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샴발라
감사와 공경

금강경 [해석]

금강경 10분 [김원수 법사님 새벽법문]

금강 반야 바라밀 2023. 2. 11. 23:15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시느라고 대단히 수고가 많으십니다.

잠이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 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 말씀 드릴 내용은 금강경 10분인데요.

이 10분을 말씀드리기 위해서는 금강경 9분을 다시 한 번 반드시 복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9분에서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이런 성자의 4계급을 설명합니다.

금강경10분에서는 보살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아마 이런 것으로 봐서는 너희들이 깨달음의 순서에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는

성자의 단계를 거치고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뒤에는 보살이라는 단계가 있다. 이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는 성자와 보살이라는 성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 굉장히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라한은 어떤 정도고 보살은 어떤 정도고 벽지불은 어떤 정도 냐?

이것에 대해서 굉장히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저는 아라한이라면 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벽지불이면 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보살은 대단하다고 했지만 그것도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이라 할 것도 같습니 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혀 몰랐던 거 같습니다. 아마 이것은 설명으로서는 알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굉장히 위대하다는 그때는 위대한 지도 몰랐어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뛰어난 분이거니 이런 정도로 했는데 거기 가서 즉 도인 밑에 가서 제가 수도를 했어요.

수도를 하고 보니까 밖에서는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안에 들어가서 수도를 하고 보니까 그냥 평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화낼 때 화내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이 잘난 척할 때 잘난 척하는 것 같 고 그런데 조금 틀려요.

저는 위대성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생고생 끝에 인격이 좀 나아집니다.

또 고생고생 끝에 무능력에서 능력으로 바뀝니다.

고생고생 끝에 제가 인격 자가 되게 됨에 따라서 지혜의 눈이 커지고 우리 선생님이 정말 인격자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됩니다.

고생고생하다가 제 가 무능력자에서 능력자가 되면서 그 전에는 우리 선생님이 대단한 능력자인 것을 몰랐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제 속에 능력의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 우리 선생님이 이런 것을 일깨워준 선생님이 대단한 능력자로구나.

그때 비로소 그분의 위대성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참 그때는 몇 년 동안 공부했는데 확 달라져야 좀 달라졌다고 얘기하지 그날이 그날 같아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 약간은 달라졌지만 잘 실감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때 달라진 것 즉 그때 수도가 일생에 큰 약이 됐고 각종 난관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키운 동력이 됐고, 참 그래서 우리 선생님이 참 위대하다. 이런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그리고 보살, 이것이 왜 이렇게 분류가 됐나 이런 것을 알게 됐고 그전에는 법화경이 좋다, 좋다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그랬지만 법화경의 참 뜻은 하나도 몰랐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금강경을 이해하고 금강경도 그냥 이해가 아니라 고생, 고생 끝에 터득을 하니까 법화경의 면모가 보이기 시작 을 했어요. 법화경은 참 알기 어려운 것 같았었습니다.

종지용출품, 수많은 보살들이 땅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등장을 합니다. 또 다보여래품 이런 것은 도저히 정말 한 글자도 해석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래수량품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알려고 하면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느냐?

금강경을 알다 보니까 법화경도 알고 화엄경도 알고 이렇게 되 었던 거 같습니다. 대뜸 법화경 화엄경을 알려고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다. 금강경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은데 금강경도 책으로 해 서는 안 된다.

도인 밑에 있어야 된다. 거기서 자기 아상을 죽이고 복을 짓고 그리고 터득되는 게 있을 때 금강경을 이해하게 되고, 금강경이 이해가 됨에 따라서 법화경이 이해가 되고, 화엄경이 이해가 된다. 이렇게 보고 소위 禪 조사선, 간화선 역시 금 강경 이해를 통해서 처음에 조사선이 참 이해가 안 갔고, 간화선도 이해가 안 갔었는데 금강경이 알아지면서 이해가 됐던 거 같습니다.

이게 지금 서론입니다.

