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자꾸 하면 아상이 녹으면서 지혜가 생겨 서 자기가 돈 벌 마음만 내면 얼마든지 돈이 눈에 보인대요.

돈이 굴러가는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런 것이 저는 天人阿修羅皆應供養한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것이 소승인의 금강경실천입니다. 그 뒤에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이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아상이 더 녹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盡能受持는 금강 경 실천을 해요.

처음에는 믿고信, 올바로 해석하고解, 실천해서行 깨달음證까지 이것이 금강경의 信解行證이다.

이렇게 되면 아상이 상당히 녹고 없어지는 수준까지 갑니다.

금강경의 실천이 몸에 배고 골수에 사무쳐서 아상이 없어지는 상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견성이라고 얘기하고 그 뒤에 성불을 붙이면 바로 부처가 된다. 그런데 바로 부처가 돼서 석가여래와 똑 같이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불교는 그렇습니다.

견성성불하면 윤회까지도 없어지고 최후신이 된다고 그렇게 이해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깨 치면 영원히 고통은 다 사라져서 그대로 극락세계를 바로 체험한다. 요렇게들 대개 해석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한달음에 딱 깨쳐서 부처의 경지에 가면 다시는 지옥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윤회는 언제 완전히 없어지느냐 하면 부처가 될 때 없어집니다.

그런데 고통이 죽음이 착각이고 본래 없습니다. 잠이 착각이고 없어지는 것은 훨씬 그 전에 됩니다.

죽음을 마음대로 할지언정 윤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요렇게 아마 이해해야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달라이라마를 찾아가서 질문을 했는데 윤회가 없어지느냐? 아니다.

윤회는 있지만 생사가 본래 없음을 알 지만 윤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계속 도는 거예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싸이클을 번뇌는 주기적으로 돈다고 그랬는데 수도를 계속하면 윤회 싸이클은 계속 돌기는 돌지만 내가 편안함과 고통을 대개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어요.

전생 의 업에 의해서 주기적으로 번뇌는 돌지만 내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도는 것과 내가 정신을 차리고 고통 받을 때가 되었구나.

그렇게 알고 고통 받는 것과 틀리죠? 이것이 중생들이 윤회하는 것과 보살들이 윤회하는 것이 상당히 다르다. 저는 그렇게 이 해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한 번 더 들겠습니다.

盡能受持讀誦하면 是人은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이고요 則爲有佛커나 若尊重弟子니라 이경을 읽는 것은 결국 부처가 되는 것이다. 盡能受持讀誦하면 바로 아상이 없어져서 부처님처 럼 되고, 또는 훌륭한 제자가 있는 것처럼 모든 주위가 다 받들어 모신다.

저는 이런 것은 경전에 없습니다만 그 전에 금강경을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4금강 8보살(4보살 8금강)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4금강신장이 옹호를 한 대요. 그리고 8보살 이 보호를 한 대요. 4금강 8보살이 보호하는 것은 부처님이나 부처님에 준하는 사람이나 그렇게 하지 우리 같은 사람은 절벽 에서 떨어지면 죽죠? 그런데 이렇게 금강경을 잘 읽은 사람은 절벽에 떨어질 일도 없지만 절벽에 떨어져도 4금강 8보살이 잘 보호해주는 것을 느낀다고 그럽니다.

어느 수도하는 이의 얘기를 저는 들었습니다. 이건 실지로 농담이 아닙니다.

가다가 어디서 미끄러져서 절벽에서 떨어질 것 같은 정말 아찔했었다고 그래요.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수도하는 사람이었 는데 어디서 누가 뒤에서 바치는 것을 느꼈다고 그럽니다.

그걸 가피라고 그러지를 않습니다. 그이는 상당히 눈에 귀신을 잘 보는 사람입니다.

남이 장군의 귀신이야기 그건 너무나 유명하지만 자기가 어느 때 보니까 웬 귀신이 사람의 목을 누르고 있는데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더래요. 자기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겁니 다. 그래서 자기 눈에는 보이고 죽이려고 그래서 가서 손으로 탁 쳤대요.

그랬더니 그 귀신이 사라지면서 다 죽어가던 그 사람 이 다시 깨어났대요.

그 사람의 눈에는 보이고 그 사람은 상당히 영적체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한번 떨어지려고 그랬더니 뒤에서 누가 딱 바치는데요.

아마 여기서도 공부 잘 하시는 분들은 부분적으로 그런 체험을 하실 수 있을 거로 믿습니다.

저는 국내에서는 잘 몰라도 일본에 같이 가신 분들도 있어요‘ 스리랑카도 갔었고 저는 요번 대만 성지순례에도 천인아수라가 개응 공양하는 것을 많이 실감을 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수도를 더 하고 또 간다면 몇 년 전에 일본 북알프스라고 경치 좋은데 며칠 간 적이 있었 는데 거기도 천인아수라가 개응공양한 것을 느낍니다.

4금강 8보살이 옹호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실지로 닦으면 이게 미 신이 아니고요. 실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러면서 달마대사가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얘기를 한번 해 주신 일이 있습니다.

이 얘기는 하도 재미있어서 듣습니다. 달마 대사와 양무제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양무제가 복을 많이 짓고 복이 얼마나 많소? 그러니까 달마대사는 아무것도 없다.

