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문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재앙은 소멸하고 소원은 성취해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은 예수님은 법받은 미륵존여래불 의 42페이지에 있는 내용이 되겠습니다.이 내용은 제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찾아 공부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으나 나는 한 번도 그들을 제자라고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시봉이 없었다. 그들이 다 부처님 같은 존재인데 어찌 제자라고 할 것인가 이제 이런 말씀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은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나에게는 제자가 없다라고 그렇게 여러 번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과연 선생님의 제가 말씀하는 선생님은 백 선생님을 얘기합니다.
이 선생님이 하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선생님 나오면 그 용어가 정확히 얘기하면 백 선생님이 되겠죠 그분은 항상 나에게는 제자가 없다. 특히 상좌가 없다 상좌를 두지 않는다. 이것이 그분의 특징이고 또 어느 때는 나는 가리키러 온 사람이 아니다. 나는 여기 온 사람들의 좋은 점 또는 깨칠 점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항상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다.
나는 여기 오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부처님처럼 생각한다.이런 표현을 가끔 가끔 쓰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선생님 은 꾸중도 하시고 야단도 드시고 수도자로서는 가야 될 길이 이런 길이다.
옛날에 엄한 선생님이 제자한테 하시듯 그렇게 똑같이 하시고서 실제로 말씀만은 나는 제자가 없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생각을 해요.
엄한 선생님이고 진정한 스승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공자님 같은 분도 삼천의 제자가 있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마는
왜 백 선생님께서는 나한테 제자가 없다고 얘기를 하실까 그리고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보고 배우려고 한다라고 얘기를 하실까 그런데 그 뜻을 제가 헤아릴 길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제 쭉 지나다 보니까 아마 그 말씀은 옳았던 것 같아요.
옳았고 그러면 우리들한테 왜 말투도 하대를 하고 왜 꾸중을 하셨느냐 제자로 보지 않고 부처님으로 보셨다면 당연히 존칭을 쓰고 공손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건 나중에 그런 얘기를 하세요. 내가 처음에 금강산에서 3년을 혼자 수도를 했다.
혼자 3년을 하고 보니까 다른 사람의 전생도 이 그리고 중간에 나를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원체 유명하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한명도 제자로 허락하지 않았다. 하소연하러 오는 사람한테도 내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혼자서만 수도했다. 근데 이제 삼 년을 지나고 나니까 숙명통 전생이 어떤가를 훤히 알아채면서 사람들이 물어오는 각종 난제에 대해서도 대답해 줄 수가 있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제자삼아 주십시오하고 매달리는 사람들을 제자로 받아주게 되었다. 아마 제가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사람들을 다 부처님처럼 아마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도 상당히 존칭을 쓰셨다고 근데 존칭을 쓰다 보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몰려드는데 이게 꾸중이 꼭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그럽니다. 제가 이제 제 생각을 못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꾸중이 있어야 정신 차리죠. 꾸중 안 하면 정신 안 차립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 여름에 되게 졸립니다.
여름이 오면 굉장히 졸립니다. 금강경 오분마다 코를 고는 사람이 있었어요.
5분 있다가 그런데 그럴 때 저희처럼 죽비를 들고 오시지 않고 그냥 렌턴들고 밑에서 오시는데…
졸지 마시오. 졸지 않을까요? 저처럼 죽비쳐도 끄떡도 안 해요. 그때 아마 그런 일을 금강산에서도 여러 번 체험을 하셨죠
이런 사람한테는 엄한 꾸중과 경우에 따라서 적당한 체벌도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셨고 어느 정도 때를 지난 뒤에는 꾸중을 하시고 체벌을 하셨다고 체벌이 어떤 체벌이냐 하면 따귀 때리는 체벌이 아닙니다. 엎드려라 볼기 까라 매를 몇 대 때리셨던 이런 체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존칭을 사용하였고 일체 나무라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들이 마음 닦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만한 마음을 키우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제자들에게 말투를 듣고 탐심, 치심 등의 분별심을 일으킬 때 엄하게 꾸중하여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자 대중의 기강이 서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 훈련된 군대와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대중도 처음에는 꾸중을 두려워하다가 차츰 꾸중이야말로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표시로 알게 되어 감사하게 되엇다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꾸중을 좀 해달라는 사람까지 생겼다. 하지만 제자들을 잘 가르친다고 꾸중한 것이 여러 생 습관이 되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꾸중은 제자들에게 도움은 되었지만 나는 그 습관으로 인해서 치아가 급속히 나빠져서 일찍에 의치를 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때만 하더라도 이미 이제 존칭을 잘 안 쓰시고 그런데 이제 특이한 경우가 있었어요. 우리보다 훨씬 아랫사람이었는데 공부하러 찾아왔습니다.
경상도 사람이었습니다. 찾아왔는데 이제 대뜸 백박사님께서는
하대를 합니다. 너 어디서 왔니? 또 손주 벌이니까 대개 하대해도 그때는 그게 듣기 싫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한테만은 존칭을 썼어요.
우리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그래요 이제 아마 사연을 얘기를 했더니 결국은 이제 수도장에 들이게 했는데 수도장에 들어온 뒤에는 존칭을 쓰지 않으시고 똑같이 야단도 치시고 이랬던 것 같습니다. 근데 왜 그 친구한테는 존칭을 쓰셨을까
이게 참 의문이었어요. 그 친구가 한 일 년 참 얌전하게 잘 있더니 일 년 지나고 난 뒤에 자기가 뭐 깨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깨치기 시작을 하니까 어느 정도 깨쳤냐면 전생을 훤히 알 정도로 깨쳤다는 거예요.