❶ 수다원은(7생을 왔다갔다하니까 깨달음의 시간 350년) 뭐냐 하면 우리가 알기 쉽게 얘기하면 入流라고 해서 성인의 유에 들었다.

즉 신심 발심은 했지만 완전한 성인이 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이다.

❷ 사다함은 一往來 한번 왔다갔다. 이렇게 되는 건데 한번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은 한 100년(깨달음의 시간)은 걸릴 것 같아 요.

성인은 성인인데 금생에는 안 되고 내생에 된다. 아상이 약간 쉬는 정도다.

❸ 아나함 不來인데 깨달음에 시간이 50년밖에 안 걸립니다. 잘하면 금생 말이나 바로 내생에 바로 될 수 있다. 아상의 녹음

❹ 아라한은 아상의 소멸 숙명통 알기 쉽게 말하면 아상이 없어져야 성인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천주교 방송을 들었습니다.

어떤 수녀가 와서 방송을 하는데 수녀의 방송을 듣고 천주교가 어떻게 이렇게 불교 와 똑 같은가를 생각했습니다.

뭐냐 하면 아상이라는 말을 안 쓰죠? 나라는 생각, 나의 욕심이 죽을 때 예수님이 나의 몸속에 임한다. 이런 소리입니다.

아상이라는 말은 안 쓰죠, 내가 한다는 욕심이 사라질 때 하나님이 나한테 임한다.

이런 얘기를 해요. 우리 가르침과 아주 유사하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아상이 없을 때 참나가 드러난다.

아상이 없을 때 부처님의 광명이 임한다. 아주 유사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다르게 이름 짓고 다르다고 하니까 불교나 천주교가 다르지 도인의 눈에 보면, 지혜의 눈에 보면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기도 아상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아상이 약간 쉬는 정도가 사다함이다.

근심 걱정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요새 입춘인데요. 화가 나도 한번 나면 말지 또 나고 또 나고 이걸 잘근잘근 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근잘근 씹다가 주경야선 가행정진을 하면 팍 쉬어요. 하루 만이라도 쉬어요. 이건 분별이 아상이 한 대 얻어맞은 겁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그러면서 기가 팍 죽은 모습입니다. 설치 던 놈이 난관에 부딪혀서 아! 안 되겠다.

잘난 척 하던 놈이 기가 팍 죽는 겁니다. 이것을 아상이 쉬었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좀 더 수도를 했어요.

아상이 쉰 것은 잘난 척하던 놈이 고개를 팍 숙인 것은 언젠가 또 다시 잘난 척 할 공산이 있습니 다.

그런데 완전히 Ko펀치를 해서 잘난 척 하던 놈이 아주 완전히 얘는 10년은 잘난 척하지 못하도록 도둑질도 재발을 하잖아 요.

그런데 되게 형무소에 가서 혼이 한번 나면 얘는 10년은 도둑질 못할 것이다. 아! 얘는 금생에는 도둑질 못할 것이다.

얘는 도둑의 뿌리를 뽑았을 것이다. 요렇게 단계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욕심을 어느 정도 쉰 사람을 사다함이라고 그러고 얘는 10년 동안은 다시는 도둑질을 안 할 것이다.

그런 성자가 된 것을 아나함(아상의 녹음)이라고 그러고 이 애는 도둑질의 뿌리까지 완전히 뽑혀서 영원히 도둑질 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 런 사람 아라한 이면 완전히 성자가 되는데 아상의 소멸이라고 그럽니다.

아상이 소멸되면 제가 알기로는 전생이 알아진대요. (숙명통) 우리는 전생이 알고 싶죠? 억울한 일이 있어요.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할까? 그럼 성인은 그럽니다. 전생에 네 가 한 그대로 받는 거야.

전생이 있기는 뭐가 있어, 어떻게 믿어 이러죠? 그런데 수도를 자꾸 하다보면 정말 전생이 있는 것이 알아지는 가 봅니다.

저는 인제 그 정도로 믿게 되었어요. 그리고 전생이 실지로 알아지게 된대요. 알아지게 도면 억울할 것 하 나도 없어요.

