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경야선 가행정진 하시느라고 대단히 수고들 많으십니다. 잠이 본래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깨우치셔서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지으시기를 발원 드립니다. 오늘 금강경 제20분을 우리 현실에 맞게 좀 더 구체적으로 건강한 사회인이 되게끔 도움이 되는데 필요한 해석이 무엇인가 이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또 현실적으로 해야 당연히 알기 쉽습니다. 또 실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너무 거창하지도 않고 거기는 기적이 존재하 지도 않고 매우 인간적이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금강경 20분의 본문의 내용이 제가 여기(흑판) 썼습니다만 제일 먼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❶ 如來를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아 - 부처님의 모습이 아주 훌륭하게 생겼던가요? 요새 식으로 하면 풍채가 좋으신데 우리 사람들은 외모는 마음의 창이라고 얘기를 하고 유명한 링컨의 얘기처럼 나이가 40이 되면 자기의 외모는 자기가 책임져야 된 다는 얘기가 있듯이 훌륭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마음씨도 훌륭하고 훌륭한 일을 해 낸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 히 틀리는 것 같지가 않아요. 또 외모도 아주 조잡하다. 비인격적이다. 하고 그런 외모를 갖춘 사람 역시 마음씀씀이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일보다 해로운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들이 그 정도 지혜는 대개 있습니다.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관상만 보고서도 미래를 예측하고, 운명을 예측하고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까지 아는 그러한 능력 도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그것을 대개 아신 뒤에 너희들은 외모가 그 사람의 마음씀씀이와 관계가 있고 실지로 훌륭한 외모, 훌륭한 마음씀씀이, 훌륭한 행동, 이게 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그런 걸로 봐서 최고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처님은 당연히 외모도 뛰어나다. 너희들이 보다시피 내 외모는 굉장히 거룩하고 훌륭하고 신심 나게끔 그렇게 되어 있다. 이 렇게 아시면서 훌륭한 외모로서 具足色身완벽한 외모로서 부처를 볼 수가 있겠느냐 이런 질문입니다. ❷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 앞에 것과는 약간 틀린 것 같아요. 부처님은 具足色身은 외모라면 具足諸相은 완벽한 마 음씀씀이, 완벽한 인격체를 가진 것을 부처라고 부르느냐? 이런 식의 질문입니다. 이런 식의 질문에 그 뒤에 대답들은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 如來說 具足色身은 卽非具足色身일새 是名具足色身이니이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들은 잘 하기 어렵고 또 해석을 해 놓는다 하더라도 참 해석이 되었다. 인제 해석까지는 됐어요. 해석이 되더라도 현실과 상관관계가 없다면 달리 말해서 아무 리 해석을 잘 해도, 기쁜 마음이 생겼어도 그것이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따를 이유가 없고 받들어 信受奉 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해석도 우선 실감나게 해야 되고, 실감나게 하면 그것을 실천해서 일상생활에 도움이 돼야 됩니다. 밥 먹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지옥에서 병을 낫게 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지옥에서 구원해 주기도 할 수 있어야 된다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해석이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이것을 직역으로 하면 제가 표현이 좀 그렇습니다만 밥 먹여주는 해석, 병에서 낫게 해 주는 해석은 할 수가 없어요. 직역하면 안 됩니다. 우선 해석부터 잘 해야 됩니다. 이 해석을 하기 전에 이 얘기부터 먼저 해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 하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배웠고 자랐습니다. 너는 어려서 안 돼, 네가 아직 몰라, 너는 어리니 까 몰라. 너는 배워야 돼, 노력해야 돼, 이런 얘기를 귀에 젖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노력을 해야 성공을 하고, 그리고 배워야 좀 더 알아지고, 그리고 지도자가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 랐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불완전한 존재고 노력하고 배우고 악전고투를 해야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힌 제한적이라고 알고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알지 못하게 우리는 뿌리 깊은 열등감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배우지 않아도 잘 아는 거야 실지로 아는 실례를 내가 들어준다. 