전생을 훤히 알고 보니까 너는 뭐고 너는 뭐고 너는 뭐가 돼서 그 전에 새까만 선배로 알았던 사람이 다 시원치 않게 보이게 됐다는 겁니다. 그래 갖고서는 그 뒤로 하루 사이에 갑자기 오만해지기 시작을 해요. 뽑내기 시작해서는 깽판을 치고 심지어는 선생님께도 발길질도 하고 이렇게 했던 겁니다. 결국 거기서 쫓겨났는데 이제 나중에 이제 알고 봤더니 이제 백 선생님은 그의 전생이 누구다 이런 얘기를 안 하십니다. 알고 봤더니 어떤 제자가 하나 봤어요. 일본 일제시대 때 우리들은
아마 스님 노릇을 했고 이랬던 사람이었는데 그 친구는 전쟁의 일본 헌병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는 스님들을 잡아서 야단을 치고 이제 아마 일했던 그 원한을 갖고 사실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자기 한 불이하러 우리들한테 좀 당하기도 했겠죠. 그래서 왔었다라고 그렇게 결국은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왜 처음에 존칭을 쓰고 하대를 안 하시고 왜 존칭을 썼나 그걸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딱 보시면 되게 전생을 아십니다. 그런데 전생에 일본 놈의 일본 놈이었고 일본 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한국 승려들 독립운동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괴롭히고 또 괴롭히다가 당하니까 그 한을풀러 눈에 싹 오는 게 보이니까 그 사람은 제자가 되러 온 사람이 아닌 걸 너무나 처음부터 분명히 아니까 이 사람을 하대로 하고 제자로 가리키려는 생각을 아마 못 하셨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그때 처음에 오자마자 40만 원 자기가 은 총 재산을 다 백 선생님한테 받치면서 저희 그것을 바치오니 저를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했어요. 그때 40만 원이면 어느 정도냐 하면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초봉이 이만 원이었을 때입니다. 초봉이 이만 원일 때 사십만 원이면 지금 몇천만 원 수준이 됩니다.
지금 대졸 초봉이 뭐 한 그것에 이십 배를 생각해 보세요.
그런 돈을 갖다 바치면서 제자 삼아 주시오 했는데 무시무시한 놈인 걸 알고서는 그 돈을 안 받으셨죠 받았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봐서 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라고 하면은 그때는 하대를 쓰고 꾸중도 하시고 이렇게 됐던 것 같아요.
근데 결국은 그 친구는 공부를 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자기 한 풀이 하러 와 법당을 흔들려고 왔고 법당을 뒤 엎으어 왔고 법당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안으려고 왔던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마 처음부터 존대를 쓰시지 않았지 않겠느냐 이게 제 생각입니다. 이제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여야 만장일치로 인성교육 진흥법이라는 것을 10여 년 전에 국회에서 통과됐던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애들 버릇 없는 나라로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은 대학에서는 좀 들은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에서도 지방대학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교수가 딱 들어가면 절반은 들어가서 엎드려서 잔대요. 안 믿어지시죠? 근데 서울의 인류 대학 교수들은 우리가 학교 댕길 때하고 똑같아요. 선생님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교수들도 65세 정년 퇴임이지만 더 하려고 그래요. 70세에서 석좌 교수 하려고 그래요.
그런데 지방에서는 이게 지금 한국은 거의 인성교육은 제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류 대학은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 있어서 인성교육이라는 자체는 없어요. 이미 없고 애들이 예절은 바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다 지식만 가르친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인격교육 인성교육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가르치는 선생도 없습니다.
가르칠 실력 있는 선생도 없습니다. 그런 인격자도 거의 드물 거다. 지혜교육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지금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 지식 교육 정보 교육 이런 것만 쭉 시킵니다. 시험 쳐서 패스하는 데 필요한 교육 즉 대학은 뭐냐 하면 입시 고시나 각종 고시를 위한 준비 준비 전 단계를 현재 대학 교육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대학에서는 어떤 창의력 교육을 시키지 않고 있는 것은 현실이에요. 근데 이제
지금 대학교수들 창의력 교육 시키고 지식교육 이나 정보 정보 수집 교육 테크닉 이런 것만 가리키는데 그것도 수명이 길지 않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요새 흔히 산업혁명 시대라고 얘기를 하고 ai 시대라고 많이 얘기합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지식 교육만 시키는 전문가들 교수들은 교사 교수 의사 판사 검사 ceo까지 다 포함됩니다. 모두 다 인공지능이 다 대신한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대학이 거의 없어질 정도가 된다라고까지 얘기를 하는데 이건 틀린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문제가 굉장히 많아요.
그럼 그때 유일하게 시킬 수 있는 교육이 뭐냐 살아남는 교육이 뭐냐 하면 인성 교육과 지혜 교육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은 영원히 필요한 교육이고 또 존재해야 할 교육이고 아마 그런 교육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여기 나오시는 것은 뭐 때문에 오시느냐 새벽마다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러 오시죠 뭐 물어보시면은 나는 글쎄요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여기 설문조사를 안 해봐서 모릅니다.
근데 설문조사 안 해봐도 되게 짐작으로 전 알아요.
그저 제앙 소멸하고 소원성취 하고 미륵존여래불 에 힘을 빌어서 아마 그러신 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데 소수는 다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인격자가 좀 되려고
인격자가 되려고 하신 분 얼마나 드시지 그런 분은 제가 아주 대게 환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나을 수도 없는 게 저도 뭐가 좀 잘 됐으면 ~ 재앙이 소멸됐으면 소원이 성취됐으면 하는 그런 마음으로 백 선생님을 찾아갔는지도 모르기 때문 입니다.
근데 자꾸 수도하다 보니까 재앙 소멸 소원성취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소원성취 되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몰라 요
또 마음만 먹으면
단 한마디의 모든 재앙은 다 날아갈 수도 있는 이런 위대한 존재인 걸 모르니까 그러니까 제앙 소멸 소원성취 하고 그렇게 위대한 존재라면 곧 뒤에 우리는 무슨 원을 세워야 되느냐
하면 인격자가 되고 지혜로운 자가 되는 그런 원만 세우면 다 되는 겁니다.