전생을 모르니까 억울하다. 그게 아라한의 정도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건 제 말이 정답이라고 얘기하지 않 습니다.

그런데 전생을 아시는 도인 밑에서 제가 수도를 하고 보니까 이런 수도의 체계를 제가 세웠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런데 요렇게까지도 아마 얘기하는 분이 좀 적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금강경 10분은 좀 틀려요. 보살의 얘기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보살과 아라한의 구분을 잘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라한이 더 우위인 것 같아요. 보살이 위인지, 중간인지, 아래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법화경에도 나오지만 출발부터가 틀려요. 보살의 길이 있고, 아라한의 길이 있다고 하면 본래 소 질이 아라한으로 가는 사람이 있고, 보살의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아라한의 길을 사슴의 수레로 보고 보살은 소의 수레라고 얘기합니다. 기호에 따라서 틀립니다. 제가 그 구분을 잘 못했는데 지금 선생님 말씀을 종합해 보고 제가 법화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데

보살이 뭐냐 하면 금강경 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아라한 소승 그것은 양의 수레입니다. 이것은 아상만 없어서 열반에 들면 돼요.

남의 일은 상관이 없습니다. 국가 사회는 상관이 없습니다. 즉 미얀마에서 하는 수행법은 완전히 소승의 가 르침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보살의 가르침은 대승불교라고 그러죠?

나의 고통만 없어지면 된다. 남은 모른다. 남이라는 것은 본래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합 니다. 남이 본래 없는 것은 맞을지 모르는데, 남이 본래 없는 줄 알고 그런 생각을 갖는지 여기서 그것은 별 문제입니다. 그런 데 대승은 나만 구원받는 게 아니라 나를 구원받으려면 모든 사람을 구원받도록 원하는 마음이 돼야만 내가 진정한 구원을 받는 다. 요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릇이 좀 큰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걸 대승자라고 그러고 소의 수레라고 얘 기를 합니다.

너는 소의 수레를 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상만 없어진 게 아니라 인상도 없어집니다. 그런데 중생상, 수자상은 뭐냐?

인상에서 나온 겁니다. 즉 아상과 인상 밖에 없어요. 중생상 수자상은 인상에서 파생된 겁니다.

10분 설명을 드립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 昔在然燈佛所에 於法에 有所得不아 -

수보리야, 내가 연등불소에서 진리를 깨달았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우리는 진리를 딱 깨쳤으면 인가받았다.

우리가 요전에 서울대법회할 때 전단지를 들고 봉은사에 갔대요.

김원수 법사가 세종 대학에서 법문을 한다. 그랬더니 아주 봉은사에서 푸대접을 받았대요.

김원수 법사 진짜 깨쳤어? 인가 받았어? 거기는 깨치고 인가 받는 것을 되게 거(중요시) 하고 인가 받았어? 하면 대개 증명할 방법이 없죠. 사실 그런데 인가받았다고 설치면 사실 인 가받은 게 아니다. 라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부처님이 연등불전에 수도할 때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가 받았느냐?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보리존자가 於法에 實無所得(중생상의 소멸)이시니이다 - 인가받은 티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야 진짜 인가 받은 것이다. 그런 정도가 된 것 을 중생상의 소멸이라고 그럽니다.

인상을 둘로 나누면 중생상+수자상입니다. 아상의 소멸이 최고의 목표가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인상까지 즉 중생상+수자상을 없애는 것이 보살의 경지고 이것까지 없애면 부처가 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또 부처님께서 菩薩이 莊嚴佛土不아 - 세상의 사람을 교화시키고 절을 짓고 경을 찍어서 또 극락세계를 만드는 것을 장엄이라 고 그럽니다. 장엄을 하고 나면 아! 참 나는 보람 있다.

제가 여행갈 때 날씨도 쾌청하고 보람도 있고, 이걸 원했다고 늘 말씀드립니다.