이렇게 하면서 자랐다고 칩시다. 너는 노력하지 않아도 다 할 수 있다. 네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다. 안 믿어줘도 그런 실례를 들어가면서 너는 알고 보 면 시시각각으로 소원성취하고 있다. 그건 다 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실례를 들어가면서 그렇게 자신의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키우고 자랐다면 우리는 무조건 기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밝은이가 보면 실지로 너희는 언젠가 기죽고 이런 존재가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다 하는 즉 전지전능한 존재로 다 보 이는가 봐요. 특히 더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인간의 가치는 무한하다. 부처까지도 될 수 있다. 아니 본래 부처다. 이렇게까지도 얘기하는 것이 더 지혜로우면 지혜로울수록 그 사람의 최고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특히 우리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의 최고의 가치를 인정하시고 너희들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너의 현재모습도 네가 언젠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네가 이런 몸뚱이를 갖게끔 그렇게 언 젠가 그렸다. 그래서 요런 요 모양으로 받은 것이다. 이렇게까지도 얘기를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화엄경에 일체유심조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다시 표현하면 화엄경 4구게라고 알려져 있습니 다만 약인욕료지若人慾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 4구게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불교학자들이나 스님들은 일체유심조라는 그 간단한 글귀만 잘 이해하고 깨친다면 불교전체를 아는 것이요. 큰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얘기까지도 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된다. 요런 뜻입니다. 또 나는 전지전능하다. 이런 뜻도 됩니다. 시시각각으로 소원 성취가 된다. 이런 뜻도 됩니다.
그 실례가 뭐냐 우리가 실례를 들 수 없으면 일체유심조를 이해시키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 밝은 스승께서는 실례를 들어 주셨어요. 제가 책에도 썼습니다만 중국에 1,000명을 거느리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다. 모든 것을 훤히 다 알고, 세상 모든 것을 다 내다보 고 모든 난제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척척해 주는 그야말로 도사격인 존경받는 어떤 큰스님이 있었다. 그이는 당연히 내생에 사 람 몸 받거나 또는 천상세계에 올라가거나 할 것으로 제자들은 아마 다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하나의 문제점이 무엇이냐 하면 늘 평소에 소의 덕성을 칭찬했다고 그럽니다. 소의 걸음걸이 저는 소를 키워봐서 압니다. 소의 걸음걸이는 아주 뚜벅뚜벅 걸어요. 걸음걸이를 닮으라는 식으로 우리선생님께서는 제 앞에서도 걸음걸이를 시범 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걸음걸이를 가만히 봤더니 일자걸음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따라서 하다가 어느 듯 그걸 잃어버리고 팔자걸음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팔자걸음과 일자 걸음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옛날에 양반은 팔자걸음이라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 팔자걸음 많이 걷습니다. 그런데 팔자걸음을 걸으면 만보 걷는데 굉장히 지칩니다. 백선생님이 걸음걸이 연습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일자걸음 연습이로구나. 얼마 전부터 저는 일자걸음으로 바꾸기 시작을 했는 데 일자걸음으로 걸으니까 지금은 하루에 만 몇 천보를 걸어도 빨리 피로하지가 않습니다. 소 걸음걸이를 잘 보세요. 아주 일자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걷는 게 군자의 걸음걸이가 팔자걸음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흉내를 내면서 이렇게 걸으라고 그것을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소를 심우尋牛라는 표현을 써서 절에서는 굉장히 소를 상서로운 동물로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인도에서는 코끼리를 상서로 운 동물로 보듯이 한국 절에서는 소를 상서로운 동물로 봐서 큰스님들이 예찬한 실례가 있다고 그럽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가 됐어요. 