그런 교육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고 그럼 그런 교육은 온라인 교육으로는 안 됩니다.
오프라인 교육으로 해야 됩니다.
오프라인 교육을 해야 되는데 특히 거기에는 체벌이나 꾸중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체벌이나 꾸중이 없이 존칭을 쓰면서 교육을 했다고 칩시다.
인공지능이 하는 교육은 인상 쓰고 체벌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존칭 안 쓰고 체벌 없다라고 생각하고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는다면은 아상이 죽습니까? 안 죽습니다.
아상은 절대로 안 죽습니다.
미국에서 경우인데
미국에서는 아직 소수가 교수가 강의하면 다리를 쭉 두 책상 다리를 꽂아놓고서는 얹어놓고 강의를 듣는데요. 아직은 한국에서는 그게 안 통합니다. 그러면 정말 야단을 치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러건 말건 가만둔대요. 미국 교수는 교육자가 아니라 정말 지식 전달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미국 대학 교수는 얘기 들어보면 꼭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를 시킨대요.
한국에서는 아직 교수 노조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미국 쪽에서는 교수 노조가 있을 정도인데 교수 노조라는 것은 자기를 스스로 노동자로 여기는 거거든요.
정리해고 시키니까 정리해고에 반대하기 위해서 노조 결성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근데 아직은 한국에서는 교사나 교수는 정리해고를 안 시키고 고등학교는 전교조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한국의 전통 개념으로 봐서는 교수는 성직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인성 교육을 시키는 그런 위대한 분이기 때문에 성직에 속하지 노동자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근데 여기는 이제 모자 쓰고 오는 분들도 많은데 새벽에 가행정진 올 때 모자 쓰고 오는 분들 많은데 그걸 벗으라고 그래야 됩니까 저를 바꿔야 됩니까? 저는 이제 야단치지도 못하겠어요.
이제 가만둡니다마는 내가 좀 아끼는 사람이 그렇다면 나무일 거예요. 근데 모자 쓰는 걸 가만두는 것은 내가 아끼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확실합니다. 여기 들어오시면은 부처님 계신데 들어와야 됩니다. 부처님 계신데 들어오면 모자 쓰면 안 돼.
예전에 우리 조선시대의 교육이 얼마나 심했는 줄 아세요? 우리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자기 자기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그러니까 우리 국어 선생님은 우리보다 한 30세가량 연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할아버지라면 그 이보다 한 50세 연상이었죠. 백몇십세 된 사람이었어요.
그분이 어렸을 때 얘기를 하는데 자기 할아버지가 군수 군수였답니다.
군수인데 옆에 기생을 끼고 누워 있는데 손주를 갖다가 옆에서 딱 서서 지켜라.
할아버지가 그런 데였고 군수였는데 그러니까 옛날에는 아버지 말이면 죽으려면 죽는 시종 해야죠.
딱 서서 하는데 모기가 하나 날아왔대요.
모기가 하나 날아오니까 아 가려워서 싹 긁었더니 할아버지가 그냥 날 목침 있잖아요.
그걸 갖다 집어던지더랍니다. 그래서 야 그때 조선시대가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정말 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교육이 옛날 양반 교육은 철저했죠. 그 뒤로는 애들을 자유롭게 키우는 것으로 했다.
이런 얘기를 우리한테 해주셨는데 그러니까 진짜 인격자가 나오고 군자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이요 너무 자유 자유 자유 민주민주민주 이래서 그런지 험한 말하면 학부모가 들고 일어나고 군대 가서 상관이 뭐 기압 주면 들고 일어나고
수업 시간에도 엎드려 있고 모자 쓰고 있고 이게 교육이 됩니까 안 됩니까? 그러니까 뭐 아시다시피 얘기했지만 초등학교에 선생님이 나가면 뒤에 대고 그 자리에서 욕하는 게 습관이래요.
저 같으면 선생 노릇 안 하겠어요. 현장이 이렇습니다.
이게 인성 교육이 안 됩니다.
근데 인성교육과 지혜 교육 이것은 무엇이냐 그런데 인성교육을 해서 인격이 없는 사람이 인격자가 되는 겁니다. 즉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으로 변했다고 칩시다.
또 지혜교육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무지한 사람이 지혜 교육을 통해서 지혜로워졌다라고 하는 것이 지혜 교육입니다. 그렇잖아요 지혜로운 사람이 지혜 교육되어 그건 뭐 지혜교육 성과라고 할 수가 없죠.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되냐면 아상이 죽어야 됩니다.
지식 만 갖고선 안 됩니다. 인격이 없는 사람이 즉 화 잘 내는 사람이
인성교육이라는 걸 받아서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 됐다.
무지한 사람이 지혜 교육을 받아서 지혜로워졌다 슬기로워졌다.
이렇게 한번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결과가 뭐냐 하면 운명을 바꾸는 것으로 나 운명을 바꾸는 건데 운명을 바꾸려면 아상이 없어져야 돼요.
아상이 없어진다는 것은 무식업 업보업장을 해탈함으로써 이제 이게 이루어지고요.
이런 것은 온라인 교육으로 안 된다는 겁니다.
아상을 죽이려는데 어떻게? TV로 교육한다는 거죠.
그럼 티브이로 교육하면요 다리 뻗고 싶을 때 뻗어요 안 뻗어요?