장엄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리고 나는 장엄 했다. 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장엄했다. 라고 하면 벌써 수자상에 걸렸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장엄은 그런 데 그런 티를 안 내요. 장엄이라는 것은 날씨도 좋고, 보람도 느끼고 깨달음을 얻고 이게 장엄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분별 이 완전히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뿌리까지 다 없어지기를 기원할 정도로 속이 넓은 것이 진짜 장엄이다. 則非莊嚴일새 是名莊嚴(수자상 소멸)이니이다 이런 정도로 완전히 수자상의 소멸이 되는 겁니다. 이런 중생상, 수자상이 소멸 되지 않으면 이름을 지어요. 너는 아라한이다. 수다원이다. 사다함이다. 아나한이다. 보살이다. 이렇게 이름을 쭉 짓습니다. 너 는 병자다. 너는 정신병자다. 너는 인격파탄자다. 배은망덕자다.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됩니다. 그런데 이름을 짓게 되는 것은 중 생상, 수자상에 다 머무르는 것이 됩니다. 그럼 不應住色生心이며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며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見性成佛)이니라 - 그럼 색에도 주하지 말고,

성향 미촉법에도 주하지 마라. 결론이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굉장히 추상적인데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름을 짓습니다.

특히 좋은 이름도 짓고, 나쁜 이름도 짓습니다.

정신병자다. 요새 입춘인데요. 멀쩡하던 아주 잘 지내던 부부가 불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수가 있습니다.

또 나는 천년만년 법사님의 바지 가랭이라도 붙들고 영원히 따르겠습니다. 대개 그러던 사람이 보따리를 싸고 가는 수도 있습니다.

대개 입춘 때 요런 일이 많 이 일어납니다. 그럼 나는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배은망덕자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그런데 정신병자라고 이름을 짓고 배은망덕자라고 이름을 짓고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면서 분노를 일으키죠.

분노를 일으키다 보면 내 마음이 먼저 괴로워요. 그런데 우리는 이때 바치라 고 했지. 바치기가 싫습니다.

응징을 하고 싶어요. 단절을 하고 싶어요. 단절을 하려고 하다가 보면 자기가 먼저 괴롭고 자기가 먼저 재앙을 당할 것 같아요.

그래서 약간 알아차리고 난 뒤에는 응징, 복수, 단죄하기보다는 이 마음을 바치라고 했지 그러면서 자꾸 비치면 그래서 내가 무심해집니다. 무심해지게 되면 아! 저 사람이 원인이거니,

저 사람이 배은망덕자거니,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거니 저 사람이 정신병자거니 이렇게 이름 짓는 것이 없어져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집니다.

그와 전생에 맺었던 업보가 풀릴 때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꼭 이상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이가 나한테 못되게 하는 짓이 거의 다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잖아요. 아이 이 녀석, 배은망덕한 녀석, 분노가 딱 치밀어 오를 때 그 분노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배은망덕은 점점 더 장난질을 더 칩니다. 그런데 미운 마음을 자꾸 바치잖아요.

그애를 봐도 화도 안 나요. 길에서 만나도 그전에는 싹 외면하다 가 이제는 태연하게 대해요. 그때 내 마음이 무심해 집니다.

그런데 아직 무심해지는 것 갖고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고 까 지 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까지는 됩니다. 무심하면서 업보 해탈도 됩니다.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은 이것은 한층 더 들어가야 돼요. 무소주하야 그 마음을 내라. 달리말해서

‘부처님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마음을 내라.’는 뜻입 니다.