모든 것을 훤히 다 아시는 스님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내생에 어떻게 되십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이는 모든 것을 훤히 다 아는 분이고 미래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람 몸을 받을 것을 생각을 했기 때문에 미래는 어떤 몸이 될 것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의 질문을 받고 내생에는 스님 은 어디로 가십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내생을 관찰을 해 봤어요. 그랬더니 알지 못하게 소가 다 되어있다는 거예요. 거기 까지 기록에 나와 있다고 그래요. 우리 백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이의 후생은 어떻게 됐나?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어떤 밝은이가 보니까 마음에 그리는 대로 되어진다. 그래갖고서는 그대로 사람이 아닌 소의 몸을 받은 것으로 어떤 밝은이가 봤다.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아마 밝은이는 백선생님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큰도인은 참 원통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자기는 멋도 모르고 소를 예찬을 하고 소의 덕성을 기리고 알지 못하게 소를 그렸던 것이 실지로 소의 몸이 된 겁니다. 그가 그런 몸을 받는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조상 탓도 아니고 부모 탓도 아니고 자기가 그려서 스스로 받은 거예요. 그이가 그렇듯이 우리가 이 몸을 받은 것은 자기가 그려서 그렇게 된 겁니다. 저는 어떤 호텔을 하는 여사장을 알고 있습니다. 인물이 괜찮습니다. 그이는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부모님이 나한테 예쁜 얼굴 을 만들어 주셔서 이런 호텔을 경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부모가 만들어 준 게 아니에요. 다 자기가 만든 거죠. 그런 실례가 너무나 많이 있고 요것은 내생을 아는 도인께서 실지로 얘기를 해 주신 것입니다. 마음이 그리는 대로 다 되어 진다고 그럽니다. 실지로 도인이 하신 말씀이 그 학교에 쥐를 많이 연구하는 모 교수가 있었습니 다. 신문에 알려질 정도로 쥐에 대해서는 대가였습니다. 그런데 몇 십 년 동안 쥐를 잡고 연구를 하다보니까 외모까지도 쥐를 꼭 닮았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여쭈어봤어요. 그이가 쥐를 그리다보면 내생에 쥐 될 공산이 있겠네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 요. 없어요? 했더니 “벌써 쥐 다 됐다.”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그리는 대로 돼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심지어는 어떤 얘기까지 하시느냐 하면 어떤 농부가 밭을 가는데 지렁이가 너무나 많이 있어요. 지렁이가 많으면 땅 이 좋대요. 그런데 그이는 땅이 좋다고 생각하기보다도 이 지랄 맞은 지렁이, 일을 하다 보면 지렁이를 죽이게 되고 잘리게 되 니까 영 귀찮은 거예요. 이런 지렁이만 없으면 내가 농사를 잘 지을 텐데 그러면서 지렁이 원망을 많이 했다고 그럽니다. 마음 속으로 뭘 그렸어요? 지렁이를 그린 거예요. 사람이 어떻게 지렁이가 되느냐? 실지로 그의 후생이 지렁이가 됐대요. 자기가 그 리는 대로 그대로 되는 겁니다. 이건 도인만 보는 거예요. 그리는 대로 그대로 다 이루어진 거예요. 그럼 보세요. 똑똑한 사람이 질문을 합니다. 사람을 그리면 사람이 되겠네요.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그리지 않고 대개 지렁이 를 그린다거나 소를 그린다거나 이렇게 사람 아닌 다른 것을 그리는 수가 많아요. 그런데 축생에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축생이 사람을 그리면 사람이 되겠지만 축생은 사람을 그리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축생이 사람을 그리느 냐? 특히 소가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데 사람한테 살해를 당해야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살해를 당할 때 이놈의 사람하고 원 수를 갚을 마음이 나겠죠. 원수를 갚을 마음을 내면서 사람을 마음속으로 확 그리게 됩니다. 확 그리게 되는 것을 증憎한다. 라 고 얘기합니다. 사람을 증憎하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축생이 사람이 되는 길은 사람을 그리는 재주가 없어요. 상상력이 없는 것이 축생입니다. 사람을 증憎해야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됩니다. Qncjslatlqhd 그럼 똑똑한 사람은 그렇게 질문을 합니다. 부처가 되려면 부처를 그려야 되고, 부처를 증憎해야 된다는 말이냐? 