차 마시면서 온라인 교육 할 수 있어요. 근데 지금은요 다 추세가 온라인입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는요 다 온라인이에요. 유명한 법륜 스님도 그냥 옛날에 했던 거 또 재탕 재탕하면서 다 집회 교육이 없어요. 이 온라인 교육으로 과연 인격이 없는 사람이 인격이 있어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오프라인 교육으로서 훌륭한 스승 밑에서 꾸준과 체벌을 통해서 아상이 소멸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그리고 운명이 바꿔줬다고 보기 때문에 이 교육은 안 됩니다.
또 제가 선생 노릇을 여러 해봤기 때문에 잘 안 돼요.
반드시 꾸중이 필요하고 사랑할수록 꾸중을 더 하게 되고 체벌을 하는 것은 더 사랑하다라는 증거다라고 봅니다. 물론 체벌을 하면서 자기의 개인적인 어떤 선입견이나 이기심이 들어가죠.
그런 것이 들어가지만 진짜 사람을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가 실례를 하나 듭니다.
대한민국의 천재로서 이휘소 박사를 사람들은 꼽습니다.
이희소 박사는 그 절구통 수자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효봉 스님을 절구통 수자라고 그러지만 금강산 같은 데 들어가서 한번 딱 수도를 하면 이 궁뎅이가 붙을 때까지 일어서지를 않았대요.
그래서 절구통 수자라고 그리고 그이를 깨친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휘소 박사는 어땠냐 하면
집념이 굉장히 강해서 한 번 딱 연구를 하면 팬티가 썩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별명을 들을 정도로 집념의 사나이로 이렇게 소문난 사람이
1935년생이면 지금 살아있어도 90세도 아직 안 됐어요. 근데 이가 42세 때 세상을 떠났어요.
누가 보면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천재라고 얘기를 하고 근데 그가 만약에 인성교육이나 지혜 교육을 받아서 무지했던 사람이 지혜롭게 되고 그리고 인격이 없다가 더 인격이 있게 됐다라면은 즉 운명을 바꿨다면 그 이는 42세에 요절 오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소사에 와서 백일을 수도했던 어떤 젊은이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우리보다 몇 살 아래였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뭐 몇 살 아래라고 하더라도 깎듯이 존대 써야 해요. 그때 몇 살 아래니까 야자하고 그랬었어요. 근데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태권도를 많이 했어요.
태권도를 많이 했으니까 버릇이 참 없었고 나이 먹은 어른한테 굉장히 어려운 시대에도 불구하고 수틀리면 자기의 태권도라는 실력을 발휘해서 백 선생님이 뭐고 수틀리면 한방 하고 나가면 다 아니야 뭐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좀 못된 기질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던 친구가 어떻게 올 때 갈 때 없고 밖에서 빌빌 하는데 누구의 권고로 거기 와서 백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백일을 하는 과정에서 그 쇠똥이나 치고 뭐 이러니까 싫었겠죠.
그리고 선생님이 뭐라고 말하고 잔소리 하니까 그냥 되게 화가 나서 어느 때는 태권도 실력을 발휘해서 선생님이 한번 뜯다 업고 뛰쳐나갈 생각을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자꾸 바치다 보니까 굉장히 금강경이 재밌어지고 선생님이 위대하고 나중에 이제 체루비읍 을 할 정도가 됐고 얼굴이 아주 훤해졌습니다. 제 군대 있을 때 왔다 갔다 하면서 봤습니다. 백일을 무난히 지내고 나갔습니다. 백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제가 만일 여기서 백일을 하지 않았으면 밖에 나가서 그 불끈하는 승격에 또 태권도 한 실력에 과실 치사할 운이었다. 근데 여기서 100일 동안 뭐 그때는 금강경 여기서 7독도 하지 않았어요. 일독만 하고 올라오는 생각 쇠똥 치면서 부지런히 바친 결과 과실 치사 운을 바꿨다.
이렇게 얘기하고 만약 이휘소 박사 같은 이가 소사와 같은 그런 수도장에 들어가서 100일을 했다라고 하면 절대 42세에 요절을 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 이는 세상식의 교육은 잘 받은 천재라고 합니다마는 즉 인격교육과 지혜교육 제대로 받지 못했다.
따라서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따라서 일찍 죽었다. 그리고 또 그 이는 한국 사람도 아니에요.
미국 사람이 됐어요. 미국 시민이 됐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인재가 사라졌다 라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요샌 적어요. 국적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면 거기서 붙어나지도 못하겠죠 미국에서 근데 참 이게 교육이 꼭 필요한 게 아무리 이휘소 같은 천재 여러면 뭐 합니까 42세 사망하면 천재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잖아요. 그 운명을 바꾸는 교육 또 진짜 인격자가 되는 교육 이게 정말 산 교육이고 ai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교육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런 교육을 받고 있다라면은 어때요? 영광으로 생각해야죠.
졸음에 왔다가도 확 달아나게 되겠죠 근데 이게 이렇테네요. 이게 꾸중이 왜 필요한가 하면요 일 번을 보세요. 도인의 꾸중은 무식업 업장을 소멸시킨대요.
그 꾸중을 들을 때는 어때요? 굉장히 괴롭죠 괴롭지만은 꾸중의 결과는 열매는 너무나 달달한 우린 그 말을 안 믿습니다. 근데 이제 백 선생님은 어느 때 꾸중을 하시느냐 이 녀석 이건 나한테 버릇없이 놀았다. 두고두고 별로입니다. 보통 사람은 그러죠. 그러다가 이제 그런 게 한 두 개쯤 쌓여요.
그럼 불러 너는 날 와. 이제 고등학교 선생이라면 교무실로 불러. 교무실에서 와
그래놓고서 너 뭐 잘못했지 뭐 잘못했지 하면서 야단을 칩니다.
백 선생님 불러서 야단치는 건 한 번도 없어요. 또 찾아가서 야단치는 것도 한 번도 없습니다.
어느 때 야단치냐면요 제 제자들마다 매일 새벽에 들어갑니다.