부처님이 뭐라고 그랬느냐? 저 배은망덕자에 대해서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네 모습인 줄 알아라.’ 이렇게까지 얘기합니다. 그래야만 진심의 뿌리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나한테 알짱거리고 괴롭히는 존재들이 주위에 아마 많이 발견됐을 겁니다. 요새 특히 입춘 때, 구정 때 이혼율이 많다는 것은 법무부통계 이혼통계에 보면 10%정도가 확실히 많대요. 입춘 때 이런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미워하죠. 이혼 할 때 웃으면서 이혼하는 사람 봤어요? 저런 배신, 네가 그럴 줄 몰랐어. 그럴 줄 모르고 만난 내 눈이 썩었어.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증오합니다. 그런데 인제 바치라고 했지, 자꾸 바치다보면 ‘왜 저럴까’ 하다가 ‘그럴 줄 알았어.’로 바뀌면서 무심해지는 데 무심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저쪽에서도 배은망덕한 마음을 버리고 참회하는 것을 저는 종종 체험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수녀님이 동생인 정신병자 때문에 수녀에서 환속을 해서 걔 때문에 속 썩고 또 썩고 쟤 때문에 내 인생도 망 치고 몇 십 년을 해도 하나도 나아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몇 번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이 것은 몇 번 들어도 괜찮은 내용이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그 애를 정신병자라고 이름 짓지 마라. 나를 괴롭히러 온 업보라고 일단 얘기를 해 줘라. 그것도 자꾸 바치면 무심해진다. 무심 해지면서 쟤가 정신병자적인 소질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제 말 그대로 됐습니다. 그랬더니 법사님 말 그대로 맞아요. 하 지만 나는 점쟁이가 아니다. 도인이 시키시는 대로 일러줬을 뿐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층 더 나아가서 ‘쟤는 나의 진심을 일깨워주러 온 고마운 부처님이 보내주신 사도다.’ 이 생각을 하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건 죽어도 안 된대요. 그저 무심해지는 정도만 되고, 그건 부처님이 쟤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네 모습이다.

이렇게 일러주고 있어요. 그런데 내 모습 이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거저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이제는 무심해졌다. 무심해지는 정도까지는 됐어요.

그게 不應住色生心이 며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입니다.

그런데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은 부처님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마음을 낸다는 뜻인데 부 처님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면

“그것은 쟤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네 모습이야,

쟤가 지랄 발광을 하고 배은망덕을 하고 별짓 을 다하지만 그걸 가지고 미워하고 병자라고 이름 짓지 마라.

이게 바로 네 모습이고 네 모습이 이렇게 추한 모습이라고 일깨 워주니 그 얼마나 고마워, 그 바람에 너는 성자가 되는 거야,

” 이게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받들어서 실천하는 것,

이 것이 應無所住 而生其心입니다. 아! 내가 저이를 병자라고 무시했고, 배은망덕자라고 증오했지만 그것이 내 모습이야.

내가 이렇게 추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어, 자신의 업장이 태산 같은 줄 알라고 그랬지 그 말이 진짜 맞네.

그렇게 깨우쳐지는데 이걸 견성이라고 그럽니다. 내 추한 모습 이 가짜인 줄 알았는데 정말 추한 모습이에요.

그런데 추한 모습이라고 그러면 자살을 하지 동의하고 싶지가 않죠? 내가 얼마 나 잘 났는데. 정말 이러고 싶어요.

‘추한 모습’이라는 이 소리를 ‘가장 못난 줄 알아라.’ 이 소리가 참 듣기 싫었어요.

그런데 이게 진짜 참회가 되면 아! 저 지랄 발광을 하고, 저저저 미친 짓 하는 저게 얼마나 증오를 했는데 알고 봤더니 저게 내 모습이래. 내가 저런 추한모습으로 잘난 척 했으니 아! 참 앞으로는 마음잡고 하심 해야 되겠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게 바로 인제 투철하게 깨치면 자기 모습을 보는 것 이것을 見性이라고 한다는 것, 백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이때는 상대가 완전히 참회하게 돼요. 나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은 그렇게 아셔야 됩니다.

제일 나중에 부처님이 譬如有人이 身如須彌山王하면 於意云何오 是身이 爲大不아 이렇게 했습니다.

- 어떤 사람이 몸뚱이가 수미산왕만 하다. 이게 실지로 히말라야 산처럼 크다. 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굉장히 위대하죠. 저는 히말라야를 한 두어 번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네팔의 포칼라. 안나푸르나.