이렇게 생각 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미인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미녀라는 배우 그런 사람들은 대개 전생에 미녀를 그렸다고 그럽니다. 미남은 물론 미남을 그려서 미남이 되었다고 그럽니다. 일류대학을 가는 사람이 있어요. 물론 실력으로 일류대학을 가죠. 그런데 실력으로 일류대학을 가는 수도 있지만 일류대학을 마음에 그려서 가는 수도 있대요. 백선생님께서는 절더러 그런 애기를 하세요. “넌 실력은 없지만 마음으로 그려서 일류대학을 갔다.”그래요. 가만히 보니까 저는 실력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려서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게 진짜 일류대학생이냐 하면 실력으로 되는 게 실력은 그리지 않아도 자기 실력으로 저절로 되는 거예요. 사람도 자기 실력으로 저절로 사람이 되어야지 축생이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을 증憎해서 되는 겁니다. 이게 만담이 아니고 농담도 아 니라 도인이 이야기 하신 엄숙한 얘기입니다. 이 얘기 들으면 끔찍해요? 재미있어요? 재미있기도 하지만 끔찍해야 정신 바짝 차리게 되죠? 졸지 않게 되죠. 이 얘기를 졸면서 들을 성질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그려도 사람이 되고, 사람을 증憎해도 사람이 되는데 그럼 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럼 부처를 그리고 부처를 증憎하려면 부처를 죽이든가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건 안 됩니다. 하여튼 증憎하려면 부처한테 살해를 당해야 부처를 증憎하는데 부처님이 살해할 이유가 없죠. 그러니까 증憎할 재주는 없고, 그리면 부처가 될 수 있겠느냐? 똑똑한 사람 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상당히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겠죠? 그런 사람의 마음을 보고 하신 질문입니다. 如來를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아 하고 질문한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 석가여래의 거룩한 외모를 그리며, (‘그리면 다 된다’는 것을 알 정도가 우리는 됐잖아요?) 석가여래의 보여 지는 法式을 닮으려고 한다면 부처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뜻이 됩니 다. 이렇게 일단 질문을 풀어나가요. 그럼 여기에 대한 답변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답변을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 如來說 具足色身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구족색신은 卽非具足色身일새 是名具足色身이니이다 -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구족색신 은 외모를 그리거나 닮으려고 해서 부처가 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그렇게 할지 몰라도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석가 여래가 말씀하시는 부처가 되는 방법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실지로 부처될 짓을 해야 되는 것이다. 부처가 될 짓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가 될 짓인 것이냐? 부처님을 향해야 되죠. 그런데 외모를 그려서는 안 된다 사실 부처님은 거룩한 외모가 부처님이 아니고 부처님은 형상이 없어야 된다 형상이 없는 것을 또
외모를 그려서는 안 된다. 사실 부처님은 거룩한 외모가 부처님이 아니고 부처님은 형상이 없어야 된다. 형상이 없는 것을 또 그릴 수도 없어요. 형상이 없는 것을 또 그려서는 안 되고, 또 형상이 없는데 내 분별심을 바치려고 해야 됩니다. 이렇게 질문 에 대답하셔야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그림으로써 그것이 이루어진다. 는 그 진리를 체험을 했습니다. 부자를 그리면 부자가 되고, 제가 말 씀드린 대로 사법고시를 그리면 사법고시 합격자가 됩니다. 고시가 많죠? 외무고시를 그리면 외무고시 합격자가 됩니다. 대통 령을 그리면 대통령이 됩니다. 그리는 대로 다 돼집니다. 그와 마찬가지 논리로 부처를 그리면. 또 미인을 그리면 미인이 됩니 다. 一切唯心造 내 마음먹은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부처를 그리면 부처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건 그럴듯한 발상입니다. 그런데 이건 너희들이 생각하는 부처가 되는 방법 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부처가 되는 방법은 그게 아니다. 그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실지로 부처가 될 짓을 해야 되는 것이 다. 요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그런데 부처가 될 짓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너희들은 부처가 될 짓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부처님은 형상이 없고 바람과 같고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이를 닮으려고 하더라도 닮을 재주가 없는 것이다. 