나중에 달마대사?(양무제)는 감옥에 갑니다. 아들에 의해서 감옥에 갑니다. 비참하게 되었죠.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 어요. 그런데 그이는 달마대사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달마대사를 없애라고 그랬던 거예요.

군대를 보내서 달마 대사를 죽이려고 가는데 달마대사는 완전히 부처님의 경지에 못 이르셨다고 백선생님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자기는 아직도 살고 싶어요. 해야 될 일이 있는 것 같아요.

만일 살아야 되겠다는 욕심이 없으면 달마대사가 죽이려고 했을 때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살아야 되겠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애착이 있고 애착이 있기 때문에 양무제가 죽이려고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아! 내가 죽겠 구나. 하는 것이 알아진 거예요. 알아진다고 다 도인이 아닙니다.

아니, 부처님 같은 경지가 되면 몸뚱이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 문에 누가 죽이려고 해도 알아지지도 않아요.

아니, 알 필요도 없어요. 죽이려면 죽여, 나는 죽고 사는데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경지가 아마 부처의 경지인가 봐요. 그

런데 백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달마대사는 아직 몸뚱이에 대한 상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달마대사가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얼른 알아차리고 피하려고 했대요.

피하지도 못할 정도로 깜깜한 사람도 있지만 달마대사는 죽이려는 것을 감지하고 아 직 살아야 되겠다고 피했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도망을 갔다고 그래요. 막 도망을 가는데 쫓아온 군대들이 와서 보니까 없잖아 요.

달마대사가 도망 간 것을 알고 수십만의 군사들이 막 쫓아옵니다. 앞에 큰 강이 있는 겁니다. 강이 있으니까 달마대사도 이 제 더 이상 도망 갈 수가 없어요. 거기서 딱 멈춥니다. 몸뚱이에 대한 사랑이 있으니까 살기는 살아야 되는데 그때 일심으로 관세음보살 했다고 그래요.

이게 아마 기록으로 나왔던 모양입니다. 군사들이 막 쫓아가서 달마대사 근처까지 갔는데 홀연히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더니 노 젓는 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쫓아갔던 군사들이 닭 쫓던 개처럼 쳐다만 보고 있으면서 관음보살의 화신이다.

그 뒤로 지금 기록에는 달마대사 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백선생님한테만 들은 게 아니라 불교 학자들한테 아주 불교의 대승경전을 통달하 신 학자들한테 제가 들었습니다.

아주 머리가 굉장히 명석한 분입니다. 그게 기록에 나온대요.

그러면 則爲有佛커나 若尊重弟子는 달마대사는 자기 몸에 유해를 가할 것을 알고 지혜로우니까 알아차리는 것도 어렵죠?

막 달아날 때는若尊重弟子의 경지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알고 쫓아오니까 그때는 그냥 마음대로 해라.

죽음이 난 두렵지가 않다. 숨을 데도 없어요.

그러고 관세음보살 딱하고 그대로 관세음보살이 돼 버리는 겁니다. 부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쫓아온 군사들이 눈에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관세음보살이 딱 나타나면서 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 나갔는데

저 는 금강경공부 잘 하는 사람이라면 재앙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압니다.

그리고 재앙에 대비를 합니다. 그래도 재앙이 일어날 때 는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됩니다.

마음대로 해라 할 때는 이건 자기 몸이 아닙니다. 우주의 몸입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석가여래를 죽이려는 세력이 있었어요. 술취한 코끼리를 500마리를 풀어서 석가여래 앞에 돌진을 시켰다 고 합니다.

그때 석가여래는 이미 부처가 다 되신 분이 돼서 그 자리에 앉아서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서 두 손을 번쩍 들은 것 은 우리 손선생님 사진도 두 손을 번쩍 드셨는데 석가여래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고 얘기를 하죠.

그건 ‘마음대로 하라.’ 이겁니 다. 그런데 죽음을 통해서 또 다시 새롭게 몸을 받을 모든 인연이 다 사라진 분이 석가여래입니다.

두 손을 번쩍 드니까 여기서 오색광명이 나오고 오색광명 속에서 황금사자들이 나타났는데 성체코끼리는 사자를 이기죠?

그 런데 어렸을 때 사자한테 많이 당했던 사자의 울음소리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 코끼리라고 그럽니다.

황금사자가 나와서 으르 렁대니까 코끼리는 사자의 울음소리에 공포가 들려서 500마리의 술 취한 코끼리가 그대로 잠을 자고 무릎을 꿇고 다 앉았다 는 얘기가 경전에 나오는 것 같아요.

석가여래는 이미 최후신이야 다시 사람 몸을 받을 모든 어떤 번뇌 망상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아마 이렇게 보고 아직도 공포를 느끼고 알고 도망갈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하지만 부처가 된 것은 아니고 若尊重弟子의 경지가 되거 나 또는 부처의 경지가 돼서 모든 재앙으로부터 사라진다.

요렇게 이해하시면 어떨까. 이건 도인의 해석이라기보다도 제 생각 입니다.

요렇게 조금이라도 이해하시면서 경을 읽으시면

조금이라도 이해하시면서 읽으시면 금강경 한 몇 번만 읽어도 업장이 완전히 녹는 것 같고,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졸면서 읽어도 좋대요.

실지로 우리는 졸면서 읽어도 여러 가지 좋은 체험을 했는데

그런데 이해하면서 읽으면 당장 재앙이 소멸되고 상쾌함까지 느끼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감

사합니다.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