안 들어갈 수가 없어요. 딱 들어가면 그 말하는 거 보고
자기는 말 잘못했다 꾸중 맞았던 여러 가지 기억이 있으니까 말을 굉장히 잘하려고 그럽니다.
이거 말 잘못했다 트거리 잡혀서 선생님은 트거리 잡는데 도사니 뭐 어느 때 또 육두문자가 날아올지도 모르나 이제 이렇게 해서 굉장히 긴장하고 들어갑니다. 바치면서 들어갑니다.
저하고 굉장히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어떤 도반이 있었습니다.
아 그 인은 나보다 1년 먼저 들어왔던 게 선배였고 아는 것도 굉장히 많았고 아는 소리도 많이 했고 그 인은 곧 백박사님의 상수의 제자라고 상수 제자라고 다들 그렇게 인정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참 키도 작고 건강도 약하고
서울대학을 나오지만 불립 문자 아 거긴 아무것도 통용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백 선생님은요 이렇게 쭉 하다가 잘못하면 내보내요.
내보내고 들어오면은 젤 꼴찌 안 칩니다. 그래서 그이가 제일 먼저 앞에 앉았다가 그 이가 잘못해서 나간 뒤에 들어온 뒤에는 꼴찌가 됐어요. 꼴찌가 돼서 말하는 순서도 제가 제일 먼저입니다.
그 이가 아무리 수도를 했다고 그러지만 기분이 나쁠까요 나쁠까요 저기 보도 새카만 후배인 김원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고 자기는 이렇게 충성을 다하는데 자기는 꾸중하고 이러니까 어느 날 그 이가 날 아주 괴롭히는 걸 느껴요.
아주 심술 굽게 놀아요. 그냥 테클을 걸고 이 법당에서는 그런 사람 없어요. ?
법당에서 다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업보라는 건 어디나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끌어오기 때문에 자기 살생 업보 있으면은 살생업보 불러와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괴롭히게 만들고 서로 싸움 걸게 만들고 또 싸움 하게끔 하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업보는 항상 있기 때문에 법당이라고 그런 나쁜 업보가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란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되게 괴로웠는데 꿈을 딱 꿨어요.
꿈을 딱 꾸는데 백 선생님 꿈에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서도 꿈에 법사 보기 어렵다고 백 선생님이 나타나시더니 옆에 있는 사람이 아무 개거든요. 아무개 좀 잘 다뤄라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그게 이제 백 선생님이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내 공부의 법이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내가 법이 섰으니까 그런 말소리가 꿈에 들리는 겁니다. 이제 그 얘기를 하다가 이제 그 사람 차례가 됐어요. 난 이제 그렇게 했으니까 잘 바쳐라. 이 정도로 끝났습니다. 그 사람이 뭐라고 얘기를 시작을 했어요. 시작을 하니까 얘기를 조금 하자마자 벼락같이 육두문자 쓰시는데 그렇게 꾸중하시는 건 처음 들었습니다.
뭐라고 그랬냐 하면 여기 오는 도반을 갖고서는 거기가 남 보인데 A 씨가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아마 씨 적당한 호칭이 없으니까 나 아무 아하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보다 씨라고 붙이는 게 좋겠죠 그렇게 했더니 대뜸 끝나자마자 육두문자로 그냥 욕을 하시더라고요.
그 아주 얘기하다가 머슥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 아셨어요 얘가 날 괴롭히는 걸 이 옆에 있는 사람이 저를 괴롭히는 걸 아셨어요 그리고 이 A 씨가 할 때 그 용심이 그걸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부르기 위해서 부른 게 아니라 선생님하고 맞짱 뜨기 위해서 부른다는 것을 선생님이 감지하셨어요.
그럼 이런 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무식업 업보업장이 발동해서 그러는 걸 봅니다.
근데 그 무식업 업보업장을 지어오는 데는 도인의 꾸중이 꼭 필요하다고 보셨던 것 같아요.
육두문자를 막 하니까 머쓱했고 나는 미안하더라고요. 내 말
말씀드린 것이 아마 원인이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으로 했는데 이제 그 스토리는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며칠 후인가 그래요. 그때는 잘 얘기 안 하세요.
도인의 꾸중은 무식업 업보업장을 해소한다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그 고마운 거예요. 근데 이게 꾸중을 고마워해야 됩니다. 그 꾸중 때문에 기가 팍 죽죠.
그런데 그 사람은 치 받는 기질이 있어요. 백박사님하고도 맞짱 뜨려고 하는 기질이 있다고 늘 그러셨어요.
그러니까 백박사님하고도 근데 왜 백박사님하고 맞장을 뜨려고 그러냐 전생에 임금 노릇 많이 했대요. 그러면 임금이 안하무인이에요 아니에요 이게 백박사님 이고 뭐고 보이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맞장 뜰려고 하는 이유를 아세요? 백 선생님 근데 그걸 가만히 믿으면 얘는 더 고생하는 거예요.
그럼 고생을 면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오만하고 도인하고 맞장 뜨려고 하는 이런 것을 고쳐주고 싶은 게 도인의 마음입니다. 그 사람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이도 늘 꾸중하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표현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도인의 꾸중은 무식업 업 업장을 해서 온다고 그럽니다.
그 인은 안하무인이었고 그것 때문에 밖에 나가서도 고생을 되게 했고 되게 잘난 척하고 아는 소리하고 이랬던 사람입니다.
백 선생님 그렇게 야단을 쳐도요 잘난 척하는 못 고치던데요. 저 같은 사람은 꾸중 자비심도 없구요.
꾸중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꾸중을 들을 수 있으면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게 하라.
그런데 그것을 두두고고 원망했던 금강산 제자 두 사람을 압니다.
금강산에서도 내 옆에 있었던 사람처럼 전생에 뭐 한 자리에 했던 사람 있잖아요.