즉 부처를 닮으려고 하는 마음 밖에서 찾지 마라. 네 마음의 착각인 줄 알고 뭘 그리고 알려고 하는 그 마음을 없애라. 네 마음 속에서 부처가 발견될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즉 그것을 쉽게 얘기하면 형상 없는 부처님께 몸뚱이 착을 바쳐서 복 지어라. 요런 뜻이 됩니다. 주경야선 해라. 요런 뜻도 됩니다. 쉽게 말해서, 뜻이 이해가 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같은 논리로 해석을 한번 해 봅니다.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 대개 외모가 상당히 훌륭하고 거룩하면 예외 없이 대개 마음씀씀이도 훌륭하고 실지로 훌 륭한 업적을 내고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합니다. 외모와 마음씀씀이와 그의 업적은 거의 동일하다. 이렇게 봐도 됩니다. 공자 같은 분도 논어에 이런 표현이 나와요. 외모로서 다 판단을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외모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훌륭 한 일을 해냈다. 한 가지 이유에는 맞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 외모에서 운명도 보고, 마음씀씀이도 보고 업적도 본다. 대개 이렇 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중생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이 諸相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외모가 아닌 마음씀씀이로 해석해야 됩니다. 色身은 겉으로 나타난 色相이라고 한다면 諸相은 마음씀씀이 心相입니다. 이 心相은 외모에 다 안 나타나기도 한다고 그래요. 저는 이게 사실인지 모르지만 성철(일타?) 스님의 제자였던 혜국스님이 지금은 어디 제주도에서 법당을 운영하는데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관상이 다가 아니 다. 관상보다 더 우선하는 게 배背상이라는 게 있대요. 등모양을 보고서도 그 운명을 잘 아는데 그럼 배상은 잘 생겼는데도 관 상은 덜 생기는 수가 있죠? 배상은 등의 모양을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앞의 모양은 복腹상입니다. 이 순서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혜국스님의 말에 의하면 제가 우리 백선생님께 들은 얘 기가 아닙니다. 혜국스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혜국스님도 어떤 지혜로운 이에게 얘기를 들었겠죠? 고전에도 나오는지 모릅니 다.
관상, 배背상, 복腹상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게 배背상이라는 것 같아요. 관상은 못 생겨도 배상만 잘 생기면 되고, 복腹상이 2번째래요. 제일 나중 게 관상이라고 그럽니다. 관상, 배상, 복상 이것을 다 합친 걸 이것을 아마 心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심상이 훌륭하다면 즉 관상, 배상, 복상이 다 뛰어나다면 그것을 종합 해서 심상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을 갖고 부처라고 하겠느냐? 이런 질문을 하신 거예요. 그것을 그대로 해석하면 좋은 답변이 안 나와요. 좋은 질문에 좋은 답변이 나온다고 좋은 답변이 나오게끔 해석을 다시 해야 됩니다. 느껴지는 석가여래의 心相은 우리는 석가여래를 당장 모시고 있는 수보리존자나 1250인들은 40몇 년 동안 부처님을 쭉 모시고 다니면서 그의 마음씀씀이가 어떤 것인가를 대략 짐작을 했을 겁니다. 자비로우시고 때로는 위엄도 있고 야단도 치 시지만 참 알 수 없는 지혜가 있고, 그 心相을 닮으려 하며 상상되는 석가여래의 마음씀씀이를 닮으려고 한다면 이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겉으로 나타난 너희들 마음밖에 있는 무엇을 판단으로 해서 그것을 닮으려고 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게 아니다. 부처는 어디서 발견되느냐? 네 속에서 찾는 것이다. 요런 뜻입니다. 부처가 되는 길은 무엇을 그 림으로써 집중함으로써 그리고 연습함으로써 되는 게 아니다. 연습하려고 하는 마음, 집중하려고 하는 마음, 닮으려고 하는 마 음을 다 착각인 줄 알고 내려놓고 없을 때 네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요것을 인제 어떤 표현을 하느냐 하면 如來說 諸相具足은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부처가 되는 길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마음 밖에서 부처의 마음 씀씀이를 닮 으려고 하고, 배우려고 하는 그것은 아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것도 아주 추상적입니다. 저는 요것을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우리 도인께서 설명하셨다고 봅니다. 주경야선 가행정진을 하는 길이 부처가 되는 길이다. 요런 식으로, 晝耕낮에는 일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냥 일한다는 게 아니라 복 짓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복 짓는다는 것 은 일은 복이 돼요. 