마차추차레를 보니까 하늘나라. 오대산은 뒷동 산 같더라고요. 오대산이 참 큰 줄 알았어요.

설악산은 조금 더 큰 줄 알았어요. 알프스는 더 크더라고요. 그런데 알프스를 보다 가 안나푸르나 포칼라를 보니까 정말 이거는 하늘 세계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몸뚱이가 그렇게 히말라야처럼 크다. 라는 뜻은 그것이 실제로 크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위대하다.

라는 것 을 의미합니다. 是身이 爲大不아 정말로 위대하냐?

그랬더니 佛說非身이 是名大身이니이다 아닙니다. 이거 해석이 좀 쉽지가 않아요.

공자님의 제자 안연이 있습니다. 저도 안연의 심정을 조금 느끼는데 안연은 일찍 죽었어요.

그러니까 스승인 공자님이 막 웁니다. 저 내 사랑하는 법제자가 일찍 죽었으니 내 법을 누구한테 전해야겠나 하고 우니까 제자가 그럽니다. 성인이 왜 웁니까? 그랬더니 내가 저럴 때 안 울고 언제 우느냐? 그러고는 더 울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하는 제자를 잃으면 스승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그런데 공자의 제자 안연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우리 스승은 우러러볼수록 더 높다. 그리고 테스트하기 위해서 뚫으려고 하면 더 단단해 앞에 계시 듯 하면 어느 듯 뒤에 계시고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갈 수가 없어.

우리 스승은 위대해 그 표현이 멋있어서 제가 많이 써 먹었어요.

우리 스승의 노래가사는 바로 공자의 제자 안연이 바로 스승을 두고 거기서 따온 게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

이게 우리 스승의 은혜에 나오는 겁니다. 그걸 보고 공자는 높고 안연은 별로 위대하지 않다. 이렇 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것을 발견한 것은 바로 안연이 위대하다.

즉 대단히 위대하다. 는 것을 본다는 것은 그 속에 위대성이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백선생님이 위대하고 인격자인 것을 잘 모르다가 제가 인격이 뭐고, 지혜가 뭐고, 능력이라는 것이 알아지면서 아! 백선생님이 정말 인격자구나. 이걸 알아졌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연은 참 그 스승이 위대하다고 얘기했을 때는 자기 속에 어떤 위대한 무엇을 발견했으니까 위대하지 생전 나는 누굴 존경해 본 적이 없어.

다 시원찮게 보여 이런 사람 들 많죠? 그러다가 이 금강경 공부하고 나서 아! 존경하는 사람이 생겼어.

이렇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인격이 어느 정도 뿌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격자가 아닌 사람은 맨 졸로 보인다고 하죠. 시원찮게 보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는 인격자가 아닙니다. 정말 인격자라면 아! 저 사람은 정말 위대해, 대단해 이렇게 하는 사람은 자기 속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譬如有人이 身如須彌山王 위대 하다. 라고 하냐?

佛說非身이 是名大身 아니다. 그 사람 마음속이 위대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것이다. 요렇게 해석을 하셔야 됩니다.

실 예로 이런 게 있습니다. 잘 믿었던 친구가 배신을 하고 갑니다.

그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속담에도 그랬지 이럽니다.

그걸 갖고 백선생님께 누가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백선생님께서는 아! 그렇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니라.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대답했을지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십니까?

너는 몇 겹 사람이냐? 네가 몇 겹 사람이기 때문에 네 눈에는 몇 겹 사람 밖에 안 보인다. 이 뜻입니다.

그러고서는 한 방 맞았 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문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세상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그 사람을 깨우치지 못합니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인 줄 알아라.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멧돼지의 눈에는 멧돼지만 보입니다. 세상은 악마들의 소굴이다. 자기가 악마니까 세상은 천사의 모임이다.

자기가 천사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이게 바로 깨우치는데 견성하고 應無所住하고 而生其心하는 뜻입니다.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이 법문 들으신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짓기를 발원 드립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