이게 벼슬이 좋지가 않대요.
벼슬하게 되면 오만해져요 안 오만해져요 자기가 최고인 줄 알게 돼요.
뭐 천재라는 소문 듣는 거 금생에는 좋죠. 천재라면 지위에 없는 줄 알고 기고만장 하잖아요.
그게 마음을 닦는 데 굉장히 해롭다고 도인의 꾸중이 꼭 필요한 거예요.
근데 꾸중을 해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칭찬만 해주면 해줬지.
이게 저 꾸중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렇습니다.
모르시죠? 그런데 이런 꾸중이 꾸중을 통해야 우리가 아상이 죽고 아상이 죽어야 인격자가 되고 지혜롭게 됩니다.
그래야 운명을 또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 교육은 꼭 필요합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이런 게 아니라 꼭 필요합니다.
열심히 가행정진 하러 나오시는 분들 그것도 꾸준히 아니라
벌써 어제 얘기 들어봤더니 6년이나 하신 분이 있대요. 저는 그분은 운명을 몇 번 바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벌써 3년이 된 분도 몇 분 있어요. 전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이고요. 이런 분들이 우리 법당에 100명이 된다고 가정하면요 이제 저는 은퇴를 해도 잘 굴러간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일마다 부처님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고 어떤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가행정진하는 사람이 한 50명만 돼도요 우리 법당은 상당히 이제 가행정진이라는 게 뭐냐 하면 가행정진을 3년으로 한 사람을 얘기하고 그런 분들이 지금 거의 10명 가까이 되는데 10명 가까이 된 것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고 50명만 돼도 법당은 상당히 튼튼합니다. 100명이 되면 아마 100명이 될 때가 있을 거예요.
좀 하시기 싫어도요. 꾸준히 하세요.
제가 선물 드릴 테니까 아니 그런 분들은 보배와 같은 존재고 그분들은 이런 얘기를 하시죠.
법사님 오래오래 사세요. 오래오래 사시면서 우리를 지도해 주세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아마 저도 우리 백 선생님한테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행 경력 3년 이상 하신 분들은요 저 없어도 잘 오실 거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법사가 없어도 이 법당은 잘 굴러갈 거로 생각합니다.
근데 가행정지는 이게 어렵잖아요. 그것도 3년이나 하신 것은 하버드 대학 나와도 노벨상을 탈지 몰라도 운명은 못 바꾸거든요. 운명 바꾸고 퇴타심 안 내면은 그분들은 굉장히 보배와 같은 존재입니다.
아 그건 우린 가행정신 안 하는 뭐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떡하란 말이에요.
처음 본 사람 기죽이는 발언 그만하세요. 이러실 수도 있겠죠. 근데 발원만 하세요.
모든 사람들이 가행정진 잘해서 부침전에 복만이 지으시길 발원.
그리고 가행정진이요 고욕이 아니라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전 가행정진 어설프게 해도요 운명을 바꾸고 있는 사람 많이 봤어요.
필요하다면 사례집을 만드는데 사례집도 필요 없어요. 사례집 백 번 만들어도 안 하는 건 안 합니다.
그러면 이 법당의 운명을 바꾸려면 그런 사람이 100명만 되면 이건 운명이 저절로 좋은 쪽으로 굴러 전 이렇게 지금 생각하고 있고요. 그분들한테 제가 해드려야 할 도리가 꼭 있다고 생각을 해서 선물을 준비할 마음도 내게 됐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제 그래서 도인의 꾸중은 원망할 것이 아니라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현실로는 그렇지 금강산 제자들 중에는 꾸준한 게 고맙긴 고맙지 면서 늘 선생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분을 압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두 분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최후가 안 좋았어요.
한 분은 중풍으로 몇 년을 눕다가 고생고생하다가 돌아가셨고요.
또 한 분도 역시 똑같이 스승을 원망하고 배신한 거죠.
심지어는 한 사람은 집을 팔아 먹고 한 사람은 차 팔아먹은 걸로 유명합니다.
왜냐하면 동국대학에서 나오셨을 때 선생님이 가진 재산이 무엇이냐 하면 승용차 한 대가 있었고 승용차 하면 그때 집 몇 채 값 됐었을 겁니다. 그리고 선생님 명의로 가지고 있었던 집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집을 팔아먹은 사람이 있었고요.
이제 또 승용차를 팔았다가 나중에 돈을 가져왔지만은 이제 꾸중을 되게 하셨죠.
그러니까 그분들은 그렇게 백 선생님의 꾸중 잘하는 분이라고 해서 원망하다가 말로가 안 좋던데요.
근데 꾸중하신 분은 어떠냐 사람을 밝게 해주신 거지만 꾸중하다 보면 진심이 들어가잖아요.
백박사님도 진심이 들어갔다라고 스스로 인정하시고 치아가 나빴다.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인과응보는 성인이라 하더라도 항상 엄정하게 진행이 된다.
목건년 겉은 이도 다 깨친이라고 하지만 아마 사람들한테 돌로 얻어맞아서 세상을 떠났을 겁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으신 비운을 겪으셨는데 그게 다 전생에 지은 어떻게 보면 지업의 결과라고 저는 그렇게 알고 있고 물론 죄를 지어도 이 도인들은 훨씬 축소해서 봤습니다.
1천분의 1, 1만 분의 1로 축소해서 봤지만 그래도 아주 없어지지는 않는가 봅니다.
이 뒷페이지에 보면은 따라서 인성교육은 인성교육과 지혜 교육은 인격과 지혜를 갖춘 분으로부터 오프라인 교육을 받아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구요. 근데 그런 분이 이제 앞으로는 거의 없을 수도 있다면 지금 다시 가행정진을 3년을 해본 분들이 이제 그런 선지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 중에서는 인격과 지혜가 아마 3년 해보세요. 상당히 달라집니다.