그런데 밝아지는 것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그럽니다. 밝아지는 것은 부처님께 복을 지어야 돼요. 마당을 쓸 더라도 내 집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쓴다는 것과 부처님 법당을 청소한다는 마음으로 마당을 쓸면 밝아진다. 부처님께 복 짓 는 게 된다는 거예요. 즉 제가 대표적으로 복 짓는 것은 무료급식이라고 저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그전에는 가행정진은 했어도 무료급식은 안 했 었거든요. 가행정진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가행정진만 해도 거의 다 이룩하는 것 같습니다. 부처가 다 되는 것 같습 니다. 그런데 반드시 복 짓는 게 필요해요. 무료급식은 그냥 무료급식을 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 시봉을 부처님 기쁘게 하는 무 주상의 무료급식을 해야 됩니다. 저는 무료급식을 하려고 했어요. 오랫동안 했어요. 이게 꼭 수행하는데 필요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처음에는 그냥 봉사와 무주상보시는 틀립니다. 그냥 무료급식과 마음 닦는 무료급식은 틀립니다. 그래서 그냥 무 료급식이라고 하다가 우리 스스로 마음 닦는 무료급식이라고 했고, 즉 아상을 소멸하는 무료급식이라고 했고, 나아가서는 부 처님 전에 복 짓는 걸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업장을 부드럽게 해서 결국 소멸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무료급식을 해서 부처님 전에 복 짓고, 무료급식을 하면 외모가 즉 色相이 바뀝니다.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얼굴도 희어지고 얼굴도 깨끗해지고 이렇게 됩니다. Qncjslatlqhd 그런데 心相은 뭐냐 하면 가행정진입니다. 가행정진을 하면 마음속의 번뇌의 때가 없어져요. 특히 아마 백선생님께서는 3시기 도도 괜찮은데 새벽3시 기도를 쭉 몇 년을 하다가 자시로 바꿔봤어요. 상당히 틀립니다. 확실히 틀려요. 물론 자기 잘 되려고 자시기도하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부처님 기쁘게 해 드리는 자시기도 즉 가행정진이죠? 그걸 하면 마음씀씀이가 굉장히 바뀝 니다. 자기 속에 본래 부처를 찾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이것은 가행정진을 의미하고 , 如來를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아 이것은 부처님 시봉하는 晝耕을 의미합니다. 즉 부처님 시봉하는 주경야선 가행정진을 통해 서 우리는 色相도 바뀌고 心相도 바뀌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본래 자기 속에 부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요렇게 결론을 맺 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아전인수격으로 너무 또 외람 된다고 이렇게 혹시 들릴 수 있는지 모릅니다만 정말 몸뚱이 부처님 전에 복 지어서 세상 모든 일에 자유롭고 유능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드디어는 제 마음속에 위대한 부처의 모습을 발견해서 영원한 삶의 깨달음 에 이르는 길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주경야선 가행정진이 매우 꼭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저는 금강경 한번 읽어서는 안 됩 니다. 피나는 노력, 아상을 없애려면 한 번에 읽어갖고 어떻게 아상이 죽겠습니까? 그것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곤히 곯아떨 어진 그 시간에 본능을 거슬려가면서 그래야 아상이 죽습니다. 이 아상이 뺀들뺀들해서 좀처럼 죽지를 않아요. 혜능대사 같은 분은 한 번에 읽어도 되겠죠. 그런데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하면 반드시 안 이룩할 소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원이 목표가 아닙니다. 소원을 이루다 보면 본래 자신 속에 위대한 부처 의 밝은 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드디어는 아마 밝아지는 길을 가게 된다. 즉 주경야선 가행정진의 간접적인 표현 이 것이 금강경 제20분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외람스럽지만 그런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_()()()_ 제도하시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시봉을 잘 하겠습니다. 제도하시는 용화교주 미륵존여래불 공경을 이 법문 듣는 모든 분들이 세세생생 선지식 모시고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짓기를 발원합니다.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 미륵존여래불_()()()_
법당의 모 보살님께서 써주실 글 퍼와서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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