물론 도인이 되시지는 않을지 몰라도 운명은 상당히 바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예전처럼 악도의 길로는 가시지 않을 정도로 저는 되는 것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 교육을 받아야 되는데 이제 여기 검토 일을 보면은 선지식이 아니 계실 때는 어떻게 인성교육과 지혜 교육을 받나 하면은 즉 자식 가행정지 3년 이상 한 사람들의
어떻게 보면 집단 지도 체제 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전망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분들은 그래도 사심을 덜 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분들도 아직은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가다가다 자기 자신을 과시하면은 안 돼요. 자만심이라는 게 굉장히 나쁘더라고요.
그다음에 이제 검토 2를 보세요. 이제 지금 저는 참 요새도 눈물 겨운
무주상보시 행렬이 우리 법당에서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억을 이름을 안 쓴 분은 없습니다. 1억 이상을 내신 분들은 제가 그 이름을 기억을 합니다.
또 그분들한테 기부금 영수증이라도 띄워주셔야죠. 1억원 이상 내시고서도 기부금 영수증 안 받아가시는 분들도 꽤 있어요. 그런데 1억 이하짜리 중에서는 이름을 안 쓰신 분들이 꽤 많아요.
쉽지 않잖아요. 5천만 원 내신 분 이름 안 써요.
또 요번에 어떤 분이 3천만 원 내신 분 이름 안 썼어요. 2천만 원 이름 안 썼어요. 누군지 모릅니다.
한 번 이름을 알려고 그랬어 했더니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름을 알려고도 안 합니다. 이제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감동을 합니다.
저보다 몇 배 나으신 훌륭한 부수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이런 분들이 자꾸 쌓이는 이유는 무엇이냐 아마 우리 법당에서만 볼 수 있는 아마 진풍경일 겁니다. 근데 저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여기 이제 성금봉투 하면 지금도 현금 백만원을 이름 안 쓰고 내신 분들 꽤 있어요. 백만 원 아깝잖아요. 기부금 영수증이고 뭐 난 필요 없다.
그냥 바친다 이거예요. 그런 분들이 생기고 우리가 대만에 가서 대접을 받고
또 서울대법회 대구대법회가 잘 된 이유는 뭐냐 2천 명씩 모인다고 그러니까 놀래요.
우리의 조직이 있고 뭐가 있어요 그냥 우리 도반들이 그냥 맨주먹으로 전단지 돌려가면서 2천 명이 이루고 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저력이 무엇이냐 저는 주경야선 가행정진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주상보시 자가 이렇게 많은 것도 역시 주경야선 가행정진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오시는 지석준 사장 잘 아시지만 우리 도반들 참 헌신적인데 놀랍니다.
보살림이고 누가 아녀자고 할 것 없이 일요일날 휴일도 없이요.
그 험한 일 다 하시잖아요. 저도 감동하고 다 감동하고 이런 건 작품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복시으신 분들도 딱 써요. 이제 아 여기 뭐가 작품이 되고 인재가 나오고 그것이 결국은 금강경 연수원의 목표가 될 것이다.
그래서 금강영 연수원을 해서 이번에 등도 이거는 죄송합니다. 등의 가격을 매겨서 죄송합니다만 2만 원짜리 등입니다. 근데 금강 연수원 등은 오십만 원짜리 등이에요. 전 그걸 했더니 여기 어떤 분은 백 개 나오면 잘 될 거래요. 몇 개 된 줄 아세요? 모르시죠? 4백 개가 됐대요. 사백개 요번에 400개 잘 됐어요. 4백 개 돼서 그것만 해도 얼만지 금방 계산 나올 겁니다.
저도 근데 그 돈은 우리 법당을 증개축하는데 그대로 들어갈 겁니다.
근데 그 증개축 되면은 아 전 가슴이 뿌듯해요. 처음엔 그 돈을 금강 연수하는 데 기초자금으로 보태고 싶었어요. 근데 거기에 쓰는 것보다도 이게 바로 금강 연수원은 이 자리에서 하자.
우리 지금 하는 게요 주말 출가가 그대로 인재 양성이고 운명 바꾸는 거고 인성 교육이고 지혜교육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하고 있어요. 이게 조금 발전되면 그대로 연수원이 되는 거죠.
이거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아마 2 3년 복 짓게 되면 상당히 가시적이고 괄목할 만한 어떤 현실적인 인재 양성 기관으로서 저는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커리큐럼을 한번 생각해 봤어요.
무슨 무슨 과목을 배워야 인재가 되느냐 이겁니다.
옛날에 뭐 사서삼경이 저거였습니다. 우선 (가)를 보세요.
이건 꼭 필요합니다. 파트 타임으로 안 됩니다.
온라인으로는 안됩니다. 저는 풀타임으로 해야 됩니다.
이것은 달마대사의 외식 재현 내심 무척 심효 장복 가입도의 정신에 입각해 서야 합니다.
그다음에 이제 금강경 강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왜냐하면 주경야선 가행정진은 금강경 연수원에서도 필수 수행 과정으로 되기 때문에 그런데 금강경 읽기가 싫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싫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마는 어떻게 취미를 붙이냐 하면 뜻을 좀 알고 있으면 읽으면 취미도 붙을 뿐만 아니라 시원해져요. 뜻을 조금 알고 읽으면 업장이 녹는 것 같아요. 실제로는 조금 녹습니다.
그래서 뜻을 알고 있는 것은 금강경 독성의 취미를 붙이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금강경 강의는 굉장히 필요합니다. 이제 공경심을 갖고 들어야 업장이 녹죠.
강의는 재밌고 좋은데 공경심을 동반하지 않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실제로 도움이 안 됩니다. 여기 어떤 호주에 계신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고 그럽니다.
여기 유튜브를 여러 번 듣는다. 그리고 금강경도 칠독을 했다.
칠독을 했는데 아무리 칠독을 해도 제가 원하는 재앙도 소멸되지 않고 소원도 성취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뭐 이런 질문을 하신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대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공경심을이 있지 않아서 그렇다. 나 잘 되기 위해서 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 부처님 이런 가르침을 만난 것은 무한한 영광이다.
이 영광되는 그 뜻을 잘 살리자. 여기 하버드 대학보도 들어온 것보다 더 영광이다.
이렇게 한다면 칠독하고 이러면 반드시 다 됩니다.
근데 그렇지 않고 했기 때문에 칠떡을 해도 아무것도 진전이 없는 겁니다.
공경심 없이 하면 안 됩니다. 공경심 있게 하면요 다 돼요.
제가 지방에 계신 어떤 보살님이신데 제가 그런 얘기를 여기서 전체에서는 안 했습니다마는 바깥 어른하고 늘 그 아주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안 좋았다가 어떡하면 사이가 좋아지냐고 저한테 아주 간절히 호소를 했습니다.
근데 그분은 금강경 뜻도 잘 모르지만 법사에 대한 공경심만은 아주 꼭 있었던 분입니다.
그래서 금강경도 칠독도 안 하세요. 삼독 정도 한다고 그래서
칠도 오긴 너무나 힘들대요. 매일 그 남편 되시는 분한테 삼십 분씩만 미륵전 여력을 하십시오 그랬어요.
근데 그게 그냥 했으면 아무 효과가 없을 겁니다.
근데 법사위 말을 부처님 말처럼 믿고 30분만 하면 정말 된다고 하시니까 그 뜻을 받들고 해보자.
고지식하게 한 결과 바로 효과가 나오고 진짜 공경심이 오면 바로 효과가 나오니 효과가 없으면 그리고 자기 마음부터 편해집니다.
일단 자기 마음부터 편해져야 돼요. 자기 마음은 들들들들 볶이면서 소원 성취만 된다 안 됩니다.
소은 성취되기 전에 자기 마음이 편안해져요. 편안해지면서 거기가 바뀌기 시작하다.
그런데 편안해지려면 반드시 공경심이 동반돼야 해요. 결국은 남편이 금강경은 오독하기에 이르렀어.
집안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제 이 가르침이 얼마나 고마운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그리고 또 새로운 선물을 해 주셨는데 참 저는 금강경 공경심으로 읽는 금강경의 공동이야말로 그 고지식한 저 고집불통 가부장적인 남편을 바꾼다는 거 바꾸는 것까진 좋은데 금강경을 오독까지 하게 한다는 건 정말 기적이거든요.
그거 쉽지 않은 건데
그걸 단 6개월 사이에 저는 이루었다고 보고 그것의 원동력은 공경심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경심을 동반한 금강경 강의가 필요하다 고 다음에 주경야선 가행정진은 이게 계속해서 하는 게 좋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난제 해결에 대해선 제가 좀 설명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미국 지금 하버드 대학 같은 세계 최고의 대학은 지식 교육은 안 한다고 그럽니다. 한국도 그걸 배우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특히 mba 경영학 석사를 줄 때는 강의가 일체 없다고 그래요. 그건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제 과제는 내준대요. 난제를 열 개 풀어와라. 열 개 풀어와서 교수들 대학원생들 다 마아놓고서는 난제를 명쾌하게 풀어야 됩니다. 시험도 없어요. 강의도 없어요. 자기 난제 10개를 스스로 풀기만 하면 되는 거
저는 우리가 작년에도 수한보 한 번 갔습니다마는 거기서도 그런 비슷한 걸 했습니다마는 여기에서도 언젠가 금강 연수원 교육을 하면 난제가 있잖아요.
난제를 하고 풀어야 됩니다. 푸는데 푸는 과정이 논리적이어야 됩니다.
또 논리적이어야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 여기 이렇게 썼습니다. 하버드 대학 엠비를 얻는 과정을 참조했다. 난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의 타당성을 논리적
논리적이라는 게 과학적이라는 뜻과 마찬가지지만 이 과학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볼 때는 다른 유명한 교수의 논문을 인용을 해서 레퍼런스 뒤에다 참고 인용 논문이라고 씁니다.
이제 그렇게 해서 우리 대학원에서는 논문을 쓰는데 우리는 유명한 교수의 저술이나 논문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해야 합니다.
즉 선사의 말씀 일체유심조 공 불리 구족의 진리를 인용하고 선사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난제 해결을 풀어내기만 하면은
미국에서는 경영학 석사를 주는데 하버드 대학에서는 한국에서는 진짜 유능한 사회인이 된다 건강한 사회인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저는 금강 연수원 졸업장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언제 금강 연수원이 되면 졸업장이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졸업장은 난제 열 개 하버드 대학처럼 난제 열 개 풀어라. 강의도 없다. 주경야선 가행정진만 잘해라.
난제 만들어서 난제를 교수가 주는 난제도 좋고 자기가 만들어서 줘도 그럴 듯한 난제를 풀어서 제출한 우리 요새 질의 응답 자꾸 하다 보면 난제 풀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청년조들은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제 뭐 주경야선 가행정진 삼년만 하면요 잘 될 거예요.
처음에 보면은 이상한 거 같아도 이게 확실히 온라인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온라인 교육으로 못 하는 게 있습니다.
오프라인 교육으로 해야 되고 우리 식은 그걸 잘 가고 있고 때가 되면
어설프게라도 될 겁니다. 근데 이 정신을 받든 어떤 인재가 나오면은 큰 돈을 들여서 어떻게 보면 대만의 불광사보다도 크고 뭐 자제공덕회보도도 크고 이런 멋진 연수원이 아마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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